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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 올라간다~" 승천 순간을 들켜버린 이무기의 좌절

중앙일보 2019.04.05 07:00
[더,오래] 권도영의 구비구비 옛이야기(30)
영화 '디 워(D-War)'에 등장하는 이무기의 모습. 용과 달리 이무기의 모습은 확인하기 쉽지 않다. 그나마 이 영화가 이무기의 모습을 가장 자세히 묘사했다고 평가받는다. [중앙포토]

영화 '디 워(D-War)'에 등장하는 이무기의 모습. 용과 달리 이무기의 모습은 확인하기 쉽지 않다. 그나마 이 영화가 이무기의 모습을 가장 자세히 묘사했다고 평가받는다. [중앙포토]

 
‘용 못 된 이무기’란 말이 있다. ‘의리나 인정은 찾아볼 수 없고 심술만 남아 있어 남에게 손해만 입히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사전에 풀이돼 있다. ‘용 못 된 이무기 방천 낸다’는 말도 있다. 못된 사람은 못된 짓만 한다는 말이라고 한다. ‘방천(防川)’은 ‘둑’을 뜻하는데, ‘방천나다’라고 하면 ‘둑이 터지다’란 뜻의 전라도 쪽 방언이다.
 
이무기는 전설상의 동물로 뿔이 없는 용으로 풀이되지만, 보통 이야기 속에서는 어떤 저주 때문에 용이 되지 못하고 물속에 사는 여러 해 묵은 큰 구렁이를 이른다. 이때의 ‘여러 해’는 ‘천 년 묵은’ 정도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상상 속의 동물은 천 년 정도는 묵어 주어야 신비한 존재감을 갖추게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무기의 모습은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용이 되다가 말았다고 하니 그걸 기준으로 상상력을 발휘할 뿐이다. 아쉬운 대로 심형래 감독의 ‘디 워’에 나오는 이무기가 공들여 재현한 이미지로 받아들여지고, 그나마 가장 많이 검색되고 있다.
 
중국 용의 발톱이 다섯 개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와 같거나 많을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 그림 속 용은 발톱이 네 개다. 사진은 숭례문 홍예의 황룡과 청룡. 사진공동취재단

중국 용의 발톱이 다섯 개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와 같거나 많을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 그림 속 용은 발톱이 네 개다. 사진은 숭례문 홍예의 황룡과 청룡. 사진공동취재단

 
우리의 용 그림은 발톱이 네 개인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중국의 용은 발톱이 다섯 개이므로 그와 같거나 많을 수가 없었다. 이무기는 이름도 다양해 ‘이스미(강원), 이시미(강원), 이멩이(전남), 이무레기(전남), 이무래기(전라), 율무기(충남), 율미기(충남)’ 등으로 불린다. 용이 못 된 이무기가 왜 그렇게 심술만 남아 못된 짓을 하게 되었는지 설명해 주는 이야기가 있다.
 
용이 못 된 깡철이와 용이 된 구렁이
어느 바닷가 마을에 구렁이가 산다고 알려진 커다란 바위가 있었다. 한 천 년쯤 묵은 구렁이가 승천하려고 용틀임을 하고 있는데, 그걸 본 한 여자가 “야, 저기 용이 올라간다” 고 외쳤다. 구렁이는 용이 되려다 말고 깡철이가 되어 아직도 그 바위 밑에 살고 있다. 그 뒤로 바위 밑에서 안개가 퍼져 나오면 반드시 비가 왔다.
 
다른 동네에서는 이런 이야기도 전해진다. 옛날에 깊은 산이 있었다. 그 산엔 대낮에 가도 구렁이가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소문이 있었다. 한 나그네가 해가 져 이미 캄캄하게 어두운데 그 산길을 가려고 했다. 동네 사람들이 깜짝 놀라 말렸지만, 나그네는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넘어가는 순간 갑자기 하늘이 ‘우닥딱딱, 우닥딱딱’ 소리를 내며 꽝꽝거리기 시작했다.
 
나그네가 주위를 둘러보니 집채만큼 커다란 구렁이가 몸을 뒤틀고 있었다. 나그네는 그 모습을 보고 넙죽 엎드려 절하며 “아이고 용 님. 용이 되어 올라가소서. 용이 되어 저 하늘로 승천하소서” 하고 열심히 빌었다. 구렁이는 몸을 몇 번 뒤튼 뒤 용이 되어 하늘 높이 올라갔다.
 
그동안 이 구렁이는 용이 돼 승천하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사람들이 보고 겁을 집어먹고 놀라 자빠지거나 저기 용을 보라며 함부로 말하는 것을 듣고 승천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나그네가 진심으로 빌어 준 덕에 용으로 인정받고 하늘로 올라갈 수 있었다. 그 뒤로 이 용은 나그네에게 복을 많이 주었고, 동네 사람들도 용이 보살펴준 덕에 잘살게 되었다고 한다.
 
