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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살 정이품송, 후계목 1만 그루 “자식농사 잘 지었죠?”

중앙일보 2019.04.05 00:04 종합 24면 지면보기
신경수 보은군 산림경영팀장이 지난 1일 군 내 양묘장에서 정이품송 후계목을 소개하고 있다. [최종권 기자]

신경수 보은군 산림경영팀장이 지난 1일 군 내 양묘장에서 정이품송 후계목을 소개하고 있다. [최종권 기자]

“이게 비밀 프로젝트라서…. 일단 제 차만 따라오세요.”
 

보은군 “노쇠한 나무 유전자 보존”
솔방울서 씨앗 채취해 묘목 키워
도난 피하려 10년 비밀 프로젝트
유상 분양 계획은 문화재청 제동

지난 1일 오후 충북 보은군청 산림녹지과 사무실. 속리산의 문지기로 불리는 ‘정이품송’(천연기념물 제103호)의 후계목을 대량으로 기르는 양묘장을 찾기 위해 군청에 동행을 요청했다. 그러자 신경수 산림경영팀장이 “보안상 주소를 공개할 순 없다”며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속리산 기슭을 따라 10여 분간 달리던 신 팀장은 말티재 입구에서 갑자기 오른쪽으로 차를 획 돌렸다. 경사가 급한 언덕을 넘자 소나무 수백여 그루가 빼곡하게 들어선 양묘장이 나왔다. 신 팀장은 “요즘 소나무 도둑이 극성이라 양묘장이란 팻말조차 붙이지 않았다”며 “주민들이 물으면 ‘군에서 키우는 소나무’라고 답한다”고 말했다.
 
보은군이 비밀리에 진행해 온 정이품송 후계목 양성 프로젝트가 10년 만에 베일을 벗었다. 천연기념물인 정이품송의 자원 보존을 위해 보은군이 군유지 양묘장에서 기르던 후계목 1만여 그루를 일반 국민에게 분양하기로 결정하면서다. 이와 함께 정이품송의 부인목(夫人木)으로 알려진 ‘정부인소나무’(천연기념물 352호)도 함께 분양할 예정이다.
 
계단식으로 조성된 이 양묘장은 2㏊ 규모다. 정이품송과 정부인소나무 후계목이 연도별로 분류돼 자라고 있다. 2008년 정이품송 솔방울에서 채취한 씨앗을 발아시켜 1년간 묘목을 기른 뒤 2010년 처음으로 양묘장에 심었다.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연차적으로 양묘장에 옮겨진 묘목은 정이품송 자목 1만여 그루, 정부인소나무 자목 1만1000여 그루다.  
 
소나무 도둑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이 사업을 외부에 공개하진 않았다. 양묘장엔 폐쇄회로TV(CCTV) 2대가 설치돼 있다. 이 영상은 보은군청 상황실에 전송돼 감시가 가능하다.
 
속리산 입구 정이품송. [중앙포토]

속리산 입구 정이품송. [중앙포토]

10년생 소나무는 높이가 3~4m로 자랐다. 밑동 지름은 약 10㎝다. 가장 나중에 심은 소나무는 높이가 40~50㎝ 정도다. 양묘장은 법주사 입구에 있는 정이품송과 약 10㎞ 정도 떨어져 있다. 신경수 팀장은 “정이품송과 토질과 기후가 비슷한 속리산 자락에서 자란 후계목도 품질이 우수할 것으로 본다”며 “묘목이 웃자라게 되면 키만 크고 병충해에 약할 수 있게 때문에 비료를 따로 주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정이품송 후계목 양성 사업은 날로 노쇠하고 있는 정이품송의 유전자원을 보존하려고 시작했다. 수령이 600년 이상인 정이품송은 현재 높이가 15m에 달한다. 폭풍에 가지가 부러지거나 병충해 피해를 보기도 했다. 10년 전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송석복 보은군 산림녹지과장은 “정이품송이 노령화돼 보존이 시급하다는 여론이 일어 후계목 양성 사업을 기획했다. 정이품송의 씨앗을 발아시키는 작업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이품송이 늙고 쇠약해져 솔방울이 일반 소나무보다 훨씬 작았다. 발아율도 일반소나무의 30~40% 수준에 그쳐 싹을 틔우는데 어려움이 컸다고 한다.
 
보은군은 식목일을 맞아 양묘장에 있는 10년생 정이품송 등 후계목을 일반인에게 유상 분양할 예정이었으나 문화재청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문화재청은 “유상 분양은 유전자원 보존이라는 애초 취지에 어긋난다”며 판매를 보류하도록 했다.  
 
신경수 보은군 산림경영팀장은 “솔방울로 길러낸 묘목은 천연기념물이 아니라고 봐 분양을 추진했다”며 “관련 법률 검토가 마무리될 때까지 판매를 보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보은=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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