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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공작관 "北대사관 습격은 CIA 공작수법과 거의 비슷"

중앙일보 2019.04.06 05:00
스페인 주재 북한 대사관. [EPA=연합뉴스]

스페인 주재 북한 대사관. [EPA=연합뉴스]

 “북한대사관 공격에 미 중앙정보국(CIA)이 연루돼 있다.”  

스페인 유력 신문 엘파이스는 지난 2월 22일 수도 마드리드의 북한대사관에서 벌어진 습격사건과 관련해 ‘CIA 배후설’을 지난달부터 끈질기게 보도하고 있다. 현지 경찰과 정보당국(국가정보센터·CNI) 취재를 토대로 “(가담자 10명 중) 최소 2명은 CIA와 연결돼 있다”고 주장한다.  
한낮에 해외 공관을 상대로 습격을 감행한 ‘자유조선(옛 천리마민방위)’이란 단체명으로 활동하는 이들의 실체는 여전히 오리무중인데 현지 언론에선 CIA가 등장한다. 스페인-미국 간 외교 갈등으로까지 번질 수 있는 사안이다.      
 
#투자회사 직원으로 신분 가장
“훈련된 공작원의 소행으로 보인다.”  
오랜 기간 해외공작을 담당했던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 2명의 추정이다. 그만큼 사전 준비가 치밀했다는 것이 두 사람의 공통된 의견이다. 수사를 지휘 중인 스페인 법원은 지난달 26일 사건의 전모를 공개했다. 주범으로 지목된 에이드리언 홍 창(35)은 사건 2주 전 이미 북한대사관을 방문했다. 매튜 차오라는 가명을 쓰며 배런스톤캐피탈(Baron Stone Capital)이란 금융회사 직원(managing partner)으로 신분을 가장한 그는 대사관 책임자인 서윤석 서기관을 만나 투자 관련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 31일 북한이 스페인 주재 대사관 습격 사건 발생 후 처음으로 공식반응을 내고 미국 연방수사국(FBI) 등이 연루돼 있다는 의혹과 관련해 수사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13일 스페인 마드리드 주재 북한대사관 앞에서 한 대사관 직원이 기자들에게 사진을 찍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31일 북한이 스페인 주재 대사관 습격 사건 발생 후 처음으로 공식반응을 내고 미국 연방수사국(FBI) 등이 연루돼 있다는 의혹과 관련해 수사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13일 스페인 마드리드 주재 북한대사관 앞에서 한 대사관 직원이 기자들에게 사진을 찍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범행일이 다가오자 홍 창은 마드리드 시내를 돌며 권총과 군용칼, 수갑 등을 사들였다. 그사이 다른 행동대원들도 사다리와 결박용 테이프 등을 준비했다. 사건 당일 오후 4시 34분, 홍 창은 북한대사관 초인종을 눌렀다. 대사관 직원이 별 의심 없이 문을 열어주자 홍 창은 동료 9명과 함께 진입해 순식간에 직원들을 제압했다.  
임기응변도 뛰어났다. 대사관 여직원 한 명이 탈출하면서 비명을 질렀다. 놀란 이웃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다. ‘김정은 배지’를 옷깃에 단 홍 창은 대사관 직원인 척 경찰을 맞고 “아무 일 없다”며 돌려보냈다. 이후 5시간 동안 홍 창 일행은 대사관 안에서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과 자료들을 탈취한 뒤 달아났다.  
 
#“CIA 대소련 절취공작 빼닮아”
대북공작관 출신 A씨는 “경비가 삼엄한 대사관을 대낮에 10명씩 몰려가 작업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며 “역할 분담은 물론 사전 시뮬레이션도 여러 번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CIA 파견교육을 받았던 A씨는 “냉전 시기 CIA가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 소련대사관을 상대로 벌인 비공개 절취공작 사례를 들은 적이 있다”며 “거의 같은 수법”이라고 덧붙였다. 현지 정보당국 관계자도 “(습격조의 활동이) 마치 군사조직(military cell)이 수행한 것처럼 완벽하게 계획됐다”고 엘파이스와 인터뷰에서 말했다. 또 신문은 “(다른 것은 손대지 않고) 목표로 삼은 컴퓨터와 휴대폰만 탈취해가는 용의주도함을 보였다”고 전했다.  
미국 버지니아주 랭글리에 위치한 미 중앙정보국(CIA) 본부 기자회견장에 CIA 로고가 걸려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버지니아주 랭글리에 위치한 미 중앙정보국(CIA) 본부 기자회견장에 CIA 로고가 걸려 있다. [AP=연합뉴스]

A씨는 이번 습격을 주도한 홍 창에 주목했다. 한국계로 알려진 홍 창은 멕시코에서 자라고 미국에서 활동해 한국어와 영어, 스페인어를 모두 구사한다. 35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 특정한 직업이 없고 대사관 관계자를 속일 정도로 가장에 능하다는 점, 심각한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행동하는 대범함도 특징으로 꼽힌다. 정보기관 공작관(Case Officer)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모두 갖췄다는 것이 A씨의 평가다.  
A씨는 “스페인 언론이 보도하는 CIA 협력자 2명 중 1명이 홍 창일 가능성이 높다”며 “홍 창은 주공작원(Principal Agent)으로 다른 1명과 지휘조를 이뤄 공작 전반을 컨트롤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속도가 생명인 절취공작의 특성 상 나머지 8명은 경계와 전원차단 등을 책임지는 지원조, 컴퓨터 등 목표물을 색출하는 절취조로 역할을 나눠 움직였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A씨는 “사람이 하는 공작은 장비만 진화할 뿐 예나 지금이나 수법은 같을 수밖에 없다”며 “고전적인 방식이지만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기도 하다”고 주장했다.  
 
