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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봉지 없고 치약 덜어서 사간다…그런데 꽤 편했던 이유

중앙일보 2019.04.07 08:26
환경부는 지난 4월 1일부터 전국 대형마트 2000여 곳과 매장 크기 165㎡(약 50평) 이상의 슈퍼마켓 1만1000여 곳, 백화점, 복합쇼핑몰 등에 일회용 비닐봉지 제공을 전면 금지했다. 무상은 물론 유상으로 비닐을 받는 것도 불가하다. 지금까지 빈손으로 장을 보러 갔던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비닐 대란에 혼란스러워하며 첫 주말을 보냈다.  
지난 6일 포장재 없는 제로 웨이스트 팝업 마켓 '채우장'에 갔다. 한 방문객이 샐러리를 구입 한 뒤 에코백에 그대로 넣어 가져가고 있다. 유지연 기자

지난 6일 포장재 없는 제로 웨이스트 팝업 마켓 '채우장'에 갔다. 한 방문객이 샐러리를 구입 한 뒤 에코백에 그대로 넣어 가져가고 있다. 유지연 기자

이런 때 SNS에서 재미있는 소식이 하나 들려왔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카페 ‘보틀팩토리’에서 ‘채우장’이라는 작은 마켓이 열린다는 소식이다. 보틀팩토리는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는 카페로 꽤 여러 매체에 노출된 작지만 이름난 카페다. 일회용 컵은 물론 플라스틱 빨대도 사용하지 않는다.  
채우장 포스터. 보틀팩토리 SNS와 셀러들의 SNS를 통해 알게됐다.

채우장 포스터. 보틀팩토리 SNS와 셀러들의 SNS를 통해 알게됐다.

채우장은 용기를 가져와 채우는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장터로 한 달에 한 번 개최되는 팝업 리필 장터다. 비닐은 물론 소포장 없이 물건이 놓여있기 때문에 자신이 사고자 하는 품목에 맞춰 용기를 준비해 가야 한다. 요즘 같은 비닐 대란 시대에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6일 토요일 채우장을 찾았다.  
 
용기가 필요한 마켓
채우장은 다른 마켓과 다르게 가기 전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 어떤 품목을 살지 미리 정한 뒤 용기를 준비해 가야 하기 때문이다. 판매되는 품목 리스트를 살펴본 뒤 구매할 물건에 맞춰 용기는 물론 액체 제품 구매에 대비한 유리병을 챙겼다.  
준비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잼이나 참기름 등 액체류를 담으려면 병을 미리 열탕 소독해야 한다. 지갑에 핸드폰만 들고 장을 보러 가던 평소 풍경과는 확연히 다르다. 장바구니로 쓸 넉넉한 사이즈의 에코백과 천 주머니, 유리병과 유리 용기 등을 채운 뒤 꽤 무거운 가방을 들고 채우장으로 향했다.  
채우장에 가기 위해서는 물건을 채울 용기를 집에서 챙겨가야 한다.

채우장에 가기 위해서는 물건을 채울 용기를 집에서 챙겨가야 한다.

 
규모는 작지만 알차다
채우장이 열리고 있는 보틀팩토리 전경. 생각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방문객들의 호응은 좋은 편이었다.

채우장이 열리고 있는 보틀팩토리 전경. 생각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방문객들의 호응은 좋은 편이었다.

마켓이라고 하기에 규모는 상당히 작다. 공간을 따로 마련한 것이 아니라 카페와 한편의 작은 마당이 전부다. 하지만 방문객은 언뜻 봐도 30~40명 정도는 될 정도로 공간을 가득 채웠다.   
마당에 마련된 셀러들의 판매대. 쌀부터 참기름, 소금 등을 팔고있다.

마당에 마련된 셀러들의 판매대. 쌀부터 참기름, 소금 등을 팔고있다.

카페 안쪽에는 텀블러 등 작은 소품을 나누고 판매하는 작은 플리마켓이 마련돼 있다. 다른 한쪽에서는 잼과 치약, 천 주머니 등을 판매했다. 카페 안쪽 마당에는 조금 더 여러 품목이 준비되어 있다. 파슬리·고수·대파 등 신선 채소부터 쌀 등 곡물류·차·소금의 식료품들이 대부분이다.  
왼쪽부터 핑크클레이, 숯, 강황을 넣은 수제 치약. 원하는 만큼 덜어서 구입할 수 있다.

왼쪽부터 핑크클레이, 숯, 강황을 넣은 수제 치약. 원하는 만큼 덜어서 구입할 수 있다.

재미있는 상품들도 보였다. 먼저 치약이다. 치약·식초 린스·보디 비누 등은 서울 서촌에 위치한 핸드메이드 상품점 ‘모호’에서 나와서 판매하고 있었다. 숯, 강황, 핑크 클레이 성분을 넣은 세 가지 종류의 핸드메이드 치약이다. 소포장 되어 있지 않아 용기를 가져와 덜어가는 형태였다. 작은 립밤 케이스나 작은 잼병 등에 덜어갈 수 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용하는 비누도 있다. 비누를 쓰면 플라스틱 용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돼 환경에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다. 식초로 만든 린스도 작은 유리병에 덜어갈 수 있다.  
용기를 준비해오지 못한 방문객을 위한 유리병과 천 주머니 판매대.

