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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사기 사건 피해자들의 끝나지 않은 여정

중앙일보 2019.04.03 14:09
IDS홀딩스·한성무역 등 '백두산 불법금융사기피해자연대' 관계자들이 지난해 12월 11일 오전 국회 정문 앞에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사기범죄에 대한 엄중 처벌 법안을 만들고 부패한 사법기관의 관리감독을 철저히 할 것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IDS홀딩스·한성무역 등 '백두산 불법금융사기피해자연대' 관계자들이 지난해 12월 11일 오전 국회 정문 앞에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사기범죄에 대한 엄중 처벌 법안을 만들고 부패한 사법기관의 관리감독을 철저히 할 것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씨와 관련한 내용을 취재하면서 이씨에게 투자했다 피해를 본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만큼이나 많은 정보를 갖고 있었고, 여전히 이씨의 숨겨진 자산 등을 추적하고 있었다. 평생 모은 돈이나 부모, 친지의 돈까지 끌어다 이씨에게 투자했던 사람들은 아직 피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기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씨의 재판은 이제 막 항소심이 시작됐다. 1심에서 벌금 150억원 등이 선고됐지만 확정 판결이 나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다. 
 
이씨에게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지만, 그러려면 피해자인 원고 측에서 이씨의 재산을 특정해야 한다. 드러나 있는 이씨의 재산은 이미 금융권에 압류돼 있고, 차명 재산은 사실상 찾기가 매우 어렵다고 한다. 법조계 관계자는 “지인이거나 재산 내역에 대해 아는 사람이 정보를 제공해줘야 찾을 수 있다”며 “신고포상금 제도도 활용하고 있지만 유의미한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런 와중에 투자사기 사건의 피해자들은 피폐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가족이나 지인과 멀어져 고립돼 살아가거나, 여전히 ‘사기꾼’을 원망하고 저주하는데 자신의 에너지를 모두 쓴다. 한 피해자는 “이씨 부모가 살해당했다는 뉴스를 봤는데 여러모로 복잡한 심경이었다”고 말했다.
 
일부는 본인이 ‘피해자’라는 것을 아예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스스로 합리화를 하려고 한다. 여전히 이씨를 믿고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이씨가 나오면 다시 ‘주식 대박’이 일어날 것이라는 믿음이다. ‘보물선 투자사기’로 알려진 돈스코이호 사건 투자자들 일부도 여전히 암호화폐가 상장되기를 바라고 있다. 돈스코이호의 한 투자자는 “이게 사기라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내 인생이 끝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쩔 수 없이 믿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난 2일 2010년 ‘옵션 쇼크’를 일으킨 도이체방크 홍콩지점 차익거래팀장 데렉 옹(45)이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인터폴에 검거됐다. 사건이 발생한 지 9년 만이다. 도이치 옵션 쇼크 사태는 2010년 11월 11일 옵션만기일 장 마감 10분 전 도이치증권을 통해 2조4400억원어치의 주식 매도 주문이 나와 코스피 지수가 급락한 사건이다. 당연히 일반 주식 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피해자들의 배상금 소송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도모씨 등 개인투자자 17명이 원금 및 이자 34억원을 배상받았으나, 대법원의 파기환송심까지 거치며 지난해 11월에서야 피해가 보전됐다. 피해가 발생한 지 약 8년 만의 일이었다. 아직도 다른 개인투자자들의 소송이 진행 중이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일단 배상을 받은 게 다행이지만, 8년 동안 이 피해자들의 삶은 어땠을지 생각해보라”며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조계 격언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지금도 서초동 법원 근처에서는 사기 사건의 피해자들이 플래카드를 붙여 놓고 시위를 하고 있다. 사기 사건의 주범을 처벌하고 피해를 복구해달라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매일 온종일 1인 시위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기 사건의 한 피해자는 “피해를 보전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는 형벌이다”라고 말했다. 이들에게는 정말 절실하게, 지연된 정의는 정의일 수가 없다. 
 
이후연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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