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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훈의 축구.공.감] ‘52세 현역’ 미우라, 이 남자가 사는 법

중앙일보 2019.04.08 09:53
지난 2017년 2월 경기에 출전하며 '50세 현역 선수'의 벽을 뛰어넘은 미우라. [AP=연합뉴스]

지난 2017년 2월 경기에 출전하며 '50세 현역 선수'의 벽을 뛰어넘은 미우라. [AP=연합뉴스]

 
나이가 갖는 사회적 함의는 전 세계 어디서나 엇비슷하다. 20대 청년을 보면서 ‘대기업 중역 같다’거나 ‘중후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드물다.
  
1967년 2월26일생. 52세. 33년차. 이 숫자들의 무게감은 ‘시작’보다는 ‘마무리’ 쪽에, ‘도전’ 대신 ‘수성’에 조금 더 쏠려 있다. 해당 프로필의 주인공인 일본 프로축구의 ‘살아있는 전설’ 미우라 가즈요시는 그래서 더 특별하다.
 
1986년 브라질 명문 클럽 산토스에서 프로무대에 데뷔한 미우라는 지금까지 ‘현역 축구선수’ 타이틀을 유지하고 있다. 프로 이력만 33년이다. ‘버틴다’는 느낌이 아니다. ‘세상의 고정관념에 반기를 든다’는 식의 날선 목표도 없다. 그저 “현재 상태가 좋아서, 아직 도전할 게 남아서 계속 간다”는 게 선수 자신의 설명이다.
 
미우라는 지난 7일 일본 요코하마의 니파츠 미츠자와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비스카 후쿠오카와 J2리그(프로 2부리그) 경기에 소속팀 요코하마 FC의 공격수로 선발 출장했다. 선발로 나선 건 지난달 23일 FC 기후전 이후 올 시즌 두 번째다.
 
이날 출전이 또 하나의 역사가 됐다. 자신이 갖고 있던 J리그 최고령 출전 기록을 52세 1개월 12일로 늘렸다. 지난 2017년 3월 세운 최고령 득점 기록 경신 여부도 주목 받았지만 거기까지 이르진 못했다. 양 팀은 1-1로 비겼다.
 
지난 1997년 한일전을 앞두고 한국 취재진과 인터뷰하는 미우라 가즈요시. 서른 살이던 당시에도 미우라는 '베테랑'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뛰었다. [중앙포토]

지난 1997년 한일전을 앞두고 한국 취재진과 인터뷰하는 미우라 가즈요시. 서른 살이던 당시에도 미우라는 '베테랑'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뛰었다. [중앙포토]

 
미우라와 호흡을 맞춘 동료 중에는 아들보다 어린 선수도 있었다. 최전방에 포진한 미우라를 측면에서 지원한 고키 사이토(18)와 나이 차는 34살. 연예계 데뷔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진 미우라의 장남 료타(21)보다도 세 살이 적다.
 
세계축구계를 통틀어 살펴봐도 쉰 살이 넘은 선수가 현역 신분을 유지하는 케이스는 드물다. 특히나 모든 선수가 공격과 수비에 가담하는 ‘토털사커’가 대세로 자리잡으며 체력소모가 커진 현대축구에서 미우라는 ‘살아 있는 화석’이나 마찬가지다.
 
과거 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던 모리야스 하지메(50)는 현재 일본대표팀 사령탑으로 활동 중이다. 한일전에 나설 때마다 미우라를 전담마크했던 동갑내기 ‘족쇄맨’ 최영일(52)은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이 됐다. 동기들 중엔 현역 뿐만 아니라 지도자 생활까지 은퇴한 인물들도 적지 않다.
 
미우라(11번)의 드리블 돌파를 저지하는 김병지 골키퍼. 4번은 전담 마크맨 최영일. [중앙포토]

미우라(11번)의 드리블 돌파를 저지하는 김병지 골키퍼. 4번은 전담 마크맨 최영일. [중앙포토]

 
지천명을 넘은 나이에도 프로축구선수에 걸맞은 몸 상태를 유지하는 비결은 ‘철저한 몸관리’다. 미우라는 지난 2002년부터 매년 소속팀 동계훈련과 별도로 괌에서 개인훈련을 진행 중이다. 피지컬 코치는 물론, 재활 트레이너, 영양사, 매니저 등으로 구성된 ‘팀 카즈(Kazuㆍ미우라의 애칭)’가 함께 한다. 괌 훈련은 매일 오전과 오후로 나눠 하루 두 번씩 진행하는데, 젊은 선수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강도가 높다고 알려져 있다.  
 