용이 못 된 깡철이 이야기와 비슷한 것이 흔히 ‘멈춘 산’으로 알려진 이야기이다. 커다란 산이 자리를 옮기려고 걸어가는데 누군가 그걸 보고 “야, 산이 걸어간다” 고 외치는 바람에 목적지까지 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그냥 눌러앉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깡철이와 멈춘 산 모두 다른 사람을 크게 의식했다. 그리고 남의 눈을 신경 쓰느라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주저앉고 말았다.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Catch Me If You Can)'에서는 눈치가 매우 빠르고 머리가 비상한 주인공이 나온다. 그는 깡철이, 멈춘 산과 달리 재빠른 눈치에 자신감을 더해 승승장구한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알아차린다는 점은 비슷한데, 다른 결말 아닌가. [중앙포토]

깡철이와 멈춘 산 모두 다른 사람을 크게 의식했다. 그리고 남의 눈을 신경 쓰느라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주저앉고 말았다.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Catch Me If You Can)'에서는 눈치가 매우 빠르고 머리가 비상한 주인공이 나온다. 그는 깡철이, 멈춘 산과 달리 재빠른 눈치에 자신감을 더해 승승장구한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알아차린다는 점은 비슷한데, 다른 결말 아닌가. [중앙포토]

 
사람들한테 들키는 바람에 어떤 구렁이는 용이 되지 못했고, 어떤 산은 자리를 옮기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그런데 또 어떤 구렁이는 사람이 빌어준 덕분에 용이 됐다. 이쪽도 저쪽도 다 자신감 넘치는 모습은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진정 용이 될 만한 자질이 있었다면, 그래서 자신의 힘으로 하늘로 오를 만한 귀한 존재가 되었다면, 누가 뭐라든 때가 되었을 때 자신이 목표했던 일을 추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한 마디 외침에 그 자리에서 곧바로 주저앉아 버렸다는 것은 아직 준비가 덜 된 상태라는 것이다.
 
깡철이나 멈춘 산이나 그 형용이 나타내는 바가 의미심장하다. 우리는 흔히 좌절한 상태를 ‘주저앉았다’라고 표현하곤 한다. 용이 되려다 만 구렁이는 바위 깊은 곳에 틀어박힌 채 애꿎은 연기만 내뿜고 있다. 산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버리는데, 그 덕에 있을 만하지 않은 곳에서 홀로 우뚝 솟아오른 모양새로 평생 뻘쭘하고 어정쩡하게 자리하고 있다. 둘 다 좌절한 모양새이긴 하다. 구렁이 쪽에서는 분노를, 멈춘 산 쪽에서는 수치를 느낄 수 있다.
 
이들이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 그렇게 그대로 멈추어 버리고 숨어들어 간 것은 자존감이 낮은 태도라고 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용이라고 불러준 덕분에 승천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와 차이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중요한 순간을 들켰다는 창피함과 귀한 존재로 인정받게 되었다는 자신감이 결국 같은 말 한마디로 비롯된다는 점이 재미있다.
 
말 한마디에 성패 갈린 용틀임
사진은 승려 보양이 중창했다고 전해지는 운문사. 보양은 용궁에 갔다가 용왕의 아들 이목을 데리고 돌아온다. [중앙포토]

사진은 승려 보양이 중창했다고 전해지는 운문사. 보양은 용궁에 갔다가 용왕의 아들 이목을 데리고 돌아온다. [중앙포토]

 
이무기와 관련한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아마도 청도 운문사와 관련해 전해지는 ‘보양이목’일 것이다. 『삼국유사』 권4 ‘의해(義解)’와 권5 ‘보양이목(寶壤梨目)’ 조에 실려 있으며, 경상북도 청도군과 경상남도 밀양시 등지에서 구전되고 있다. 승려 보양이 중국에 다녀오다 서해 용궁에 초청돼 불법을 전했다. 서해 용왕은 금비단 가사 한 벌을 시주하며 자기 아들 이목도 딸려 보냈다.
 
이목이 보양의 법사를 도우며 함께 지내던 어느 해 몹시 가뭄이 들어 온갖 곡식이 타들어 갈 지경이 됐다. 이목은 자신의 힘을 이용해 비를 내렸는데, 천제(天帝)가 자신의 허락 없이 비를 내리게 한 데 몹시 노해 이목을 죽이려고 했다.
 
보양은 얼른 이목을 법당 마루 밑에 숨게 하고, 천제가 보낸 사람들이 이목을 찾자 절 마당에 있던 배나무를 가리키며 이목이라고 했다. 천제의 사자들은 배나무에 벼락을 때린 뒤 돌아갔다. 사자가 돌아간 후에 이목은 벼락 맞은 배나무를 다시 살려 놓았다. 여기에서 ‘이목’은 ‘이무기’를 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발음이 비슷한 배나무를 지목하며 둘러댄 재치가 돋보이는 이야기다.
 
이무기는 본래 용왕의 아들로 비를 내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나름 귀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능력을 갖추고 있는 존재다. 이들이 승천하려는 것은 본래의 고귀한 지위를 찾고자 하는 것이다. 딱히 거창하고 거대한 목표를 가지고 이를 실현하려는 것만은 아니다. 그런데 그것이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 좌우된다. 나 자신도 꽤 오랫동안 이무기는 이렇게 용이 되지 못해 심술이나 부리는 결핍의 존재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생각해 보니, 이무기는 한편으로는 얼마든지 용이 될 수도 있는 엄청난 가능성을 가진 존재이기도 했다. 비를 내리는 능력은, 가뭄에 타들어 가는 대지를 적실 수 있는 능력이라고 보면 생명력을 상징할 수 있다. 사실 그러한 생명력이라는 건 누구에게나 잠재돼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만 그 힘은 자기 스스로 믿고 행할 수 있을 때 발휘된다. 용도 되지 못한 이무기라며 심술쟁이로 낙인찍기 전에, 용틀임을 승천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보아줄 줄 아는 혜안이 주변인에게 필요하다. 누구든 용기를 불어 넣어주는 존재가 하나라도 곁에 있다면 스스로 이무기에서 용으로 변신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이야기들이 아닐까 싶다.
 
권도영 건국대학교 서사와문학치료연구소 연구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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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영 권도영 건국대학교 서사와문학치료연구소 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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