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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을 IRP로 바꿨더니 펀드가 사라졌다, 무슨 일?

중앙일보 2019.04.06 14:00
[더,오래] 김성일의 퇴직연금 이야기(28)
모든 제도는 법이나 시행령 혹은 감독 규정대로만 돌아가지 않는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원칙은 분명히 있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이건 이용자에게 불이익을 줄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설령 규정을 만들 때 미처 살펴보지 못한 것이 현실에서 나타날 때는 이를 즉각적으로 바로잡아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 이런 과정은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하물며 퇴직연금제도와 같이 이해관계자가 많고 업무가 복잡한 경우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퇴직연금제에서도 황당한 일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제도 운용의 잘못으로 가입자가 직접적인 손해를 입는 것이다. 아래 사례가 그러하다.
 
현물이전 안되는 펀드는 강제 환매
K 씨와 L 씨는 퇴직연금 가입자다. K 씨는 투자상품의 위험을 감수하기 싫어 퇴직연금을 원리금 보장상품에 운용했다. 문제는 L 씨에게서 발생했다. [사진 pixabay]

K 씨와 L 씨는 퇴직연금 가입자다. K 씨는 투자상품의 위험을 감수하기 싫어 퇴직연금을 원리금 보장상품에 운용했다. 문제는 L 씨에게서 발생했다. [사진 pixabay]

 
K 씨와 L 씨는 퇴직연금 가입자다. K 씨는 퇴직연금 적립금을 오로지 원리금 보장상품에 운용했다. 수익률이 아무리 낮아도 투자상품의 위험을 감수하기 싫어서다. 
 
회사를 퇴직할 때 나이가 52세라 퇴직연금을 받을 수 있는 55세까지 아직 시간이 남은 K 씨는 퇴직하면 강제로 IRP(개인형 퇴직연금)로 이전해야 하므로 IRP 계좌를 개설해 놓은 S 증권으로 옮겼다. 퇴직 전 그 증권사의 IRP 계좌를 퇴직연금 담당자에게 알려 주었다. 아무 문제 없이 자신의 적립금은 S 증권으로 이전됐다.
 
문제는 아래의 L 씨에게서 발생했다. L 씨 역시 아직 55세가 되지 않아 퇴직금을 일시금이나 연금으로 수령하지 않고 보험사로 이전하고 싶었다. 회사에 보험사의 IRP 계좌번호를 알려줬고, L 씨는 현물이전(현재 보유 중인 퇴직연금 A 펀드를 다른 사업자의 A 펀드로 이전)이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아무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전이 제대로 되었는지 옮겨간 보험사에 알아보니 적립금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그제야 부랴부랴 알아보니 보험사에 한 두가지 문제가 있었다. 
 
현물이전이란 현재 보유 중인 퇴직연금 A 펀드를 다른 사업자의 A 펀드로 이전하는 것을 말한다. [제작 현예슬]

현물이전이란 현재 보유 중인 퇴직연금 A 펀드를 다른 사업자의 A 펀드로 이전하는 것을 말한다. [제작 현예슬]

 
첫째는 보험사가 신탁업 자격이 없어 펀드 상품을 취급하지 못하는 것이다. 두 번째 문제는 신탁업 자격이 있는 사업자가 현물이전을 하려는 펀드를 보유하지 않는 경우 현물이전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L 씨의 펀드는 강제 환매가 돼 현금으로 보험사로 이전된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더 큰 문제는 사용자도, 사업자도 L 씨에게 이런 사항을 전혀 알려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결국 L 씨는 자신의 자산에 대한 처분 재량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고, 강제로 환매되어도 이를 알지도 못했다. 만약 환매 시점에서 그 펀드가 손해를 보고 있었다면 그 고통은 오로지 L 씨만 감당해야 한다. L 씨는 강력히 항의했지만 법에 준수한 기간 내 이전을 완료해 의무를 다했다는 답변밖에 돌아오지 않았다.
 
안전한 현물이전 방법은?
그럼 안전하게 현물 이전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옮기고 싶은 사업자에게 자신의 펀드와 동일한 펀드가 판매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다. 감독 당국도 사업자나 사용자 중 누가 현물이전 과정을 가입자에게 알려줄 것인지 명확히 하고 이를 의무화해야 한다. 만약 가입자가 같은 펀드를 보유하지 않는 사업자에게 옮기겠다고 고집하면 펀드 환매의 불가피성을 설명해야 한다.
 
현재 퇴직연금 가입자들은 낮은 수익률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 실적배당형 상품을 활용해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만약 L 씨처럼 황당한 일이 자주 생긴다면 사업자를 바꿔 수익률을 높여보려는 가입자는 생각을 달리할 가능성이 높다.
 
김성일 한국연금학회 퇴직연금 분과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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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일 김성일 한국연금학회 퇴직연금 분과장 필진

[김성일의 퇴직연금 이야기]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급속히 고령화하는 나라입니다. 100세 시대를 온전히 살아가려면 자산을 연금화해 오래 쓰도록 해야 합니다. 퇴직연금제를 활용하는 개인이 늘고 있는 건 그래서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 활용도는 낮은 수준입니다. 퇴직연금제는 앞으로 수 년 내 직장인의 가입이 의무화될 뿐 아니라 모든 소득이 있는 사람에게 개방될 전망입니다. 미국에선 우리의 퇴직연금제에 해당하는 401K 도입으로 월급쟁이 연금 부자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노후생활의 안착을 책임질 퇴직연금 활용법을 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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