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멀쩡한 집 놔두고 텐트 놀이? 사나이들의 진한 산막 캠핑

중앙일보 2019.04.07 09:00
[더,오래] 권대욱의 산막일기(26)
오는 4월에 산막 스쿨을 개최하기로 했다. 많은 사람들이 산막이 주는 위안, 편안함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에서 열게 되었다. [사진 권대욱]

오는 4월에 산막 스쿨을 개최하기로 했다. 많은 사람들이 산막이 주는 위안, 편안함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에서 열게 되었다. [사진 권대욱]

 
꽃피는 봄이 오면 산막은 아연 활기를 띤다. 움츠렸던 모든 것들이 활짝 기지개를 켜고 새 생명을 노래할 즈음이면 시도 없고 때도 없고 선생도 없고 학생도 없는 이상한 학교가 기어코 문을 열고야 만다. 오는 4월 셋째 주말 ‘2019 제1회 산막 스쿨’에는 대략 40여명의 손님이 자리할 것 같다. 젊은 스타트업 대표 10여명을 비롯해 언론인, 학자, 기업인, 환경운동가, 연주자 등 다양한 직군의 사람이 함께 모여 밥도 먹고 이야기도 하고 노래도 부를 것이다.
 
산막을 사랑하는 이유는 무엇이 좋아서가 아니라 아무리 힘들고 아파도 이곳에 오면 용기와 희망이 솟기 때문이다. 아무리 초라하더라도 나를 받아주리라 믿기 때문이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언제라도 내 편이 되어 줄 사람이 있다는 것. 이것만큼 사람을 위안하는 것이 있는가. 나뿐 아니라 모든 이의 그런 곳이 되면 좋겠다. 산막 스쿨의 존재 이유다. 발견이란 이 세상에 없던 것을 새로이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보는 것이다. 오늘 또 새로운 산막의 모습을 본다.
 
아련하고 짠한 나의 봄
독서당은 산막 곳곳에서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독서를 통해 우주를 만난다. [사진 권대욱]

독서당은 산막 곳곳에서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독서를 통해 우주를 만난다. [사진 권대욱]

 
산막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곳이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독서당은 가히 천하와도 바꿀 수 없는 나만의 공간이다. 세상이 싫어 숨을 곳이 필요할 때도, 기쁨이 있어 혼자만 기뻐하고 싶을 때도, 언제나 이곳은 유효하다. 오늘도 독서당에 앉아 봄을 추억한다.
 
나의 봄은 독서당 생강나무에 노오란 꽃 피고, 햇살 따사하나 바람 아직 차고, 연못가 얼음 녹은 자리에 시냇물 졸졸 흐를 때, 바로 그때여야 좋을 듯하다. 앞들 너른벌 아지랑이 피고 목련, 산벚꽃, 진달래, 개나리 만발해 온 세상이 봄 봄 할 즈음이면 이미 나의 봄은 아닌 듯. 터질 듯 충만하고 부족함 하나 없는 봄에 무슨 어여쁨이 그리 있으랴. 나의 봄은 좀 아련하고 짠하고 좀 슬퍼야 할 것 같다. 조금은 수줍고 조금은 부끄러워야 할 것 같다.
 
차일피일하느라 독서당 옆 매화는 아직 심지 못했다. 육당 최남선이 굴목재를 넘은 피곤을 잊고 청량한 꿈에 젖어 아쉬워했던 선암사 무우전 담장의 매화, 고려시대 대각국사가 심었던 청매와 홍매. 강릉 오죽헌의 율곡매, 장성 백양사의 고불매, 구례 화엄사의 백매, 선암사 무우전의 홍매와 백매. 세월 흐른 뒤 독서당의 심산홍매, 빗방울 달린 독서당전 생강나무 벚꽃 망울이 오늘의 내 붉은 마음 알리라. 곧 생강나무가 필 것이다.
 
독서당에서 책을 읽으며 산수유, 진달래, 개나리, 산벚꽃, 목련, 조팝나무, 생강나무의 꽃을 기다린다. [사진 권대욱]

독서당에서 책을 읽으며 산수유, 진달래, 개나리, 산벚꽃, 목련, 조팝나무, 생강나무의 꽃을 기다린다. [사진 권대욱]

 
산수유, 진달래, 개나리, 산벚꽃, 목련, 조팝나무가 만개한 봄을 기다리며 오늘도 독서당에 앉아 책을 읽는다. 불과 세평도 안 되는 공간이지만 내게는 그 어느 대궐보다 큰 지평이다. 우와, 독서의 품격이 다르구나. 두 사람 들어서면 꽉 찰 독서당. 봄 내음. 한 줄 읽고 한참을 생각하고, 두 줄 읽고 우주를 떠올리는 이곳은 나만의 성, 나만의 공간. 오늘은 책 읽다 예서 자야겠다.
 
