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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가게에서 글로벌 기업으로…폴 스미스의 아이디어를 훔쳐라

중앙일보 2019.04.09 00:01 종합 20면 지면보기
영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디자이너 폴 스미스가 6월에 있을 전시를 준비하기 위해 지난 8일 한국을 방문했다.

영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디자이너 폴 스미스가 6월에 있을 전시를 준비하기 위해 지난 8일 한국을 방문했다.

“영감은 당신의 온 주위에 있다.”
영국의 유명 패션 디자이너 폴 스미스가 즐겨 하는 말이다. 오는 6월 6일부터 8월 25일까지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에서 폴 스미스의 전시 ‘헬로, 마이 네임 이즈 폴 스미스’가 열린다. DDP 개관 5주년을 기념해 서울디자인재단과 런던디자인뮤지엄이 공동 주최하고, 지아이씨클라우드가 주관한 전시다.  

'위트 있는 클래식'의 대가 전시회
사무실 등 재현해 사진·수집품 전시
"디자인 영감 얻는 방법 알리고 싶어"

폴 스미스는 가장 영국적인 패션 디자이너로 손꼽힌다. 15세에 학교를 그만두고, 여러 상점에서 다양한 일을 경험했다. 1970년 노팅험에 처음으로 3㎡짜리 작은 가게를 열고 76년 아내 폴린과 함께 자신의 이름을 건 컬렉션을 시작, 현재는 3000명의 직원을 가느린 글로벌 패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1990년대 수많은 유럽의 패션 명가들이 거대기업에 흡수됐지만, 폴 스미스는 독립적인 기업으로 여전히 건재하다. 2000년에는 영국 패션산업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영국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도 받았다.  
이번 전시는 기업의 CEO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폴 스미스의 다양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폴 스미스가 디자인한 의상을 비롯해 그가 직접 촬영하고 그린 사진과 그림, 수십 년간 수집한 명화와 팬들이 보내준 선물 등 총 1500점이 선보일 예정이다.  
이를 두고 폴 스미스는 8일 DDP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아주 쉽고 친절한 전시”라며 “많은 패션전시들이 보통 회고전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이 전시는 내가 어떻게 디자인 영감을 얻는지, 또 어떻게 작업하는지 모든 것을 직접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수많은 디자인 영감의 원천은 일상에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18세기 회화의 색채 속에도, 벽에 휘갈겨진 그라피티에도 영감은 있다. 영감을 주는 재료를 기록하기 위해 나는 항상 갖고 다니는 카메라를 이용한다. 이른바 나는 ‘사진 일지’를 쓰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다음은 기자간담회에서 그와 주고받은 일문일답이다.    
 
영국적인 클래식 디자인에 위트를 섞는 '위트 있는 클래식' 철학으로 유명한 폴 스미스. 예를 들어 밤색 수트 안감에 핑크, 그린, 오렌지 등 원색의 천을 사용해 옷깃을 펼쳤을 때 유쾌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방식이다.

영국적인 클래식 디자인에 위트를 섞는 '위트 있는 클래식' 철학으로 유명한 폴 스미스. 예를 들어 밤색 수트 안감에 핑크, 그린, 오렌지 등 원색의 천을 사용해 옷깃을 펼쳤을 때 유쾌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방식이다.

-여전히 카메라로 ‘사진 일지’를 만들고 있나.
“물론이다. 아마추어 사진가였던 아버지가 11살 때 첫 카메라를 사준 이후 매일매일 사진을 찍는 게 습관이 됐다. (사실 그는 난독증 환자로 글을 읽고 쓰는 게 힘들다. 때문에 카메라로 자신의 눈에 잡힌 일상을 기록하는 습관을 들였다) 그리고 이 사진들은 내가 디자인을 할 때 색감, 질감, 무드 등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 얼마 전 칠레에 갔을 때 찍은 다양한 산의 색감은 곧 컬렉션에 곧 적용될 거다.”  
 
-매일 휴대하는 카메라가 따로 있나.  
“예전엔 카메라를 따로 갖고 다녔지만 요즘은 휴대폰이 더 편하더라. 사실 카메라를 갖고 다니면 주머니가 처져서 옷 라인도 잘 안 산다.”(웃음)
 
-‘사진 일지’ 습관이 끼친 영향은.
“아버지가 카메라를 처음 사줬을 때만 해도 작은 구멍(뷰 파인더)을 통해 모든 것을 바라봐야했다. 또 필름 가격이 비싸서 한 장면을 촬영하기까지 아주 신중하게 집중해야 했다. 이런 태도들이 나중에 사람과 주변의 사물을 관찰하고 디자인 영감을 얻는 방식이 된 것 같다.”  
 
