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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수의 에코사이언스] 사람의 힘으로 강풍을 막을 수 없다면

중앙일보 2019.04.08 00:19 종합 28면 지면보기
강찬수 환경전문기자·논설위원

강찬수 환경전문기자·논설위원

컵이 돌면서 바람 속도를 재는 풍속계가 발명된 것은 1845년이다. 영국의 프랜시스 보퍼트가 1805년 ‘풍속 등급’을 고안한 것도 풍속계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범선을 타고 항해하던 그 시절 바람 세기를 아는 것은 중요했다.
 
지난달 15일 현대제철 충남 당진제철소에 용오름이 들이닥쳤다. 저기압과 상층의 차가운 공기 덩어리로 인한 대기 불안정 탓이었다. 강한 바람에 슬레이트 지붕이 휴짓조각처럼 날아갔다. 기와가 벗겨지는 바람은 0~12등급으로 나뉘는 보퍼트 풍속등급에서 ‘큰 센 바람(strong gale, 9등급)’에 해당한다. 초속 20m가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달 31일 제주공항에는 윈드시어(Wind Shear) 특보가 발효됐다. 제주에서는 강풍을 동반한 기압골이 한라산을 만나 갈라졌다가 다시 합류하는 과정에서 바람의 방향과 세기가 갑작스럽게 바뀌는 난기류가 만들어진다. 윈드시어가 있으면 이·착륙이 매우 위험해 항공기 운항이 차질을 빚는다.
 
4일 밤 강원도 고성과 속초에서는 건조한 날씨 속에 양간지풍(襄杆之風)이 몰아치면서 산불이 크게 번졌다. 양간지풍은 봄철 동해안 양양과 간성 사이에 부는 강한 바람을 말한다. 봄철 남고북저(南高北低)의 기압 배치에서 서풍 기류가 형성되고, 태백산맥 위에는 기온 역전층이 형성된다. 기온 역전층과 태백산맥 산등성이 사이의 좁은 틈새로 서풍이 지나가면서 강풍으로 바뀐다.
 
4일 밤 강원도 미시령에서 최대 순간 풍속이 초당 35.6m의 강풍이 불었다. 보퍼트 풍속등급에서 초속 32m 이상은 가장 강한 12등급, 즉 ‘싹쓸바람(hurricane)’이다. 말 그대로 태풍·허리케인급이다. 1974년과 1980년 4월에도 속초에는 초속 46m 바람이 불었다. 보퍼트가 이런 양간지풍을 경험했다면 ‘13등급’을 하나 더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
 
계절과 지형으로 인해 발생하는 건조한 날씨와 양간지풍은 막을 수도 없다. 대신 산불로 인한 인명·재산 피해를 줄이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가능하다. 거기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얘기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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