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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둘레길' 하루만에 연기, 알고보니 북한군 사격 사정권

중앙일보 2019.04.03 12:30
정부가 비무장지대(DMZ)를 처음으로 민간에 개방하기로 했다. DMZ를 관광자원으로 만들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DMZ 관할권을 지닌 유엔군사령부는 관광객에 대한 안전 대책 확보를 이유로 이 같은 계획에 승인을 미룬 상태다. 정부는 일단 DMZ 바깥 지역에서만 관광 코스를 시범 운영하면서 문제점을 보완하겠다는 입장이다.
 
김현기 행정안전부 지방자치분권 실장이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정부 부처 합동 브리핑에서 DMZ평화둘레길 개방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김현기 행정안전부 지방자치분권 실장이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정부 부처 합동 브리핑에서 DMZ평화둘레길 개방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정부는 3일 DMZ와 연결된 3개 지역을 'DMZ 평화둘레길'(가칭)로 지정하고 이달 말부터 단계적으로 개방한다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이날 “9·19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감시초소(GP) 철거, 유해 발굴 등 긴장완화 노력이 이뤄지고 있는 강원도 고성(동부)·철원(중부), 경기도 파주(서부) 등 3개 지역을 평화안보 체험길로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고성 지역은 통일전망대와 금강산전망대 일대를 돌아다니는 코스다. 철원 지역의 경우 백마고지 전적비, DMZ 내 화살머리고지 비상주 감시초소(GP)로 구성된다. 파주 지역은 임진각에서 출발해 도라전망대를 경유한 뒤 시범철수한 파주 GP를 거치는 코스다. 
 
정부는 이달 말 고성을 먼저 개방한다. 그리고 DMZ 안으로 진입하는 철원과 파주는 준비가 되는 대로 개방할 계획이다. 하지만 정확한 시점에 대해선 정부는 밝히지 못했다.
 
정부가 DMZ 평화둘레길 계획을 발표하면서도 단계적 개방을 언급한 데는 이유가 있다. DMZ 내 구간이 포함된 파주와 철원 지역을 현재 상태로 개방하는 건 무리라는 판단에서다. 정부는 전날(2일)까지만 해도 3개 지역에서 이달 말 동시 시범 운영을 시작한 뒤 6월부터 상설 운영에 들어간다는 내용을 발표하기로 했다. 그러나 안전 문제가 우려된다는 지적이 잇따르면서 기존 계획을 축소한 것이다. 2일 사전 배포된 보도자료의 내용도 3일 오전 정식 발표 2시간 전 급히 수정됐다. 관광객 경호를 담당하는 국방부 관계자는 “철원, 파주 구간은 추후 검토 에정”이라며 “전날 안전 관련 지적된 사안을 반영해서 신중하게 추진하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더 큰 문제는 관광객이 북한군의 사격 사정권 안에 들어오는 점이다. 남북 각각 11개의 GP가 시범철수한 뒤에도 DMZ 안에는 남한 50개, 북한 150개 GP가 여전히 운용되고 있다. 이곳에서 남북 군인은 무장한 상태로 수색과 정찰 활동을 펼친다. 철원과 파주 코스에서 관광객이 GP에 머물 경우 북한군에 노출될 수 있다는 의미다.  
 
정부 계획을 보면 관광객은 DMZ 내에서 차량으로 이동해 GP에서 하차하기로 돼있다. 차량에 방탄조끼와 헬멧을 구비해두지만 상시 착용은 하지 않을 방침이다. 실제 관광객이 방문하게 될 파주 철거 GP와 가장 가까운 북측 GP와의 거리는 1.5㎞ 이내로 북측 GP에 배치된 고사총의 사거리 안에 들어온다. 군 당국은 “군단 특공 인원들이 경호작전을 펼칠 것”이라며 “관광객 이동시 감시 장비를 이용해 북한군의 총안구를 면밀히 관찰하는 등 대응 태세를 철저히 갖추겠다”고 설명했다.    
 
안전 문제 때문에 DMZ를 관할하는 유엔사와 협의도 아직 완료되지 않았다. 유엔사는 안전 대책을 검토한 뒤 승인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군 관계자는 “유엔사 인원들과 도로 포장 등 답사를 했다”며 “이동 차량에 대한 안전성이 검증되면 4월 말까지 승인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과 논의도 남은 과제다. 관광객을 향한 오인 사격을 방지하기 위해선 북한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2008년 7월 북한군 초병의 총격으로 사망한 고 박왕자 씨 사례에서 보듯 관광객이 일행에서 이탈할 경우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정부 관계자는 “아직 북측에 통보하지 않았다”며 “향후 시범 운영 상황을 보고 북한과 논의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안전뿐 아니라 환경 대책을 놓고서도 우려가 나온다. 녹색연합은 이날 성명에서 “문재인 정부의 평화둘레길 사업 추진으로 DMZ는 보전은커녕 난개발로 내몰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는 DMZ 내 신규 공사 없이 사용 중인 도로 등 기존 시설을 활용하면서 생태적 영향을 최소화할 방침이다. 정부 관계자는 “인위적 개발은 가능한 지양하겠다”며 “무인조사체계를 구축해 생태계 훼손 여부를 주기적으로 모니터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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