-전시회 설명 중 ‘겸손’이라는 단어를 여러 번 강조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금만 성공하면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한다. 그들이 찍어대는 셀피(한국에선 ‘셀카’라는 용어)는 정말 한심하다.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기보다 과시하는 데 더 관심이 많은 이들은 삶의 태도가 겸손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이번 전시회 제목을 '헬로, 마이 네임이즈 폴 스미스'라고 한 것도 모든 사람이 다 나를 안다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를 몰랐던 사람도 이 전시를 통해 디자인 세계의 즐거움을 접했으면 좋겠다.”  
폴 스미스 전시에 재현될 그의 첫 번째 숍의 모습. 그는 기자간담회에서 "시작은 아주 작은 가게였지만 이곳에서 천천히 손으로 모든 것을 일구고 노력하며 지금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며 젊은 디자이너 지망생들에게 꿈과 노력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폴 스미스 전시에 재현될 그의 첫 번째 숍의 모습. 그는 기자간담회에서 "시작은 아주 작은 가게였지만 이곳에서 천천히 손으로 모든 것을 일구고 노력하며 지금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며 젊은 디자이너 지망생들에게 꿈과 노력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그는 기자간담회에서 전시가 어떻게 구성될지 조목조목 설명했다. 3㎡짜리 작은 가게였던 첫 번째 숍을 전시공간에 재현하고, 파리 패션위크에 처음 도전했을 때 돈이 없어 자신이 묵던 호텔 방을 쇼룸으로 이용했던 일을 들려주며 그때의 작은 호텔방도 전시공간에 똑같이 만들어두었다고 설명했다. 모두 출발은 미미했지만 천천히 아주 조금씩 브랜드를 성장시켰던 자신의 일화를 통해 젊은 디자이너 지망생들에게 "꿈을 키우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그는 또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전시를 많이 보러왔으면 좋겠다"며 "돈이 아니라 직접 손으로 이뤄지는 노력을 통해 성장했고, 그것이 폴 스미스의 개성과 철학"이라고 덧붙였다.    

“중독치료를 받은 적도 없고, 전용 제트기를 타고 다니지도 않으며, 같은 여자와 40년째 살고 있다”는 그의 말처럼 폴 스미스는 화려함을 추구하는 여타 디자이너들과는 확실히 다른 길을 걸어왔다. 그는 70대인 지금도 여전히 호기심 왕성한 소년의 눈으로 옷뿐만 아니라 자동차·토끼인형·자전거 등을 직접 디자인하고, 아이폰을 만든 조나산 아이브의 요청으로 애플 본사에서 디자인 강의를 하며, 록 콘서트를 보기 위해 두 시간의 기차 여행을 마다하지 않는다. 또 오랜 세월 동안 팬들이 보내준 선물과 전 세계를 여행하며 수집한 물건들을 자신의 방 안에 차곡차곡 모아둔다. ‘헬로, 마이 네임 이즈 폴 스미스’는 바로 이런 폴 스미스다움의 집합체를 마주할 기회다. 
 
폴 스미스의 대표적인 상징인 무지개 스트라이프가 들어간 자동차. '미니' 자동차 회사와 폴 스미스가 협업한 작품이다.

폴 스미스의 대표적인 상징인 무지개 스트라이프가 들어간 자동차. '미니' 자동차 회사와 폴 스미스가 협업한 작품이다.

-‘폴 스미스다운’ 사고방식이란. 

“개인적으로 나는 아주 영국적인 사람이다. 때문에 가장 영국적인 사고방식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한마디로 ‘위트 있는 클래식’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다. 이는 디자인 뿐 아니라 삶 전체에 대한 철학과 태도를 말한다. 사람으로 치면 매너가 있으면서 유머감각까지 겸비한 사람이다. 디자인으로 설명하면 수트 안감에 색다른 컬러와 무늬를 숨겨 놓고 옷깃을 열었을 때 깜짝 놀라게 하는 폴 스미스 스타일이 그렇다.”
 
-패션시장이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 오히려 오프라인 매장의 개성이 중요해졌다.  
“온라인 구매는 편리하긴 하지만 감성적이진 않다. 런던 본사에는 12명의 건축 디자이너가 일하고 있는데, 그들의 역할은 전 세계 폴 스미스 매장을 각각 다른 개성으로 꾸미는 일이다. 또 스태프를 교육하는 데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단골 식당에 갔을 때 내가 늘 앉던 자리를 기억하고 안내해주는 직원이 있을 때 반가운 것처럼, 폴 스미스 매장을 방문하는 게 고객의 즐거움이 되도록 하는 게 목적이다.”
 
-특히 디자인 전공 학생들에게 조언한다면.  
세상은 패션과 디자인 관련 제품을 가득하지만 개성과 차별화되는 포인트는 점점 없어지고 있다. 서로를 따라하기 바쁜 세상이다. 젊은 디자이너일수록 자유롭게 사고하고, 다르게 생각하는 방법을 알게 된다면 패션의 미래도 달라지지 않을까." 
 
글=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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