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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아시아 기업 ‘빅5’만 살아남는다?

중앙일보 2019.04.06 00:03
한·중·일 기업 필두로 치킨게임 양상도… 국내에선 ‘포스트 반도체’로 배터리산업 기대 커져
 
글로벌 배터리 시장을 놓고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전기차 시대가 활짝 열리기 시작하면서 배터리 수요가 급증하고 있어서다. 산업계에서는 한국 경제를 이끌 ‘포스트 반도체’로 배터리를 꼽는다. 실제 국내 기업이 최근 새로 수주한 금액과 수주 잔액은 조선업을 넘어 반도체 산업에 근접하는 모습이다. 국내 배터리 3사도 앞다퉈 조 단위 투자에 나섰다. 관련 업계에서는 배터리 산업이 과거 반도체 산업처럼 치킨게임을 거쳐 과점구조로 재편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과연 한국 배터리 산업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글로벌 배터리 시장의 동향과 국내 배터리 업체 전망, 글로벌 배터리 기술의 현황 등을 다각도로 짚어봤다.
 
사진:ⓒ gettyimagesbank

사진:ⓒ gettyimagesbank

배터리가 차세대 먹거리로 주목 받고 있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해 연말 국내 배터리 3사 경영진을 만나 “전기차 배터리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넘어설 대표적인 고성장 신산업”이라고 말했다. 성 장관은 이 자리에서 “전기차 배터리는 신에너지 사업의 게임 체인저(game chaner, 시장 판도를 뒤바꿔 놓을 만한 혁신산업)”라며 정부 차원에서의 육성 의지를 강조했다. 실제 최근 LG 화학·삼성SDI·SK이노베이션 등 국내 배터리 업계 상위 3 사의 신규 계약 건수가 지난해 110 조원에 달했다. 석유화학(501억 달러)·자동차(409억 달러) 수출 규모를 넘어섰다. 한국의 간판산업인 반도체 수출 규모(약 141조원)에 아직 못미치지만 성장 속도를 감안하면 ‘포스트 반도체’라는 호평이 괜히 나오는 건 아니다.
 
 
전기차 순풍 타고 수요 급증


IHS마킷과 배터리 업계 전망을 종합하면, 2017년 330억 달러(약 37조원) 규모였던 글로벌 리튬-이온 배터리 시장 규모는 연평균 25% 성장해 2025년 1600억 달러(약 182조원)로 불어날 전망이다. 2025년까지 1490억 달러(약 169조원)로 성장할 전망인 글로벌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배터리 시장에 활력을 불어 넣는 일등공신은 전기차다. 2020년을 기점으로 전기차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해 관련 배터리 수요가 늘어날 것이란 기대가 크다.
 
특히 전기차 시장의 양대 축인 유럽과 중국의 환경 규제 관련 정책 강화가 전기차 수요 확대의 원동력이다. 유럽연합(EU) 의회는 2021년까지 유럽에서 판매되는 신차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1km당 95g으로 제한하기로 했다. EU 의회 결정에 따라 유럽 완성차 업체들은 가솔린·디젤 차량은 줄이고 전기차 모델을 대폭 늘려야 한다. 이미 올해 초부터 유럽에서는 전기차 판매 증가 추세가 가파르게 나타나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25년까지 신차 판매의 20%를 전기차로 채우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충전소 등 인프라 투자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미 지난해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 대비 85% 증가한 약 110만대를 기록, 유럽과 미국 시장 대비 각각 4배와 3배 수준에 달했다.
 
이런 흐름에 따라 폴크스스바겐·GM·포드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속속 차세대 자동차 연구·개발의 초점을 전기차에 두면서 배터리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완성차 업체들은 5년 후 양산할 신차 개발 프로젝트의 중심을 전기차에 두고 있다. 자동차 시장점유율 10% 이상으로 1위인 폴크스바겐은 2020년 3만 달러(약 3400만원) 이하 전기차 출시를 준비하면서, 2025년까지 연간 300만대가 넘는 전기차를 판매하고, 50종 이상의 전기차 차종을 갖추겠다는 ‘로드맵 E’ 계획을 내놨다. 블룸버그뉴스 파이낸스 에너지(BNEF)에 따르면 현재 전체 차량 판매에서 1%에 불과한 순수전기차 판매 비중은 2020년 3~6%로 오르고 2030년이면 30%에 육박할 전망이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전기차 시장은 내년 610만대에서 2025년 2200만대로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기차용 배터리뿐만 아니라 전기스쿠터와 전기자전거를 비롯해 무선청소기 등에 들어가는 원통형 배터리 수요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인 B3에 따르면 원통형 배터리 세계 수요는 2015년 23억개 수준에서 신시장 확대에 따라 연평균 27% 성장, 2019년에는 60억개 수준에 다다를 전망이다. 여기에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각종 산업공구와 선박, 무인항공기에도 배터리가 쓰일 전망이다. 시장조사업체 B3에 따르면 세계 전동공구용 배터리 수요는 2012~2016년 4년 만에 3배 가까이로 폭증했다.
 
