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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연의 시시각각] 적폐로 적폐가 청산되나

중앙일보 2019.04.05 00:30 종합 34면 지면보기
최상연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배트맨’ 타이틀이 붙지 않은 배트맨 영화 ‘다크나이트’는 범죄와 폭력으로 가득 찬 도시를 지키려는 슈퍼히어로물이다. 주인공 배트맨은 절대악인 조커와 대립한다. 문제는 배트맨이 선의의 목적을 위해 기물파손, 폭력, 도청 등 불법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에서와 같이 목적만 좋다면 나쁜 수단은 정당화되는 것인가 혹은 좋은 수단이 언제나 좋은 결과로 이어지느냐는 건 오랜 논쟁 거리다. 특히 정치의 분야에서 그렇다.
 

투기·위선 정권 개탄이 넘치는데
검증 문책론에 ‘뭐가 문제’냐 외면
야당 땐 ‘오기·불통인사’ 퍼부었다

박정희·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이 중심에 있다. 두 지도자는 산업화와 민주화란, 어찌 보면 목적과 수단에 대한 집착과 무게중심이 달랐다. 찬반은 끝이 없다. 현실 세계는 중간 어디쯤일 것이다. 하지만 굳이 선택해야 한다면 지도자는 ‘어떤 일’보다 ‘어떤 방식’으로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게 동물학자 데즈먼드 모리스의 연구 결과다. 옳은 일을 잘못된 방식으로 하는 지도자보다 그릇된 일을 올바른 방식으로 이끄는 지도자가 더 많은 충성과 성공을 얻는다는 게 그의 책 『인간 동물원』에 소개돼 있다.
 
조국 민정수석은 반대로 ‘어떤 일’에 집중하는 쪽인 모양이다. 얼마 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치와 정책은 결과 책임을 져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일리는 있다. 특히 이 정권이 마치 목적 자체인 것처럼 앞세우는 적폐청산은 더 그렇다. 좋은 결과를 위해선 국민의 마음을 얻는 게 관건이다. 오랫동안 구조화된 적폐를 없애는 과정에선 온갖 저항이 따른다. 돌파하려면 개혁의 선두에 선 사람 자체가 강력한 명분과 추진력, 국민적 공감대의 상징이 돼야 한다. 그런 사람을 찾는 작업이 개각이고 인사청문회고, 적폐청산의 출발점이다.
 
그런데도 ‘기회는 평등하지 않고, 과정은 공정하지 않으며, 결과는 정의롭지 않은’ 참사 개각이 됐다. 그렇다면 검증 책임자인 조국 수석은 결과 책임의 잣대를 자신에게 들이대야 한다. ‘DNA가 다르다’고 혼자 정의로운 척했지만 결국 ‘내가 하면 노후대책, 남이 하면 불법투기란 내노남불’의 위선을 드러낸 인사와 검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 생각도, 그런 생각에 책임을 물을 생각도 없는 청와대다. 그래 놓곤 김학의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은 당시 민정수석이 알고도 법무차관 임명을 강행했는지 검증부실 의혹을 캔다.
 
이 대로면 청문보고서 없이 임명되는 장관 수가 곧 10명이 될듯하다. 정권 출범 2년 만에 전 정부 4년 9개월의 기록과 같아진다. 주로 코드 탓인데 물론 코드 인사를 하지 말라는 규정은 없다. 약간 능력이 부족해도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실천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럴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청와대가 스스로 내세운 5대 원칙이고 7대 원칙이다. 인사만 했다 하면 원칙은 사라지고 코드만 남는다. 그러곤 남이야 뭐라든 밀어붙인다. 야당 할 땐 그걸 ‘오기·불통인사’라고 퍼부었다.
 
공직자로서 최소한의 도덕성과 자질도 못 갖춘 인사들을 고른 건 인사검증의 기준과 방식에 결함이 있다는 뜻이다. 가뜩이나 드루킹, 김학의 사건 등으로 정부 신뢰도가 땅에 떨어진 지 오래다. 버닝썬 경찰 수사에 대한 불신은 70%를 훨씬 웃돈다. 아예 사정기관으로서의 정상적 기능이 어려운 수치다. 지금 같은 개각으로 신뢰를 되찾고 적폐청산 전쟁을 이끌 수 있다고 믿는 건 착각이다. 그런데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고 그저 ‘뭘 잘못했냐’고만 한다. 그런 오만과 마이웨이가 바로 적폐다.
 
그러니 갈라진 국민을 통합하겠다는 말과 이미지로 정권을 잡았지만 정말 그렇다는 믿음을 만들지 못한다. 지난 총선 직전 새누리당 대표실 벽엔 ‘정신차리자. 한 순간 훅 간다’는 문구가 내걸렸다. 정신 못 차리자 정말로 한 순간에 훅 갔다. 말 그대로 실천하면 되는데 항상 말 따라 행동 따로인 한국 정치다. 전 정권의 대실패를 보고서도 새 정부는 학습하지 못한다. 그것이 참으로 알 수 없는 미스터리다. 
 
최상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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