용기를 준비해오지 못한 방문객을 위한 유리병과 천 주머니 판매대.

플리마켓에서는 혹시나 용기를 준비해오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유리병과 천 주머니 등을 판매하고 있었다. 집에서 사용하지 않는 텀블러를 기증받아 자유롭게 가져갈 수 있도록 마련해둔 텀블러 나눔 코너도 눈에 띄었다.
기증받은 텀블러는 무료로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기증받은 텀블러는 무료로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속 비닐 대신 천 주머니
마당 쪽으로 나가 본격적인 쇼핑을 해보았다. 보통 마트에서 속 비닐을 사용했던 신선 채소는 천 주머니를 이용해 담는다. 흙이나 물기가 조금만 묻어있어도 비닐을 찾곤 했는데, 천 주머니에 넣어보니 의외로 편하고 보기에도 좋았다. 천 주머니는 주로 의류나 신발 등을 살 때 넣어주던 것을 활용했다. 쌀 등 곡물이나 건표고버섯 등의 식료품을 구매할 때도 요긴하다.  
신선 식품은 천 주머니에 그대로 넣어가도록 했다.

신선 식품은 천 주머니에 그대로 넣어가도록 했다.

유기농 농장 창대농원의 제로 웨이스트 브랜드 ‘MU’에서는 우엉 차 등 차류와 말린 표고버섯, 작두콩 발효액 등을 판매하고 있었다. 우엉 차는 따로 포장돼 있었는데 종이와 생분해 가능한 옥수수 전분 비닐로 제작된 포장재를 사용했다고 한다. 잉크도 친환경 수성잉크로 사용 후 마당에 묻거나 일반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리면 매립 후 90일 이내에 완전히 분해되어 사라진다.  
생분해되는 옥수수 전분 비닐 성분의 포장재. 우엉차가 담겨있다.

생분해되는 옥수수 전분 비닐 성분의 포장재. 우엉차가 담겨있다.

연희동 ‘경성 참기름’의 깨·소금·들깻가루·기름류도 구매할 수 있었다. 패키지가 따로 없이 원하는 양만큼만 살 수 있어 오히려 경제적이다. 가져간 유리 용기에 소금을 저울로 담아 구매해봤다. 이렇게 구매하면 집에 와서도 따로 정리할 필요가 없이 구매한 유리 용기 그대로 찬장에 넣어두고 사용할 수 있어 편리하다.  
소금도 원하는 만큼 덜어 사갈 수 있다.

소금도 원하는 만큼 덜어 사갈 수 있다.

한쪽에서는 친환경 가루 세제를 판매하고 있었다. 역시 용기를 가져와서 덜어가는 방식이다. 구연산과 베이킹소다, 과탄산소다에 EM 발효액, 천연 계면 활성제 등을 섞어 만든 친환경 다용도 세제다. 100g에 500원으로 저렴한 편이다. 집에서 가져온 틴 케이스에 가루 세제를 가득 담아 구매한 방문객 김진아씨는 “친환경 세재는 사려고 하면 은근히 고가인데 저렴하게 원하는 만큼 구매해 갈 수 있어서 좋다”며 “환경에도 도움이 되고 피부에 닿는 제품들이니 내 몸에도 좋아 만족스럽다”고 했다.  
집에서 가져온 틴 케이스에 친환경 세제를 구입해 가는 모습.

집에서 가져온 틴 케이스에 친환경 세제를 구입해 가는 모습.

 
비닐 없어도 의외로 살만하다
수제 그래놀라는 금새 품절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수제 그래놀라는 금새 품절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비닐 없는 마켓에 방문해보니 의외로 준비된 소비자들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평소 환경에 관심이 많은 방문객이 대부분이었지만 용기를 가져와 구매해 가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나 불편함을 호소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실제로도 천 주머니와 용기를 가져오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게다가 편한 점도 있었다. 일반 마트에 다녀오면 지나치게 꼼꼼하게 포장된 것을 벗기고 다른 용기에 옮겨 담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쓰게 된다. 물건을 냉장고나 찬장 등에 정리해 넣은 후 남는 비닐 쓰레기의 양도 지나칠 정도로 많다. 용기를 미리 준비해가면 정리 시간이 짧다. 쓰레기를 배출하는데 들이는 시간과 노력도 줄일 수 있다. 장보러 가기 전 준비시간은 더 들지만, 정리 시간이 덜 들기에 최종적으로는 비슷하다는 결론이다.  
채우장에서 산 물건들. 따로 정리할 필요 없이 용기 그대로 사용할 수 있어 편리했다.

채우장에서 산 물건들. 따로 정리할 필요 없이 용기 그대로 사용할 수 있어 편리했다.

채우장과 같은 팝업 마켓이 아니라 상시로 열리는 친환경 마켓이 가까운 곳에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다 다양한 물건을 멀지 않은 곳에서 이런 방식으로 살 수 있다면 기꺼이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 흔히 환경 문제를 거론할 때 소비자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생산자나 판매자가 준비가 안 된 상황이 아닐까. 착하게 팔아준다면, 착하게 사줄 소비자들이 있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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