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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판 커지는 중국의 일대일로…이탈리아 거쳐 유럽으로 영향력 확대

중앙일보 2019.04.07 00:03
G7 회원국과 일대일로 첫 양해각서 맺어… 마테오 살비니 등 반대파 많아 성사 미지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3월 23일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에서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와 일대일로 양해각서(MOU) 서명식을 열었다. / 사진: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3월 23일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에서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와 일대일로 양해각서(MOU) 서명식을 열었다. / 사진:연합뉴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거침없는 서진(西進) 행보에 나섰다. 시 주석이 추진하는 글로벌 경제권 구상인 일대일로(一帶一路)가 서방 문명의 핵심지인 유럽에 교두보 마련을 가속화하고 있다. 시 주석은 500여 명의 대규모 사절단을 이끌고 국빈 방문한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에서 3월 23일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와 일대일로 양해각서(MOU) 서명식을 열었다. 허리펑(何立峰)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주임과 루이지 디 마이오 이탈리아 부총리가 MOU에 서명했다. 29개항에 걸쳐 정부와 민간이 광범위한 분야에서 상호협력을 하기로 했다. 항만과 에너지, 우주항공, 금융, 농업, 관광 등 산업 분야는 물론 문화재와 교육 분야 협력도 담았다.
 
중국이 서방 주요 7개국(G7) 회원국과 처음으로 맺은 일대일로 관련 MOU다. 이번 MOU는 중국이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이고, 미국과 유럽으로부터 ‘불공정 무역 관행’과 ‘지적재산권 도용’ 등을 비난받고 화웨이를 앞세운 5G 장비 공급이 견제받는 등 글로벌 대중 압박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맺은 것이라 더욱 주목을 받았다.
 
미중 무역전쟁, 경기 둔화 속 희소식
정식계약에 앞서 주체 간 상호 양해사항이나 의향을 기록한 문서인 MOU는 통상적으로 법적 구속력이 없다.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국제조약과 달리, 복잡한 절차 없이 행정부의 기관이 체결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제법상 구속력이 없다. MOU 체결 당사자들이 합의사항을 위반하거나 무효로 해도 책임을 질 필요도 없다. 하지만 실질적인 사업이나 효과와 무관하게 중국이 서방 핵심이랄 수 있는 G7 회원국인 이탈리아와 일대일로 동참 MOU를 맺었다는 사실 자체로 의미가 크다. 고도 산업국가이자 무역국가인 이탈리아는 유럽연합(EU)과 유로존(유로화 사용 지역), 그리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창립 회원국이다. 군사안보 측면에선 1949년 4월 4일 창설한 서방 세계 집단안보체제인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창립회원국이다. 지금까지 중국의 일대일로에 동참하기로 한 국가는 MOU 수준을 포함해 15개국이다. 재정난을 겪고 있는 그리스와 포르투갈을 빼면 모두 과거 동유럽 국가다. 처음부터 서방세계의 나라 중 일대일로 동참 의향을 밝힌 나라는 이탈리아가 처음이다.
 
이번 MOU가 실행으로 이어질 경우 중국은 막대 이익을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중국은 발칸반도와 중유럽·동유럽으로 이어지는 이탈리아 동북부 트리에스테 항구와 프랑스를 거쳐 서유럽 각지로 연결되는 서북부 제노바 항구의 개발과 투자 참여에 한걸음 다가섰다. 물류 분야의 큰 성과다. 특히 중국은 과거 사회주의 진영이던 유고슬라비아에서 분리 독립한 슬로베니아와 이탈리아의 국경지대에 위치한 트리에스테는 경제적·전략적으로 큰 가치가 있는 항구다. 중국은 이 항구를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이나 독일의 함부르크 같은 대규모 항구로 개발하고 싶어 한다. 트리에스테에서 100㎞ 반경 안에는 슬로베니아의 코페르와 크로아티아의 리예카가 있다. 트리에스테를 포한한 이 세 항구를 이용할 경우 수에즈 운하와 지중해를 거치는 아시아 지역 국가 화물의 독일 등 서유럽까지의 운송거리는 수백㎞가 단축된다. 물류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어 오래 전부터 한국·일본 등 아시아 국가가 눈독을 들여왔다.
 
