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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마을 대청소로 4년6개월만에 밝혀진 '백골 살인사건'

중앙일보 2019.04.06 07:01
지난 3월 8일 오전 9시40분쯤 충남 예산군 신양면의 한 마을 주민들이 대청소에 나섰다. 봄을 맞아 마을을 돌며 쓰레기를 줍고 재활용품도 분리하는 연례행사였다.
충남 예산경찰서 형사들이 백골시신이 발견된 예산군 신양면 차동고개 중턱 비탈길에서 현장조사를 하고 있다. [사진 예산경찰서]

충남 예산경찰서 형사들이 백골시신이 발견된 예산군 신양면 차동고개 중턱 비탈길에서 현장조사를 하고 있다. [사진 예산경찰서]

 

전 남편 살해한 30대 여성, 인적 뜸한 도로변에 유기
남매 "재결합 요구하며 폭력 휘둘러 범행했다" 진술

이날 주민들은 평소 인적이 뜸한 차동고개 아래 산비탈을 청소하면서 사람의 것으로 추정되는 뼈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발견 당시 뼈는 손상 없이 사람이 누워 있는 모습 그대로였다. 이곳은 충남 예산과 공주를 잇는 왕복 2차선 도로변으로 바로 옆에 왕복 4차로의 새 도로가 뚫리면서 오가는 차량이 거의 없는 구간이었다. 지형적으로도 관심을 갖고 보지 않으면 발견이 어려운 구조였다.
 
마을 주민들은 “외지 사람들이 몰래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곳이라 주민들이 모여 청소를 했다”며 “그러던 중 백골이 된 시신을 봤다”고 말했다.
 
경찰은 백골을 수습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신원 확인을 요청했다. 백골이 발견된 지점이 외진 곳이라 타살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신원 확인은 쉽지 않았다. 뼈만 남은 상태라 시간이 오래 걸렸기 때문이다.
지난달 초 백골시신이 발견된 충남 예산군 신양면 차동고개 중턱 비탈길. 30대 여성은 재결합을 요구하며 폭력을 휘두른 전 남편을 남동생과 함께 살해한 뒤 이곳에 시신을 유기했다. 신진호 기자

지난달 초 백골시신이 발견된 충남 예산군 신양면 차동고개 중턱 비탈길. 30대 여성은 재결합을 요구하며 폭력을 휘두른 전 남편을 남동생과 함께 살해한 뒤 이곳에 시신을 유기했다. 신진호 기자

 
14일 만인 지난달 22일 경찰은 국과수로부터 백골의 신원을 통보받았다. 하지만 백골시신에 대한 실종신고나 사망신고가 접수된 적은 없었다. 경찰은 지인이나 가까운 사람이 살해한 뒤 유기한 것으로 보고 수사에 착수했다.
 
가장 먼저 유족에게 백골의 존재를 알리고 인계하는 과정부터 시작했다. 형제와는 10여 년 전부터 연락을 끊고 지내 찾는 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결국 찾은 유족은 10대 초반의 자녀 1명이 전부였다.
 
경찰은 이혼한 부인 A씨(37)가 아이의 친권자라는 점을 확인, A씨를 불러 전 남편의 일을 알렸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A씨의 태도를 수상하게 여기고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A씨의 고향이 백골이 발견된 곳과 멀지 않다는 점도 고려했다. 경찰의 추궁에 그는 결국 “내가 죽였다”고 자백했다.
 
사건은 2014년 10월 21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A씨는 전 남편인 B씨(당시 37세)를 아산의 한 식당으로 불러내 술을 마시게 했다. 이 자리에 자신의 남동생(34)도 불렀다. 이들은 술에 취한 B씨를 둔기로 때려 숨지게 한 뒤 차량에 싣고 차동고개로 가서 산비탈에 유기했다.
충남 예산경찰서 형사들이 백골시신이 발견된 예산군 신양면 차동고개 중턱 비탈길에서 현장조사를 하고 있다. [사진 예산경찰서]

충남 예산경찰서 형사들이 백골시신이 발견된 예산군 신양면 차동고개 중턱 비탈길에서 현장조사를 하고 있다. [사진 예산경찰서]

 
범행 당일 비가 세차게 내린 데다 살인에 따른 두려움으로 남매는 땅을 제대로 파지도 못하고 낙엽으로 겨우 시신을 덮은 뒤 달아났다. 이렇게 묻힐 뻔한 살인사건은 봄맞이 대청소에 나섰던 주민들에게 백골이 발견되면서 4년 6개월 만에 세상에 드러났다.
 
A씨는 경찰에서 “이혼한 전 남편이 자주 찾아와 재결합을 요구하며 폭행하고 행패를 부려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동생은 “누나가 맞는 모습을 보고 함께 범행에 가담했다”고 말했다. 폭력을 견디다 못해 A씨 남매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전 남편과 2007년 결혼한 뒤 2년여 만에 이혼했다. 이들 사이에는 아이가 1명 있었지만 A씨가 길렀다. A씨는 아이의 장래를 생각해 재결합도 고려했지만 전 남편의 잦은 폭력에 포기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백골의 시신을 확인한 뒤 전 부인을 상대로 수사를 시작했는데 의외로 쉽게 범행을 털어놨다”며 “폭력을 행사한 전 남편을 죽였지만, 그동안 속마음은 편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충남 예산경찰서는 남동생과 함께 전 남편을 살해한 뒤 차동고개 중턱 비탈길에 유기한 남매를 구속했다. 신진호 기자

충남 예산경찰서는 남동생과 함께 전 남편을 살해한 뒤 차동고개 중턱 비탈길에 유기한 남매를 구속했다. 신진호 기자

 
경찰은 지난달 29일 살인과 시체유기 등 혐의로 A씨 남매를 구속했다.
 
예산=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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