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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세력과 결탁한 드라마속 공권력, 현실과 뭐가 다른가"

중앙일보 2019.04.03 13:34
드라마 '닥터 프리즈너'의 나이제(남궁민)는 자신이 3년간 죄수로 머물렀던 교도소의 의료과장이 돼서 자신을 절망의 나락으로 밀어넣었던 악의 세력에 복수하려 한다. [사진 KBS]

드라마 '닥터 프리즈너'의 나이제(남궁민)는 자신이 3년간 죄수로 머물렀던 교도소의 의료과장이 돼서 자신을 절망의 나락으로 밀어넣었던 악의 세력에 복수하려 한다. [사진 KBS]

드라마 '열혈사제'의 주인공 김해일 신부(김남길)는 조력자들을 하나둘씩 규합해가며 절대악과 맞선다. [사진 SBS]

드라마 '열혈사제'의 주인공 김해일 신부(김남길)는 조력자들을 하나둘씩 규합해가며 절대악과 맞선다. [사진 SBS]

 
협잡이 판치고 정의가 사라져가는 현실에 대한 반작용일까. TV 드라마 속에서 거대악을 응징하는 주인공들의 활약에 대중의 환호가 넘쳐난다.  
시청률과 화제성을 모두 거머쥐고 있는 '닥터 프리즈너'(KBS2)와 '열혈사제'(SBS) 얘기다. 
두 드라마는 각각 14.5%(3월 28일 현재), 18.2%(3월 30일 현재)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인기몰이 중이다. 두 작품 속 주인공의 성격과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이들이 맞서는 악의 실체는 판에 박은 듯 똑같다. 
거대한 자본권력에 공권력이 빌붙은 '악의 카르텔'이다. 이들은 법망을 교묘히 피해가며, 자기 잇속을 챙기기 위해 온갖 불법을 자행한다. 주인공들은 이런 거대악에 맞서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악랄하게' 싸운다. 적들의 전매특허인 부정하고 극단적인 방법 또한 마다하지 않는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당한만큼 되갚아준다'는 각오다. 
 
교도소로 돌아가 독하게 복수하는 '닥터 프리즈너' 나이제 
 
'닥터 프리즈너'의 주인공 나이제(남궁민)는 태강병원 응급의학센터의 실력있고 인간미 넘치는 의사였다. 자신의 월급을 털어 노숙자들을 치료해준다. 올바른 의술을 펼치려는 그의 꿈은 청각장애인 부부를 사고로 내몰고도, 위독한 그들 대신 자기 여동생 이마에 난 상처를 치료하라며 갑질을 하는 태강그룹의 망나니 아들 이재환(박은석)으로 인해 산산조각났다. 
청각장애인 부부와 뱃속에 있던 아이는 결국 치료 타이밍을 놓쳐 사망했고, 자신에 앙심을 품은 이재환의 농간에 나이제는 의사면허가 정지된 채 감옥에서 3년을 보낸다. 그런 그가 3년 후 자신이 죄수로 머물렀던 서서울 교도소의 의료과장이 돼서 마약복용 혐의로 수감된 이재환에 복수를 한다. 
아들의 형 집행정지를 노리는 재환 어머니(진희경)의 술수를 가로막는 것은 물론, 고위층 수감자들의 전유물이 돼버린 형 집행정지를 이용해 교도소의 왕으로 군림하는 전 의료과장 선민식(김병철)의 약점을 잡고 협박한다. 흥미로운 점은 나이제가 형 집행정지를 바라는 재벌 사모님(김정난)의 없는 병도 만들어줘 출소시켜주고, 내정돼 있던 의료과장 후보자를 납치하는 등 복수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방법 가리지 않을 뿐더러 그 누구와도 손을 잡는다는 것이다. 병을 치료하는 의사에서 병을 만들어주는 의사로의 변신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드라마 '닥터 프리즈너'의 나이제(남궁민)는 자신이 죄수로 3년간 머물렀던 교도소의 의료과장이 돼서 자신을 절망의 나락으로 밀어넣었던 악의 세력에 복수하려 한다. [사진 KBS]

드라마 '닥터 프리즈너'의 나이제(남궁민)는 자신이 죄수로 3년간 머물렀던 교도소의 의료과장이 돼서 자신을 절망의 나락으로 밀어넣었던 악의 세력에 복수하려 한다. [사진 KBS]