이번 MOU에서 중국은 이탈리아로부터 약탈 문화재 796점을 반환받기로 약속 받았다. 상당한 정치적 성과다. 문화재 반환은 중국인의 민족주의를 북돋고 시 주석에 대한 충성심을 끌어올릴 결정적인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오랫동안 서구 침략과 저개발로 열등감에 시달렸던 중국이 경제 성장을 등에 업고 자존심을 회복하는 상징적인 사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만주족의 지배를 받던 청나라 시절인 1840년 아편전쟁을 시작으로 서구 열강의 침략을 받아 반식민지 시대를 경험했다. 당시 중국인들은 ‘아시아의 병자’로 조소받으며 치욕의 세월을 견뎌야했다. 중국의 ‘잃어버린 100년’이다. 청나라 말기 군권을 장악했던 위안스카이(袁世凱)의 배신으로 1912년 신해혁명에 성공해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중화민국을 세웠으나 군벌 시대를 견뎌야 했다. 일본의 침략으로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을 겪었고, 국공 내전을 거쳐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섰다. 마오쩌둥(毛澤東) 집권기에는 대약진운동이 실패해 수많은 사람이 아사했고, 문화대혁명으로 중국 전역이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그런 중국이 1978년 덩사오핑(鄧小平)이 제창한 개혁·개방 이후 경제력을 키워 오늘날에 이르렀다. 수많은 중국인은 중국이 이렇게 부국강병 정책을 추진한 결과 이탈리아가 약탈 문화재 반환을 약속하기에 이르렀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 일대일로를 강력하게 추진해온 시 주석의 권위가 더 높아질 수 있다. 중국 공산당의 권위도 동시에 높아지는 것은 물론이다. 중국이 서구 열강의 침탈을 받기 시작한 1840년대부터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때까지 해외로 밀반출된 중국 문화재는 1000만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약탈 문화재 796점 받환받기로
이탈리아의 마이오 부총리는 서명 직후 “오늘 서명한 MOU의 미래 경제적인 가치는 200억 유로(약 25조원)에 이른다”라고 주장했다. 이번 MOU를 통해 이탈리아가 확보한 사업의 가치만도 25억 유로(약 3조2000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중국의 노림수가 보인다. 예로 원전과 화석연료 발전설비를 개발·제작하는 이탈리아 국영 에너지 기업 안살도는 중국에 2500만 유로 규모의 가스발전 설비를 공급하기로 했다. 안살도는 이탈리아의 국부펀드인 ‘이탈리아 전략펀드가 지분의 60%를, 중국의 발전기기·전기기기 제조업체인 상하이 전기가 40%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중국이 항만 개발에 투자하려는 제노바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도 눈길이 간다. 결국 이번 수주는 결국 이탈리아 기업에 프로젝트를 호의적으로 발주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실질적으로는 중국이 투자한 자본이 덕을 보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제철소를 비롯한 금속산업 분야에 필요한 플랜트·장비를 공급하는 이탈리아 업체인 다니엘리는 중국이 주도하는 11억 유로(약 1조4000억원) 규모의 아제르바이잔 철강 프로젝트에 참가할 기회를 얻었다. 다니엘리는 중국이 개발에 투자하려는 이탈리아 동북부 트리에스테와 같은 프리울리베네치아줄리아주에 위치한 부트리오를 근거지로 삼고 있다. 하나 같이 중국에 이익이 되는 구조의 협력이다.
 
특히 고대 실크로드의 실질적인 종착역으로 간주되는 상징적인 도시인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에서 이번 일대일로 MOU를 체결했다는 사실은 중국에 큰 의미가 있다. 고대 실크로드의 핵심을 이뤘던 3개의 길 가운데 ‘초원의 길’은 몽골과 중앙아시아를, ‘오아시스의 길’은 오늘날 중국 서부지역과 중앙아시아와 이란 등 중동지역을 각각 거쳐 동지중해 지역의 시리아 서부 안티오크 등으로 연결됐다. ‘바다의 길’ 동남아와 인도, 아라비아 반도, 홍해를 거쳐 이집트나 레반트지역(오늘날 이스라엘·팔레스타인·레바논·시리아) 지역으로 이어졌다. 비단을 비롯한 동방의 상품은 그곳에서 무역선에 실려 지중해를 서에서 동으로 횡단해 이탈리아 반도의 로마에 이르렀다.
 
인구 6050만 명의 이탈리아는 자동차·정밀화학 등 고부가 산업이 발달했으며 경제 규모 면에서도 명실공히 선진국이다. 국제통화기금(IMF) 2018년 통계상 명목금액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이 2조869억 달러로 세계 6위다. 중국은 13조4572억 달러로 2위다.
 
‘실크로드 경제벨트’는 육상을 기반으로 삼는 경제협력 계획이고 ‘21세기 해상실크로드’는 해상 기반의 프로젝트다. 육상에선 도로와 철도, 해상에선 항만 등을 개발하고 연결해 거대한 경제권을 형성하겠다는 야심한 프로젝트다. 중국은 일대일로 계획의 대상 지역에는 지구 인구의 63%인 44억 명이 거주하며 관련 국가의 GDP는 21조 달러로 전 세계 GDP의 29%인 21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주장한다. 그 정도로 광범위한 지역과 인구에 대해 중국이 영향력을 미치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미국은 물론 이탈리아 내부, 심지어 집권 ‘포퓰리즘 연립정권’ 내부에서도 중국을 곱지 않게 바라보는 눈길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이번 MOU의 장래는 반드시 밝다고만 할 수는 없다. 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부총리 겸 내무장관이 대표적이다. ‘이탈리아 퍼스트’를 외치며 난민에 강력하게 반대하는 극우 성향의 정당 ‘동맹’의 대표로 이탈리아에서 가장 인기가 높다는 정치인이다. ‘동맹’은 과거 부유한 북부지역의 분리 독립을 주장했던 ’북부동맹‘이 집권연정에 참여하면서 바꾼 이름이다. 그는 이날 서명식에는 물론이고 하루 전 이탈리아 대통령궁에서 열린 시주석 환영을 위한 국빈 만찬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북부 체르놉비오에서 열린 행사에서 “중국이 자유시장을 갖춘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살비니 부총리는 오래 전부터 일대일로 참여에 대해 “중국 기업의 식민지가 될 수 있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으며 특히 통신 분야 협력은 이탈리아의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장기 침체 겪는 이탈리아도 돌파구 필요
하지만 이탈리아도 식어가는 경제 아궁이에 군불을 떼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한 실정이다. 이탈리아의 2018년 경제성장률은 1.5%이며 2018년 12월 기준 실업률은 10.3%에 이른다. 다른 서방 국가와 마찬가지도 이탈리아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장기 침체를 겪고 있다. 그런 이탈리아가 일대일로를 추진하는 중국의 투자를 받아 국내 인프라를 개발을 하고. 대중 교역을 늘려 활기를 되찾을 수 있을지, 부채의 늪에 빠져 중국에 고분고분한 서방국가가 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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