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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 차 세계 첫 5G…“미국 서둔다” 현지 첩보에 기습 개통

중앙일보 2019.04.05 00:18 종합 4면 지면보기
5G 시대 개막, 달라지는 통신 세상
5G가 만드는 새로운 생활

5G가 만드는 새로운 생활

‘세계 최초 5세대(G) 상용화 국가.’
 

한·미 통신 패권전쟁 막전막후
미, 한국 느긋한 틈 타 비밀 작전
허찔린 한국, 부랴부랴 이틀 당겨

정부 “미국 선제 공격, 꿈에도 몰라”
업계 “정부 순진한 판단에 뺏길 뻔”

이 타이틀을 쥐기 위한 한국과 미국의 불꽃 튀는 전쟁이 3일 밤새 치열하게 벌어졌다. 미국 버라이즌이 세계 최초를 노리고 3일 기습공격을 폈고, 이를 뒤늦게 눈치챈 한국이 부랴부랴 상용화 일정을 같은 날 오후11시로 앞당겼다. 세계 최초 타이틀을 둘러싼 한·미 통신 패권전을 날짜별로 구성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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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22(3월 14일): 한·미 전쟁의 서막=도화선에 불을 댕긴 건 미국 버라이즌이었다. 버라이즌은 지난달 13일(현지시간·한국시간 14일) 5G의 상용화 시점을 4월 11일로 앞당기겠다고 선언했다. 시카고와 미니애폴리스 등 2개 도시에 5G 초광대역 네트워크를 배치한다는 계획이었다. 앞서 2월 2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미국이 가능한 한 빨리 5G, 심지어 6G 기술을 (도입하길) 원한다”며 “미국 기업들이 노력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실상 미국 기업을 압박한 것이다.
 
이에 반해 애초 3월 말이었던 한국의 5G 개통 일정은 단말기와 통신장비 등 여러 사정으로 4월로 미뤄졌다. 우리 정부는 위기감을 느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동통신 3사와 5G 통신장비·휴대전화 공급업체인 삼성전자에 상용화 일정을 당기자고 재촉했다. 버라이즌이 4월 11일 상용화를 선언하자 삼성전자는 11일 이전에 5G 전용 스마트폰을 출시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삼성전자는 지난달 20일 “갤럭시 S10 5G 모델이 4월 5일 정식 출시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통신사 역시 상용화 일정을 5일로 못박고, 요금제 정비와 관련 서비스 출시 등 상용화를 위한 준비에 돌입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국 정부가 여유있게 미국을 따돌리는 것으로 보였다.
 
◆D-2(4월 3일): 버라이즌의 기습 =그러나 버라이즌은 우리 정부가 공식 발표한 상용화 시점인 5일보다 앞서는 기습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여유 있게 상용화 일정을 추진 중이던 한국의 허를 찌르겠단 전략이다. 미국 동향은 국내 대기업 현지법인을 통해 파악돼 3일 오후 5시5분에야 과기정통부에 긴급 전달됐다.  과기정통부는 회의를 소집해 진위 파악에 나섰다. 미국 현지의 다양한 루트를 통해 탐문했지만 사실관계는 확인되지 않았다. 과기정통부는 그러나 ‘버라이즌이 국내 일정을 고려해 상용화 시점을 앞당길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이동통신사 3사와 삼성전자가 협의해 당초 계획인 5일보다 이틀 앞당긴 3일 오후 11시부터 5G 서비스를 개시하기로 결정했다. 밤 11시 과기정통부의 대응 전략대로 이통 3사가 일제히 1호 가입자에 대한 개통을 시작했다.
 
◆D-1(4월 4일): 한국, 승리로 얻은 것=3일 오후 11시에 기습 상용화 작전에 성공한 과기정통부는 4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간발의 차이로 버라이즌에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빼앗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버라이즌은 한국시간 3일 오후 11시59분쯤 트위터를 통해 5G 서비스 시작을 알렸다. 이대로라면 한국이 미국에 약 2시간 앞선 것이다. 서비스 지역인 중부와의 시차를 감안하면 2시간 차이가 나는 걸로 정부·업계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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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통사와 과기정통부는 “간발의 차이로 한국이 세계 최초 상용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고 말하지만 일각에선 과기정통부가 너무 안일한 태도로 임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유영민 과기정통부 장관은 평소 한국이 세계 첫 5G 상용화 국가가 돼야 하는 이유로 “세계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해 왔다. 세계 최초 타이틀이 통신장비, 단말기(스마트폰), 네트워크, 미디어 등 글로벌 통신 생태계에서 한국이 주도권을 쥐고 사업을 확장해 나갈 수 있는 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중요성에 비해 대응 전략이 미숙했다는 지적이다. 과기정통부 고위 관계자는 “미국의 대기업이 이렇게 기습적으로 5G 상용화를 선언할지는 꿈에도 몰랐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익명을 요구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5일에 상용화한다고 전 세계적으로 공표해 놓고, 이를 아는 미국 기업이 약속한 날짜를 지킬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은 순진하고 안일한 판단”이라고 지적했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향후 글로벌 IT시장 동향에 대한 연구나 모니터링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경진·조진형 기자 kjin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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