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과 추억] 실용주의·균형감각 갖춘 언론인, 기업에도 발자취

중앙일보 2019.04.04 17:17 종합 20면 지면보기
최우석 전 중앙일보 주필

최우석 전 중앙일보 주필

지난 3일 별세한 최우석(79) 전 중앙일보 주필은 언론과 기업에서 동시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경남 진주 출신인 고인은 1962년 부산대 상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일보에서 경제기자로 일했다. 72년 중앙일보로 옮겨 경제부장·논설위원·편집국장·주필을 역임했다. 
 

3일 별세한 최우석 전 중앙일보 주필
중앙경제신문 창간 주도하고
삼성경제연구소 10년간 경영
남다른 애서가…투병중에도 독서
'공부하라, 책 쓰라' 후배 늘 격려

 언론인 시절 그의 글엔 독특한 체취가 배어 있었다. 딱딱한 주제를 쉽게 풀어썼다. 문장은 간결하고 날카로우면서도 유연했다. 곁가지는 생략하고 핵심과 본질로 직행했다. 그리고 유머감각까지. 후배들이 흉내낼 수 없는 ‘최우석체’가 따로 있었다.
 
 88년엔 ‘국제화를 선도하는 고급 정보지’를 표방하며 중앙경제신문의 창간을 주도했다. 직접 편집국장과 주필을 맡아 제작과 경영을 도맡았다. 언론 경영인으로선 실험정신이 두드러졌다. 문과 출신이 대부분이던 기자직에 이공계 출신을 다수 채용하고, 통계로 뒤덮인 경제지에 문화·레저 기사를 충실히 담았다.
 
 95년부터는 10여년 간 삼성경제연구소를 이끌었다. 그가 소장이었을 때 연구소가 절정기를 구가했다는 게 중평이다.

 언론인·기업인으로서 그의 스탠스는 실용주의·현실주의였다. 이론만 좇다간 공론에 빠지고, 이상만 추구하면 근본주의로 내달리게 된다고 경계했다. 무엇보다 균형감각을 강조했다. 경기 판단을 할 때에도 지표만 보지 않고, 실물현장의 분위기를 민감하게 고려했다. 신문을 만들 때도 그랬고, 연구소에서 수많은 이코노미스트들을 지휘하면서도 그랬다.  
 
 경영인으로서 고인은 서구식 경영과학을 수용하면서도 합리주의를 맹신하진 않았다. 근본적으론 인간관계와 신뢰, 그리고 운이 따라야 기업도 개인도 큰다고 봤다. 명문화·공식화하기 어려운 조직의 ‘암묵지’를 존중한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
 
 고인은 일본통이었다. 독학한 일어가 국제회의에서 통역 없이 강연과 토론을 할 수준이었다. 2000년 6월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 주최 국제회의 ‘아시아의 미래’에서 외환위기 극복 과정을 강연하면서 한일 기업의 협력을 강조한 바 있다.

일본 언론인들과도 교분이 깊다. 스기타 료키(杉田亮毅·81) 전 니혼게이자이신문 회장과는 80년대 함께 경제부장을 하면서 친교를 다졌다. 지난 2월엔 지인을 통해 서로 안부 인사를 전했다.
2008년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삼국지를 다시 말한다' 포럼에서 당시 최우석 삼성경제연구소 부회장(오른쪽)이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문열 작가 .이중톈 작가. [중앙포토]

2008년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삼국지를 다시 말한다' 포럼에서 당시 최우석 삼성경제연구소 부회장(오른쪽)이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문열 작가 .이중톈 작가. [중앙포토]

 고인은 손꼽히는 애서가이자 장서가로 유명하다. 경제뿐 아니라 역사·종교·예술·문학에 이르기까지 분야가 한정되지 않았다. 인문학에도 관심이 많았다. 2006년엔 중국 고전에서 현대 경영의 지혜를 찾는 『삼국지 경영학』을 펴냈다. 자료로만 쓴 게 아니라 직접 중국을 답사해 쓴 책이다. 기업경영에 대한 교훈이 풍부해 지금도 스테디셀러다. 현실감각을 중시하는 그의 스탠스는 조조의 냉철한 현실주의 노선에 후한 점수를 준 데서 잘 나타나 있다.
 
 바쁜 일정 속에서 문학작품도 꾸준히 읽었다. 『침묵』 『깊은 강』 등 기독교 색채가 강한 엔도 슈사쿠(遠藤周作)의 작품을 애독했다. 말년엔 전문경영인판 삼국지, 한국의 경제개발사에 관한 집필을 구상했으나, 췌장암 투병 이후 “기력이 달려 엄두가 안난다”며 아쉬워하곤 했다. 대신 후배들에겐 이런 공부를 해보라, 이런 책을 써보라, 하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투병생활 중에도 책은 놓지 않았다. 최근엔 시라카와 마사아키(白川方明) 전 일본은행 총재의 『중앙은행』을 읽으며 일본 금융정책 변천사에 큰 관심을 보였다.
 
 고인은 해가 갈수록 걱정을 많이 했다. 나라, 경제, 언론이 그에겐 온통 걱정거리였다. 특히 여론을 계도하기보다 세태에 따라 흔들리며 소비되고 마는 요즘 언론현상에 심각한 문제의식을 보였다. 후진들에게 남긴 뼈아픈 지적이자 숙제다.
 
 생전에도 고인에 대한 주위의 인물평엔 형용모순이 많았다. 냉철하면서도 온화하다, 까칠하지만 유연하다, 엄격하지만 합리적이다… 제각각 표현은 다르지만, 돌이켜보면 경의(敬意)라는 공통점이 있었던 셈이다.
빈소는 서울삼성병원, 발인은 6일 오전 8시. 장지 하늘숲추모원. 
 
남윤호 미주중앙일보 대표 yhnam@joongang.co.kr  
 
 
2008년 중앙일보 중국연구소가 주최한 '삼국지를 다시 말한다` 포럼에서 발언하고 있는 최우석 당시 삼성경제연구소 부회장.

2008년 중앙일보 중국연구소가 주최한 '삼국지를 다시 말한다` 포럼에서 발언하고 있는 최우석 당시 삼성경제연구소 부회장.

공유하기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