본문 바로가기

[차이나 인사이트] 마오쩌둥 사상으로 무장한 화웨이, 미국 봉쇄 돌파하나?

중앙일보 2019.04.09 00:03 종합 24면 지면보기
미·중 기술패권 경쟁의 이면
미국의 집중 견제와 압박을 받고 있는 중국 IT 그룹 화웨이는 마오쩌둥의 혁명 전략ㆍ전술을 기업 경영에 접목해 왔다. 중국 인민해방군 출신으로 화웨이를 창업한 런정페이 회장은 충실한 마오 이념의 신봉자다. [그래픽=최종윤 기자]

미국의 집중 견제와 압박을 받고 있는 중국 IT 그룹 화웨이는 마오쩌둥의 혁명 전략ㆍ전술을 기업 경영에 접목해 왔다. 중국 인민해방군 출신으로 화웨이를 창업한 런정페이 회장은 충실한 마오 이념의 신봉자다. [그래픽=최종윤 기자]

중국에 ‘마오. 선집 기업인(毛選企業家)’이란 말이 있다. 마오쩌둥(毛澤東) 선집을 달달 외우는 기업인을 말한다. 마오 사상과 혁명 전략을 경영에 적용하여 성공한 기업인들이다. 특히 화웨이(華爲) 창업자인 런정페이(任正非)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미국은 법과 외교력, 시장의 힘을 총동원하여 화웨이를 때리고 있다. 미국이 압박하는 대상 기업이 마윈(馬雲)의 알리바바가 아니고 화웨이인 이유는 뭘까. 미래산업에서 5G 통신이 차지하는 중요성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또 화웨이라는 기업이 지닌 특수성도 한 요인이라 할 수 있다. 그 특수성은 화웨이가 중국군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으며, 마오쩌둥 사상·전략을 기본으로 삼아 운영되고 있고, 중국 정부가 추구하는 정책과 흐름을 같이하는 기업이라는 점 등에 있다. 미국은 화웨이를 단순한 통신 장비 기업이 아니라 중국의 상징으로 보는 것이다.
 

미국의 이런 판단에는 근거가 있다. 런정페이는 한 인터뷰에서 신앙이 있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나의 신앙은 우리나라 중국이다. 미국·유럽·중국 3대 진영 중에 누가 먼저 부상할지, 이전에는 우리도 몰랐다. 지금은 알겠다. 중국이 분명 먼저 부상할 것이다.” 화웨이란 회사 이름은 중국은 미래가 있다는 뜻인 ‘중화유위(中華有爲)’에서 두 글자를 딴 것이다. 런정페이는 회사 등록을 하러 가던 길에 우연히 담벼락에 써진 글자를 보고 지은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는 중국을 신앙으로 생각하면서 자신과 화웨이의 미래를 중국의 운명과 동일한 것으로 생각하는 기업인이다.
 
미국이 보기에 런정페이와 화웨이는 글로벌 대기업 가운데 미국 기준에 맞지 않는 가장 이질적인 기업인과 기업이다. 무엇보다 런정페이는 마오주의자다. 마오의 충실한 학생으로서 마오 사상과 혁명 전략을 사용하여 화웨이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전시켰다. 런정페이는 인민해방군 시절 ‘마오 학습의 모범 병사(學毛標兵)’칭호를 받을 정도로 마오 선집을 달달 외우고 마오 사상에 빠진 군인이었다. 그는 화웨이 기업문화와 경영방법은 5000년 중국 문화와 중국공산당 문화에서 유래하였다고 말한다. 런정페이의 글과 연설 중에는 마오의 글 제목이나 마오 선집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이 상당히 많다. 1995년 12월 26일에 발표한「목전의 정세와 우리의 임무」란 글은 마오가 1947년에 발표한 글 제목과 똑같다. 그가 이 글을 발표한 날짜도 마오의 탄생일인 12월 26일이었다.
 
런정페이는 화웨이를 창업한 뒤 마오 사상과 혁명 전략을 기업운영에 접목해 나갔다. 그는 마오의  ‘농촌으로 도시를 포위하는 전략’을 적용하여 화웨이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 아무도 화웨이 제품을 알아주지 않던 초창기 시절, 화웨이는 외국 기업과 중국 대기업이 점령한 도시를 젖혀두고 농촌과 낙후된 성(省)부터 공략했다. 세계 시장에 진출할 때도 아프리카와 동남아·서아시아를 먼저 파고들었다. 세계의 ‘도시’지역, 즉 구미와 대조되는 세계의 혁명적 ‘농촌’이라고 일찍이 마오가 말했던 곳이다. 농촌으로 도시를 포위하는 것은 마오 유격전의 핵심이다. 상대가 강하고 내가 약할 때는 정면 상대하지 말고 내가 가진 화력을 상대의 약한 곳에 집중시켜 거점을 확보하는 방법이다. 화웨이는 이런 유격전 전략을 활용했다.
 