하루 한 끼 골라 먹는 재미가 있긴 한데 마냥은 아니라 섭섭하긴 하다. 어제는 닭백숙에 닭죽, 오늘은 뭘까. 등심에 삼겹살이라도. 기대 가득 품고 물었는데 된장찌개라는 싸늘한 대답에 실망이 크다. 육식은 가급적 피해야 한다는 말에 “그럼 그렇지 내 그럴 줄 알았다. 된장에 고기나 좀 넣어” 이렇게 타협하려다 그래도 어디냐, 따슨 밥에 된장국이라니 그만도 얼마나 다행이냐. 또 이렇게 절대 긍정으로 돌아오는 나다.
 
2층에 물이 새는데 못다 한 수도전 공사는 엄두가 안 나고, 이래저래 찝찝하고 머리 아프다는 내 말에 “걱정할 거 뭐 있소, 사람 불러 고치면 되지”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나보다 더 느긋한 곡우. 언젠가 화상을 입어 입원했던 날, 그날 곡우 곁에 앉아 “여름 아니라 겨울이라 다행이다. 얼굴 아니라 다리라 다행”이라며 다행 타령을 이어가다 "남 아니라 내가 다쳐 정말 다행이다"까지 이르러 서로 얼굴 보고 웃고 말았다. 그래서 그랬던가. 곡우의 화상은 흉터 하나 없이 깨끗이 다 나았다.
 
저녁엔 사나이들끼리 산막 캠핑
산막 캠핑은 사나이만의 진한 우정이 깃들어 더욱 재미있다. 산막을 찾는 벗들과 책도 읽고, 글도 쓰고, 라면도 먹고, 자전거도 고친다. [사진 권대욱]

산막 캠핑은 사나이만의 진한 우정이 깃들어 더욱 재미있다. 산막을 찾는 벗들과 책도 읽고, 글도 쓰고, 라면도 먹고, 자전거도 고친다. [사진 권대욱]

 
봄은 몽글몽글 오고 있는데 이곳은 모든 것이 어수선하다. 먼지도 털어야겠고, 쇼트 된 배선도 고쳐야겠고, 고장 난 리모컨도 고쳐야겠고, 터진 수도도 고쳐야 하고, 2층 동파된 화장실 변기며 배관도 손 봐야 한다. 그런데도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는 나날. 산막을 찾은 똥 감독과 멀쩡한 집 놔두고 텐트 놀이가 한창이다. 곡우는 결코 모를 것이다. 사나이들의 아웃도어가 얼마나 진한 것인지를….
 
대접할 것은 마땅찮고, 점심은 떡라면으로 후루룩하고, 저녁은 정 소령 불러 닭 한 마리 삶으련다. 자유 영혼 똥 감독은 버려진 자전거 고친다고 왔다 갔다 하고, 하 원장은 황토방 짓느라 여념이 없고, 나는 따사한 봄볕에 졸며 깨며 글질이다. 이 감독의 텐트도 접수하고 한가로이 책을 읽는다.
 
따사로운 햇볕과 바람 소리 물소리 함께하는 독서는 한 줄 읽고 온종일 생각하는 여유가 있어 좋다. 황토방 다되면 내가 먼저 자 보련다. 하 원장네 닭도 맘 내키면 내가 서리하고. 먼저 보는 이가 임자인 우리 산막. 오늘도 하루가 간다. 닭 잡으러 간 정 소령. 병아리 사서 기르고 있나 왜 아직인가. ㅎㅎㅎ 옆집 함 사장은 돼지고기 사 들고 이제 왔다. 산막이 꽉 차는구나.
 
권대욱 ㈜휴넷 회장·청춘합장단 단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공유하기
권대욱 권대욱 ㈜휴넷 회장·청춘합장단 단장 필진

[권대욱의 산막일기] 45년 차 직장인이자 32년 차 사장이니 직업이 사장인 셈이다. 일밖에 모르던 치열한 워커홀릭의 시간을 보내다 '이건 아니지' 싶어 일과 삶의 조화도 추구해 봤지만 결국 일과 삶은 그렇게 확실히 구분되는 것도 아니고 애써 구분할 필요도 없음을 깨달았다. 삶 속에 일이 있고 일속에 삶이 있는 무경계의 삶을 지향하며 쓰고 말하고 노래하는 삶을 살고 있다. 강원도 문막 산골에 산막을 지어 전원생활의 꿈을 이뤄가고 있다. 60이 넘어서야 깨닫게 된 귀중한 삶과 행복의 교훈을 공유한다.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