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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중공업 잃고 장남은 타국서 별세···한진家 연이은 '비극'

중앙일보 2019.04.08 09:29
 
대한항공은 조양호 회장이 8일 숙환으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날 오전 서울 서소문 대한항공 1층 일우재단 전시장 유리에 비친 로비 모습. 강정현 기자

대한항공은 조양호 회장이 8일 숙환으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날 오전 서울 서소문 대한항공 1층 일우재단 전시장 유리에 비친 로비 모습. 강정현 기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지난달 27일 열린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한 지 12일 만에 타국에서 별세함에 따라 한진그룹도 소용돌이의 한복판에 빠진 모양새다. 
 
조 회장의 대표이사직 연임 실패로 한진가 비극은 정점으로 치달았다. 조 회장은 지난해 1월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책임 원칙) 행사를 강조한 이후 주주가 대기업 사주의 경영권을 박탈한 첫 사례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8일 별세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사진 한진그룹]

8일 별세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사진 한진그룹]

 
이에 앞서 조 회장은 지난해 6월 상속세 탈루 등의 혐의 등으로 시작한 검찰 조사를 시작으로 세 차례나 포토라인에 서야 했다. 2014년 '땅콩 회항' 사건과 지난해 '물컵 갑질' 논란 이후 두 딸은 대한항공과 계열사 경영에서 물러났고 검찰과 경찰 포토라인 앞에 섰다. 이와 별도로 조 회장의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이혼 소송 중이다.
 
조 회장의 장남 조원태 대한항공 대표이사도 연차수당 미지급 등으로 검찰 수사를 앞두고 있다. 조 회장의 부인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은 갑질 폭행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최대주주 가족들의 '갑질'이 불러온 후폭풍은 컸다. 국내 최대 항공사 대한항공을 거느린 한진그룹 대주주 일가가 수사기관의 칼날을 거쳐 갔거나 수사를 앞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대한항공은 검찰은 물론 경찰・세관・국토교통부・공정거래위원회의 수사 및 조사 대상에 올랐다. 재계 관계자는 "지난해 연말 조 회장과 식사를 했는데 '압수수색을 18번이나 받았다'고 했다"며 "얼굴에 얼이 나간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2002년 별세한 조중훈 전 대한항공 회장. [중앙포토]

2002년 별세한 조중훈 전 대한항공 회장. [중앙포토]

 
조 회장은 가족들을 대신해 날아드는 화살을 떠안아야 했다. '땅콩 회항' 사건으로 사회적 파장이 커지자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인 게 대표적이다. 그는 “제 여식의 어리석은 행동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며 “대한항공 회장으로서 또한 조현아의 아비로서 국민 여러분의 너그러운 용서를 다시 한번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가 교육을 잘못 시켰다”며 “제가 잘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2015년도 시무식에선 땅콩 회항을 언급하며 울먹이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민심은 들끓었다. 청와대 게시판에는 "대한항공에서 '대한'이란 문구를 떼라"는 청원이 등장하기도 했다. 대한항공 일부 직원은 지난해 봄부터 광화문에서 '조양호 회장 일가 경영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 집회를 열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조 회장의 폐 질환은 악화 일로를 걸었다. 성난 민심이 조 회장의 폐를 갉아먹은 셈이다. 대한항공 관계자 "주총 이전까지는 업무보고도 받고 상태가 좋았는데 주주총회 이후 (대표이사 선임 좌절된 후) 갑자기 상태가 악화했다"며 "많은 스트레스를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이 2014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에 참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조 회장은 경영 실패로 한진중공업 사내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중앙포토]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이 2014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에 참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조 회장은 경영 실패로 한진중공업 사내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중앙포토]

 
한진그룹에 앞선 한진가의 비극은 창업자인 고(故) 조중훈 회장이 세상을 떠난 2002년 시작됐다. 조중훈 회장은 장남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게 대한항공을, 차남 조남호 한진중공업홀딩스 회장에게 한진중공업, 삼남 조수호 전 한진해운 회장에게 한진해운을, 사남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에게 한진 투자증권 등을 나눠줬다. 
 
조중훈 회장은 "한민족의 전진"이란 의미를 담아 한진그룹을 창업했지만, 그가 떠난 후 한진그룹은 '형제의 난'으로 브레이크가 걸렸다. 기내 면세 사업권 등을 놓고 장남과 차남 등이 벌인 법적 분쟁은 6년 넘게 이어졌다.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는 지난해 서울 강서경찰서에서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뉴스1]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는 지난해 서울 강서경찰서에서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뉴스1]

 
삼남 조수호 회장이 2006년 타계한 뒤에도 경영권 분쟁은 이어졌다. 조양호 회장은 제수인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벌였다. 법정까지 간 한진해운 경영권 분쟁에서 최 회장은 승리했지만, 한진해운은 해운업 불황 등을 견디지 못하고 지난 2017년 파산했다. 국내 해운업계 1위를 기록하던 한국 해운업 간판스타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최은영 회장은 자본시장법 위반 등의 혐의로 2017년 12월 법원에서 징역 1년 6월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이에 앞서 조 회장 동생인 조남호 한진중공업홀딩스 회장은 지난달 29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한진중공업 사내이사직에서 물러나면서 경영권을 잃었다. 한진그룹 창업자인 조중훈 회장의 장남과 차남이 이틀 간격으로 그룹 핵심 계열사 사내이사직을 내려놓게 된 것이다.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왼쪽)과 장녀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 [연합뉴스, 뉴스1]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왼쪽)과 장녀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 [연합뉴스, 뉴스1]

 
조 회장의 사내이사직 박탈은 지난달 초 결정된 채권단의 출자전환에 따라 예견된 일이었다. 산업은행이 중심이 된 국내외 채권은 6874억원의 빚을 주식으로 바꾸는 출자전환을 결정했다. 한진중공업은 이달 초 이사회를 열고 이런 내용의 유상증자 계획을 결정했다. 이에 따라 조 회장과 지주회사가 보유한 한진중공업 지분(31.48%)은 사라졌다. 조남호 회장의 손을 떠난 한진중공업은 독자 생존을 준비하고 있다. 조양호 회장이 타국에서 별세함에 따라 한진가 형제의 화해는 끝내 이뤄지지 못하게 됐다. 조 회장의 별세 소식에도 메리츠금융지주 등은 이날 입장문 등을 내놓지 않았다.
 
 
2002년 조중훈 회장이 타계한 이후 한진해운이 사라졌고 한진중공업은 한진가의 손을 떠났다. 한진가의 비극은 현재진행형이다. 조양호 회장의 갑작스러운 별세에 주력 사업인 대한항공 경영권에 한진가의 경영권 확보에 비상등이 들어와서다. 국내 행동주의 펀드인 KCGI는 대한항공 지주사인 한진칼의 2대 주주 지위를 확보하면서 경영권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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