화웨이는 “고객의 가치관을 안내자로 삼고 고객 만족을 기준으로 삼으며, 회사의 모든 행동은 고객 만족 정도를 평가 근거로 삼는다”는 고객 중심주의를 기업 핵심 가치로 설정하고 있다. 이는 마오 대중노선의 핵심인 ‘인민을 위한 복무’에서 ‘인민’을 ‘고객’으로 바꾼 것이다. 화웨이는 조직의 관료화를 막고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마오가 즐겨 쓴 대중운동과 자기비판 방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1995년에는 이른바 ‘대사직 운동’을 일으켰다. 마케팅 부서부터 시작하여 모든 간부가 사표를 쓰고 제로베이스에서 평가를 받고 재출발했다. 간부들도 자아비판을 하는 대중운동 방식을 통해 화웨이는 조직 운영에서 수직적·수평적 유동성을 강화했다. 오직 능력과 업적에 따라 기층에서 간부로 올라갈 수도 있고 간부가 기층으로 내려갈 수도 있는 유동성이 생긴 것이다. 2007년에는 런정페이를 비롯한 입사 8년 이상의 경력직 모두가 사직한 뒤 업적과 경쟁을 통해 새로운 직위를 얻고 새로운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격년제로 위에서부터 시작하여 밑으로 내려오는 대중운동 방식을 적용하여 젊은 하위직의 아이디어와 활력을 자극하는 한편, 상위 간부들을 끊임없이 긴장시키고 젊은 층이나 현장 직원과 소통하도록 한 것이다. 화웨이는 특유의 수평적 직장문화, 철저한 능력 위주의 경쟁 풍토로 유명한데 그 배경에는 마오의 대중운동 방식이 있다.
 
화웨이

화웨이

화웨이의 마오 따라 배우기 전략은 1998년 ‘화웨이 기본법’ 제정으로 절정에 이른다. 이 법은 화웨이가 핵심 가치관에서부터 경영 방침까지를 총괄적으로 규정한 ‘화웨이 헌법’이다. 마오 시절인 1960년에 안산(鞍山) 철강 공장이 제정한 ‘안강 헌법’을 모방한 것이다. 전체 구성원의 단체정신을 강조하며, 간부가 노동에 참여하고 노동자는 경영에 참여하는 이른바 ‘쌍방향 참여(兩參)’ 등의 내용을 규정한 것은 중국 사회주의 기업운영의 교과서인 안강 헌법을 화웨이에 맞게 적용한 것이다.
 
화웨이의 독특한 이익 공동체 문화 역시 마오쩌둥의 토지혁명 전략에서 자극받았다. 마오의 성공은 토지혁명에 힘입은 덕이 크다. 대지주에게 빼앗은 토지를 농민들에게 분배하여 자기 땅을 갖게 한 이익 공유와 이익 균점을 통해 농민의 지지를 얻은 것이다. 화웨이는 지금도 비상장 기업으로 주식의 98.6%가 종업원 소유다. 창업자 런정페이의 지분은 1.4%에 불과하다. 화웨이는 입사한 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주주 권리행사가 제한적인 일종의 가상 주식을 주고 퇴사할 때 돈으로 환산해 준다. 이익 공동체 기업 문화는 해외 진출 때에도 대부분 해당국 기업과 합작하는 방식으로 적용된다. 화웨이 기본법 5조 이익 조항에는 “화웨이는 고객, 직원, 협력자 사이에 이익공동체 결성을 주장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물론 지금의 화웨이가 마오 사상과 혁명전략만으로 운영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화웨이는 마오 사상과 IBM 경영의 결합으로 운영된다고 보는 게 옳다. 화웨이는 1997년부터 IBM으로부터 대대적인 경영 컨설팅을 받고 조직운영을 업그레이드했다. 초창기 마오 사상에 미국식 경영을 접목한 중체서용(中體西用)이자 다국적 기업으로 거듭난 화웨이의 변신이었다.
 
화웨이는 지금 미국의 봉쇄 작전으로 사면초가다. 동쪽이 어두우면 서쪽이 밝고, 미국은 그저 세계 일부만을 대표할 뿐이라고 런정페이는 말하지만 미·중 패권 다툼 사이에 낀 현실의 상황은 엄중하다. 마오는 국민당이 펼친 다섯 차례의 포위 섬멸 작전으로 궤멸 위기를 맞았다가 대장정을 통해 기적처럼 살아나 중국을 차지했다. 마오 사상으로 일어선 화웨이가 미국이 치고 있는 겹겹의 포위를 뚫는 대장정에 성공할 수 있을까. 마오쩌둥은 건업(建業)에는 성공했지만 수성(守城)에 실패했다. 미·중 기술 패권 전쟁의 중심에 놓인 화웨이가 마오의 실패를 넘어설 수 있을지 세계적인 주목거리다.
 
이욱연 서강대 교수 겸 중국연구소 소장
공유하기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