또 이동성이 보장돼야 하는 스마트 디바이스의 배터리 중요성도 커졌다. 블룸버그는 “제조사마다 스마트폰의 기술과 기능의 차별성이 엇비슷해졌다”며 “배터리 수명·성능 같은 차별화 포인트가 중요해졌으며, 제조 업체들이 이 분야에서 경쟁 우위를 가져가려 한다”고 분석했다.
 
 
시장 과점화 가속 … 반도체 치킨게임 연상
 
현재 세계 배터리 시장은 테슬라의 수요를 독점한 파나소닉에 힘입어 일본이 앞서는 가운데 중국이 내수물량으로 CATL·BYD를 키우는 양강 체제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시장점유율(출하량 기준)은 중국 CATL(21.9%), 일본 파나소닉(21.4%), 중국 BYD(12.0%), 한국 LG화학(7.6%)·삼성SDI(3.1%) 순이다. 지난해 상위 3개 업체의 시장점유율은 56%로, 이 가운데 파나소닉이 22.9%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의 지난해 출하량은 전년 대비 모두 100% 넘게 증가했다. LG화학과 삼성SDI를 포함한 상위 5개 업체가 전체 공급량의 66%를 차지하고 있다.
 
앞으로 세계 배터리 시장은 과점체제가 더욱 굳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의 배터리 제조 업체가 일정 생산능력에 도달하면 시장 후발주자에 대한 진입장벽이 생기기 때문이다. 배터리 업계에서는 신생 기업이 시장에 진입하고 실질적인 입지를 확보하는 데 조단위 투자는 물론 7~10년의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특히 올해는 대규모 배터리 생산 업체가 대량 생산시설을 갖추는 전환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UBS는 “글로벌 배터리 수요는 올해 93GWh에서 2025년 973GWh로 10배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라며 “아시아 기업 5곳이 시장의 80%를 차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에서는 이미 경쟁력 없는 중소 업체들이 정리되는 분위기다. 2016년 150개 정도였던 중국의 배터리 기업 수는 지난해 100개 안팎으로 줄었다.
 
이런 모습은 1990년대부터 30여 년 간 ‘치킨게임’을 거치며 최근 승자독식의 초호황을 누린 반도체산업을 떠올리게 한다. 10년 전에 비해 반도체 업체 숫자는 절반으로 줄었고, 상위 5개 업체의 점유율은 50%에 육박하게 됐다. 치킨게임 당시 반도체 업체들은 팔수록 손해를 볼 만큼 극단적인 가격 인하 정책으로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체는 기술력으로 치고 나가고 자본력으로 버티는 전략으로 후발주자의 추격을 막아냈다. 일각에서는 배터리 시장도 이와 비슷한 양상을 보일 수 있다고 본다. 다만, 현재 배터리 시장은 공급 과잉보다는 수요 증가의 속도가 빠르다는 점에서 반도체와 같은 당분간 극단적인 저가 경쟁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생산량 확대로 진입장벽 높여
 
LG화학은 미국 GM의 전기차 ‘볼트 EV’ 하부에 탑재되는 배터리팩을 공급했다. / 사진:연합뉴스

LG화학은 미국 GM의 전기차 ‘볼트 EV’ 하부에 탑재되는 배터리팩을 공급했다. / 사진:연합뉴스

엇갈린 전망 속에서 글로벌 업체들은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선두 업체는 지배력을 다지고 효과적인 진입장벽을 만들기 위해, 후발주자들은 시장 구도가 굳어지기 전에 반전을 모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들의 전략은 크게 두 가지다. 생산량 증설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고 후발주자의 진입을 막는 한편, 완성차 업체 등 관련 산업·기업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기술 개발과 수요 확보를 동시에 노리는 방식이다. 파나소닉은 테슬라와의 독점 계약 고리를 끊고 일본 도요타와 배터리 합작사를 설립하기로 했다. 수요 다변화와 내수시장 확보를 위한 전략이다. 합작사는 도요타는 물론 마쓰다·다이하쓰·스바루 등 완성차 제조사에도 배터리를 공급할 전망이다. 두 회사는 차세대 배터리도 공동 개발할 예정이다. 이뿐만 아니다. 파나소닉은 북미 최대 자전거 제조 업체인 켄트인터내셔널과 파트너십을 맺고 미국 시장에 진출하기로 했다.
 
중국은 탄탄한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유럽과 미국 시장 공략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CATL는 연간 생산 규모가 100GWh에 이르는 세계 최대 공장을 독일에 지을 계획이다. 중국 업체인 패러시스는 최근 다임러의 대규모 물량을 수주하는 등 CATL·BYD 외에 신규 배터리 제조사의 국제무대 데뷔도 이뤄지고 있다.
 