#FBI를 의도적으로 노출시켰나
해외공작관 출신 B씨는 “자금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실행하기 힘든 사안”이라고 정보기관 개입설에 무게를 뒀다. 조직화와 사전준비에 거액의 자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유조선의 전신인 천리마민병대가 암살당한 김정남의 가족을 마카오에서 제3국으로 도피시킨 사례만 봐도 상당한 국제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을 것이라는 추정도 나온다.
'자유조선'(옛 천리마민방위)이 지난 2월 22일 발생한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 괴한 침입 사건이 자신들의 소행이며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연계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자유조선은 지난 26일 오후(세계표준시 UTC 기준) 홈페이지에 올린 '마드리드에 관한 팩트들' 제목의 글을 통해 "(이번 일은) 습격(attack)이 아니었다"며 "마드리드 (북한) 대사관 내의 긴급한 상황에 대응(responded)했던 것뿐"이라며 대사관 침입을 인정했다. [자유조선 홈페이지 캡처=연합뉴스]

'자유조선'(옛 천리마민방위)이 지난 2월 22일 발생한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 괴한 침입 사건이 자신들의 소행이며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연계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자유조선은 지난 26일 오후(세계표준시 UTC 기준) 홈페이지에 올린 '마드리드에 관한 팩트들' 제목의 글을 통해 "(이번 일은) 습격(attack)이 아니었다"며 "마드리드 (북한) 대사관 내의 긴급한 상황에 대응(responded)했던 것뿐"이라며 대사관 침입을 인정했다. [자유조선 홈페이지 캡처=연합뉴스]

B씨는 “자유조선이 ‘미 연방수사국(FBI)에 자료를 넘겼다’고 선언한 것은 다른 의도가 숨어있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정보기관이 공작 수행 시 보안 차원에서 실시하는 ‘부분화(compartmentation)’의 일환일 수 있다는 것이 B씨의 견해다. 부분화란 정보기관 내에서 타부서가 알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것을 의미한다.  
B씨는 “미국 국내 수사기관인 FBI를 의도적으로 노출시킨 것은 CIA 연계설을 차단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외교 문제로 비화되는 것을 막기 위한 은폐 수법이란 뜻이다. 그러면서 B씨는 “다른 한편으론 FBI가 국내수사를 전담하는 만큼 획득한 컴퓨터 안의 내용이 미국 내 범죄행위와 관련 있을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탈북자 가담, 켈로부대와 유사?
CIA는 배후설과 관련해 “해당 내용에 대해선 어떤 답변도 하지 않겠다”는 입장으로 일관하고 있다. 미국 정부도 개입을 부인한다. 로버트 팔라디노 미 국무부 부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미 정보기관의 개입에 대한 질문에 "미 정부는 이 사건과 무관하다"고 반박했다.      
자유조선은 자신들의 홈페이지를 통해 “세계 각국의 동포와 결집한 탈북민 조직”이라면서 “김씨일가 세습을 끊어버릴 신념으로 결집된 국내외 조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이 어디까지 진실인지 파악하기 힘든 상황이다.  
실제 탈북자가 이 조직에 가담하고 있는지조차 베일에 가려져 있다. 자유조선이 유튜브 계정에 올린 동영상 중에는 서울 탑골공원에서 촬영한 7분여짜리 호소문 영상이 있다. 치마 저고리를 입고 글을 읽는 여성의 발음이나 억양은 탈북자를 연상케 한다. 또 다른 영상에선 북한 내부의 동조자가 촬영했다며 김일성과 김정일 초상화 액자를 바닥에 내동댕이치는 장면이 등장한다. 어느 정도 탈북자들과 연결고리가 있음을 짐작케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실제 탈북자들이 가담하고 있다고 해도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알 길이 없다.  
일각에선 한국전쟁 당시 미군 정보참모부의 지휘를 받았던 한국인 첩보부대, 속칭 켈로(KLO)부대와 상당히 유사한 부분이 있다고 본다. 이북 출신의 반공청년을 주축으로 구성된 켈로부대는 첩보수집에서부터 파괴공작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인 활동을 했던 부대다. 당시 창설한 지 얼마 안 된 CIA도 부산 영도를 거점으로 별도의 한국인 공작원들(JACK부대)을 양성했다. 신념이 강한 집단인 만큼 성과가 좋았다는 것이 당시 미군 기록에 나온다.
전직 정보기관 고위 관계자는 “한국과 달리 미국 정보기관은 정권의 변화와 무관하게 자신들이 꼭 해야 할 공작은 일관성 있게 진행한다”면서 “만일 스페인 북한대사관 습격사건에 CIA가 개입했다면 넓은 의미에서 북한 정권의 교체까지 염두에 둔 정치공작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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