 
국정원 요원 경력 살려 절대악 응징하는 '열혈사제' 김해일  
 
나이제 보다 훨씬 코믹하지만, 악한 놈을 더 악한 방법으로 무너뜨리는 건 '열혈사제'의 주인공 또한 마찬가지다. 
국정원 대테러 특수팀 요원이었던 김해일(김남길)은 인질구출작전 도중 의도치 않게 무고한 어린이들을 살상하는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뒤 신분 세탁을 한 채 국정원을 나오게 된다. 이후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방황하던 해일은 영혼의 구원자인 이영준 신부(정동환)를 우연히 만나게 되고, 자신의 잘못을 속죄하기 위해 사제의 길을 걷는다. 
하지만 지역의 모든 이권을 차지하기 위해 경찰서장·부장검사·구청장·국회의원·조폭보스 등이 결탁한 '구담구 카르텔'이 성당 땅을 차지하기 위해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던 이영준 신부를 살해하고 이를 자살로 위장하자, 분노에 휩싸인 해일은 과거 국정원 요원 시절의 능력을 살려 사건을 파헤치고 카르텔 응징에 나선다. 
이 과정에서 불법적인 행위와 폭력도 서슴지 않는다. 돈에 매수돼 이영준 신부를 파렴치범으로 몰아간 증인들을 찾기 위해 국정원 시절 알았던 해커를 다그쳐 그들이 숨어있는 아지트를 급습하는가 하면, 구담구 카르텔의 약한 고리였던 불량 급식업체의 비밀장부를 입수하고, 조폭보스의 별장에 잠입해 사건의 단초를 찾아낸다.  
  
드라마 '열혈사제'의 주인공 김해일(김남길)은 국정원 대테러 특수요원 시절 저지른 잘못을 속죄하기 위해 신부가 된다. [사진 SBS]

드라마 '열혈사제'의 주인공 김해일(김남길)은 국정원 대테러 특수요원 시절 저지른 잘못을 속죄하기 위해 신부가 된다. [사진 SBS]

 
"악의 세력과 결탁한 '더러운' 공권력, 현실과 뭐가 다른가" 
 
결코 선하지 않은 방법으로 절대악을 응징하는 이들의 사적 복수에 시청자들이 환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클럽 '버닝썬' 사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접대 의혹, 고(故) 장자연 사건 등으로 공권력에 대한 신뢰가 바닥까지 떨어진 세태를 두 드라마가 잘 녹여넣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윤석진 드라마평론가(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공권력이 유착돼 있거나, 진실을 은폐하고 있는 혐의가 짙은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높은 상황에서 공권력이 결탁한 절대악을 응징하는 내용의 드라마가 대중에게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닥터 프리즈너'에는 필로폰 소지·투약 혐의로 3년형을 받고도 반성은 커녕 온갖 수단을 동원해 교묘하게 법망을 뚫고 나가려는 재벌 3세, 여대생 살인청부 혐의로 복역하던 중 부정한 방법으로 형 집행정지를 받은 뒤 외부 병원에서 호의호식하는 재벌 사모님 등 현실에서 봤음직한 인물들이 등장해 시청자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열혈사제'는 클럽 버닝썬을 연상케 하는 클럽 '라이징문'을 기민하게 등장시켰다. 구담구 카르텔이 지분을 소유한 이 곳은 연예인과 재벌이 드나들며 마약 등 온갖 불법을 자행해도 관할 경찰이 뒤를 봐준다. 현실을 빼다박은 듯한 묘사에 쓴 웃음을 짓던 시청자들은 관련자들을 모조리 잡아들인 김해일의 외침 "서장님도 감방 가즈아!"에 통쾌함을 느꼈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불신과 무력감을 판타지같은 드라마로 해소" 
 
윤석진 평론가는 "두 주인공이 처음에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사건을 해결하려 하지만 공권력이 제대로 기능하기는커녕 악의 세력과 유착돼있는 상황에서 속수무책임을 깨닫게 되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복수의 과정 또한 정당해야 한다는 도덕적 강박에서 벗어난 주인공들의 활약에 열광하는 건, 공권력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할 거라는 대중의 잠재적 불안이 반영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물론 두 주인공의 복수와 응징의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다. '닥터 프리즈너'에서 나이제의 반격에 움찔했던 교도소의 절대권력자 선민식은 이내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내며 또 다시 나이제의 목을 움켜쥔다. 그리고 "무리를 지은 나를 홀로 맞서는 네가 절대 이길 수 없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는다. 
'열혈사제'의 김해일 또한 이영준 신부를 죽음으로 몰고간 범인들에게 접근해가지만, 파면 팔수록 그 악의 실체가 예상보다 훨씬 깊고 굵게 뿌리내려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주인공들은 그런 현실에 낙담하지 않고 조력자들을 하나 둘씩 모아가며 독하고 끈질기게 절대악과 싸워나간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은 무모한 싸움일지 몰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그들의 '독기'에 시청자들이 열광하는 건,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불신과 무력감이 팽배한 현실에선 절대로 맛볼 수 없는 통쾌함을 선사해주기 때문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두 드라마의 인기가 높은 건, 각각의 장르에 사회정의라는 현실적 요소를 밑그림으로 깔았기 때문"이라며 "두 주인공의 활약이 사적 복수인 동시에 공적인 복수의 성격을 띠고 있어서 시청자들에 강렬하게 다가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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