리커창 중국 총리는 3월 5일 열린 중국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배터리 산업 육성 의지를 재차 밝혔다. 산업 활성화를 위해 기술력을 갖춘 일부 기업에 전기차 보조금을 집중하고, 외국 자본 유치에도 적극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3월 7일 테슬라에 상하이 전기차·배터리 공장 건설에 필요한 6000억원 규모의 대출을 승인하며 시장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냈다. 김병주 SNE리서치 상무는 “중국 정부가 신규 보조금 정책으로 전기차 배터리의 질적 성장을 추구하며 2020년 이후 시장에 대비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유럽에선 프랑스와 독일이 전기차 배터리 공장 설립에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프랑스는 앞으로 5년 간 7억5000만 유로(약 9547억원), 독일은 10억 유로(약 1조2730억원)를 투자해 각국에 배터리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파리에서 열린 국제자동차제조기구에서 독일과의 협력 계획을 밝히며 “주권과 독립 측면에서 프랑스와 유럽이 비유럽계 국가들에 (전기차 배터리를) 100% 의존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언급했다. 유럽의 전기차 배터리 시장 보호 움직임은 계속 강화될 전망이다. 유럽공동체(EC)는 2017년 EU 회원국, 유럽투자은행(EIB) 등과 함께 ‘유럽배터리연합(EBA)’을 출범하고 전기차 배터리 원재료 확보부터 배터리 셀과 팩 생산, 전문 인력 양성, 배터리 재활용 등 생태계를 유럽에 구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원자재 수급 전쟁도 치열
 
배터리 업계 중·하위권인 삼성SDI와 LG화학, SK이노베이션 등 국내 3사는 최근 GM과 포드, 폴크스바겐, BMW, 다임러, 르노, 재규어 랜드로버 등 완성차 그룹의 물량을 고루 확보했다. 완성차 업체들로선 테슬라와 손을 잡은 일본이 우호적일 수 없고, 중국은 품질에 대한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보니 기술력을 갖춘 한국을 대안으로 선택했다는 분석이다. 실적이라는 순풍을 달고 최근엔 적극적인 투자로 생산능력 확대에 적극 나서는 모습이다. LG화학은 1월 10일 중국 난징 배터리 생산공장 증설을 위해 총 1조2000억원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이곳 외에도 중국 난징 빈장 경제개발구에 지난해 10월부터 전기차 배터리 제2공장을 짓기로 했다. 2023년까지 2조1000억원을 단계적으로 투자해 고성능 전기차 배터리(1회 충전에 주행거리 320㎞ 이상) 50만대 이상의 생산능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폴란드 전기차 배터리 공장 생산능력도 6GWh 수준에서 15GWh까지 늘리고 있다.
 
중국 시안에 배터리 공장을 둔 삼성SDI도 1조원 안팎을 투자해 제2공장 신설을 검토하고 있다. 연간 약 40만대분의 전기차 배터리 생산능력을 확보하는 규모로 추정된다. 올 들어 중국 톈진시 소형 배터리 공장 증설도 실시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설립한 기존 소형 배터리 공장 인근 10만㎡ 부지에 4000억원가량을 투자해 신규 라인을 3~4개 추가한다. 미국 미시간주 전기차 배터리팩 생산라인 증설에도 미시간주로부터 약 111억원의 보조금을 지원받고 약 70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후발주자인 SK이노베이션은 지난 1월 4일 미국 조지아주와 1조9000억원 규모의 배터리 공장 투자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SK이노베이션은 미국 조지아 주 커머스시에서 3월 19일 전기차 배터리 공장 기공식을 열었다. 지난해 8월에는 중국 장쑤성 창저우에 베이징자동차·베이징전공 등 합작 파트너사들과 함께 8200억원을 투입해 신규 전기차 배터리 공장도 짓기로 했다.
 
한편, 배터리 수요에 발맞춰 원자재를 얼마나 잘 조달하느냐도 배터리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할 요소로 꼽힌다. 이에 국내 배터리 업체들도 발 빠르게 원자재 수급 전쟁에 뛰어들었다. LG화학은 코발트 확보를 위해 지난해 2400억원을 투자해 중국의 화유코발트와 합작법인을 설립하기로 했다. 화유 코발트는 2017년 기준 정련 코발트 2만t을 생산한 세계 1위 업체다. 또 지난해 캐나다의 네마스카리튬과 3만5000t 규모의 수산화리튬 공급계약을 한 데 이어 중국 쟝시깐펑리튬과 4만8000t 수산화리튬 공급계약을 했다. 삼성SDI는 지난해 포스코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칠레 리튬 프로젝트 최종 사업자로 선정됐다. 이를 통해 삼성SDI는 2021년부터 연간 3200t 규모의 양극재를 공급받게 됐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월 호주의 배터리 원재료 생산 업체인 오스트레일리안 마인즈와 황산코발트, 니켈에 대한 장기 구매 계약을 했다.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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