재일축구칼럼니스트 신무광씨는 “기타자와 츠요시, 마에조노 마사키요 등 일본대표팀을 거친 축구해설가들이 괌을 방문해 미우라와 체력 대결을 펼친 적이 있는데, 현격한 차이로 미우라가 이겨 화제가 됐다”면서 “시즌 중에는 몸 관리를 위해 따로 방을 잡고 가족과 떨어져 지낼 정도로 축구만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혹독한 훈련을 견뎌가며 몸을 만드는 건 식지 않는 열정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지난해 요코하마 FC와 재계약하며 미우라는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표현을 썼다. 지난 5일 프랑스 스포츠 전문 일간지 레퀴프와 인터뷰에서는 “나는 죽을 때까지 뛰고 싶다. 지도자나 행정가, 해설가 등 다른 역할에도 전혀 관심이 없다”면서 “언젠가는 은퇴를 하겠지만, 당장은 아니다”며 남다른 의지를 드러냈다.
 
지난달 ‘절친’ 야구스타 이치로 스즈키(46)가 은퇴를 선언하면서 미우라는 더 외로워졌다. 두 선수는 ‘나이를 잊은 도전자’라는 공통분모를 바탕으로 특별한 감정을 공유해왔다. 미우라의 집에 이치로의 유니폼과 모자를 전시해놓았을 정도다.
 
46살까지 현역 메이저리거로 활약한 스즈키 이치로는 미우라의 오랜 벗이었다. [AP=연합뉴스]

46살까지 현역 메이저리거로 활약한 스즈키 이치로는 미우라의 오랜 벗이었다. [AP=연합뉴스]

 
이치로 은퇴 소식을 접한 직후 미우라는 “(이치로가) 더 뛸 수 있을 거라 생각해왔기 때문에 내 마음도 복잡하다”고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그러면서도 “52세의 나이로 경기에 나서는 게 부끄럽게 느껴질 때가 있지만, 그라운드에 서는 그 순간만큼은 모든 감정을 잊는다. 그저 기쁜 마음 뿐”이라고 덧붙였다.
 
일부 축구팬들은 미우라의 도전에 대해 ‘노욕(老慾)’이라며 평가절하한다. 관련 기사에는 “최고령 기록에 집착해 후배들의 앞길을 막는다”는 댓글이 빠짐 없이 등장한다. 미우라는 개의치 않는다는 입장이다. “축구에 대한 순수한 열정만 살아있으면 된다”며 일절 대응을 삼가고 있다.
 
소속팀 요코하마 FC에게도 미우라는 고마운 존재다. ‘살아 있는 전설’이 그라운드를 누비는 현장을 지켜보기 위해 매 경기 팬들과 취재진이 몰린다. 구단이 확보한 스폰서십 중에도 ‘미우라의 팀’이라는 이미지에 힘입은 결과물이 적지 않다.  
 
요코하마 FC는 1999년 요코하마 플뤼겔스가 요코하마 마리노스에 흡수 합병돼 사라진 이후 플뤼겔스의 정체성을 지키고픈 팬들과 일부 시민들이 힘을 모아 창단한 팀이다. 든든한 모기업이 없어 여러모로 열악한 구단에겐 미우라의 존재 자체가 천군만마다.
 
요코하마는 미우라와 1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 중인데, 다음 시즌 계약 내용을 매년 1월11일 오전 11시11분에 발표한다. 미우라의 등번호(11번)에서 착안해 ‘전설’을 예우하는 그들만의 방법이다. 11시즌 연속 두자릿수 득점에 도전하는 이동국(40)을 비롯해 ‘베테랑’을 둔 K리그 클럽들이 배워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축구팀장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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