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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없는 곳으로…바다 보이는 망해사로 떠나다

중앙일보 2019.04.03 11:00
[더,오래] 박재희의 발로 쓰는 여행기(19)  
김제 망해사는 1300년 전 절터(백제 의자왕 2년 서기 642년)에 지어진 사찰이다. 일반적인 불교 사찰의 건축 문법을 벗어나 파격의 구조를 가진다. 절집 마당 한가운데 벚나무가 화려하다. [사진 박재희]

김제 망해사는 1300년 전 절터(백제 의자왕 2년 서기 642년)에 지어진 사찰이다. 일반적인 불교 사찰의 건축 문법을 벗어나 파격의 구조를 가진다. 절집 마당 한가운데 벚나무가 화려하다. [사진 박재희]

 
바람 때문이었다. 화들짝 꽃으로 피어나 소란스러운 봄, 그날 후미진 곳에 숨었던 마음을 툭 치는 바람이 불어왔다. 온 세상이 한꺼번에 깨어나 만나고, 속살거리고 있었다. 찬란한 생명에 눈이 부신 봄날이었는데 어쩌자고 나는 혼자이고 싶었다. 봄을 맞을 준비도 없이 그저 고단했던 내가 구해달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아무도 없는 곳으로 나를 데리고 떠나고 싶었을 때 망해사를 떠올렸던 것은 깊고 아득한 기억 속 시 한 구절 때문이었을 게다. ‘문을 열면, 모두를 잃겠네’ 윤선도가 망해사에서 남긴 노래였다.
 
고산 윤선도가 노래했듯이 망해사 서쪽 바다를 바라보며 사람들은 세상사를 모두 떨어내고 버리고 자유로워진다. 이제 호수가 되어버린 바다. [사진 박재희]

고산 윤선도가 노래했듯이 망해사 서쪽 바다를 바라보며 사람들은 세상사를 모두 떨어내고 버리고 자유로워진다. 이제 호수가 되어버린 바다. [사진 박재희]

 
‘문을 열면, 모두를 잃겠네.
주인은 목탁을 잃고
석가모니는 중생을 잃고
나는 나를 잃고
바다의 품으로 모두 돌아오네’
 
그의 시처럼 모두 잃어버리고 모두 잊어버리고 온전히 홀로 남은 나와 하염없이 바다만 바라보고 싶다. 급해진 마음을 챙겨 망해사로 향했다.
 
바다를 닮아버린 평원, 만경 평야
바다를 바라는 절집이라는 뜻의 망해사는 이름처럼 시적인 정원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사찰이라기보다는 간소한 정원처럼 불교적 건축물은 생략되었고 벚나무 아래 봄이 흐드러져 있다. [사진 박재희]

바다를 바라는 절집이라는 뜻의 망해사는 이름처럼 시적인 정원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사찰이라기보다는 간소한 정원처럼 불교적 건축물은 생략되었고 벚나무 아래 봄이 흐드러져 있다. [사진 박재희]

 
눈보다 가슴이 먼저 놀란다. 후두두 떨어지는 봄 햇살을 받으며 땅은 끝도 없이 몸을 늘이고 펼쳐져 있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로 들어서면 길 위의 봄은 만져질 듯 가까워진다. 금만로를 따라서 만경강을 건너고 읍내를 지나자 가슴이 쿵 하고 떨어졌다.
 
기습적으로 시야를 점령한 풍경은 평원, 만경 평야였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이곳에서 나는 드넓어 끝이 없는 땅을 바라보았다. 백학기 시인은 ‘눈이 모자라 다 못 보겠다’고 했던 광활함이다.
 
바다처럼 너른 김제의 만경 평야이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다. [사진 박재희]

바다처럼 너른 김제의 만경 평야이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다. [사진 박재희]

 
아득한 지평선을 바라보면서 뭉클 솟아오른 감정은 뜻 모를 향수였다. 수백 년 전 조선의 상남자였던 연암 박지원도 요동 벌판을 지나면서 “한바탕 통곡하기 좋은 곳이로구나!” 하지 않았던가. 만경 벌판에서 마치 이국의 낯선 곳에 홀로 놓인 것처럼 주체할 수 없이 감정이 휘몰아치며 뻐근해졌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난 사람은 어른이 되어도 땅을 알지 못하나 보다. 내게 ‘평야’는 곡창지대라는 관념에 갇혀 학습된 이름이었다. 그 땅이 맨살을 드러낸 채 겨울을 견디고 이제 막 봄을 맞은 터였다. 이제 곧 들판은 청보리로, 다시 우리를 먹일 벼를 키우며 서러웠던 시간을 덮을 것이다. 땅은 허리가 휘어 자기와 가까워진 사람들의 땀을 받고 대신 먹을 것을 내어준 존재였다.
 
그렇게 땅이 내게 말을 건넨 순간 하염없는 지평선을 넘어 먹먹함 같은 것이 차올라 넘친다.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벌판을 지나면서 느닷없이 눈물이 복받친 것은 만경 들판, 그 땅에 목숨을 기대고 땀을 뿌렸던 사람들과 시간의 이야기를, 이 땅의 어머니들을 기억해낸 때문일 것이다. 망해사로 가는 길, 바다를 만나기 전에 바다를 닮은, 바다보다 넓은 어머니 같은 땅, 만경 들판을 만났다.
 
봉황을 품어 산이 된 언덕, 진봉산 길
90년대부터 새만금 방조 사업으로 망해사에서 바라보던 바다는 이제 호수가 되었다. 망해사는 낙조를 감상하기 가장 좋은 곳 중에 하나로 알려져 있다. [사진 박재희]

90년대부터 새만금 방조 사업으로 망해사에서 바라보던 바다는 이제 호수가 되었다. 망해사는 낙조를 감상하기 가장 좋은 곳 중에 하나로 알려져 있다. [사진 박재희]

 
벌판이 바다라면 벌판 바다와 해가 넘는 서쪽 바다의 경계를 이루며 서 있는 것은 야트막하게 솟아나 있는 진봉이다. 해발 72m, 100m도 되지 않는 언덕이지만 떡하니 진봉산이라 불린다. 서울의 남산 옆에 세우면 진봉산 봉우리는 겨우 남산의 무릎을 넘겨 닿을락 말락 할 텐데도 말이다. 낮은 키에도 산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그 생김 때문일 것이다.
 
진봉산은 봉황을 품은 언덕이라고 한다. 하긴 봉황을 품었다면 높이가 대수일까? 사람이나 산이나 크기보다는 알맹이로 이름을 얻는 것이 실은 옳다. 그러니 진봉은 산 맞다.
 
진봉산을 오르는 길이 망해사로 이어진다. 1300년 오래된 사찰로 가는 길이건만 입구에는 소박한 푯말만 하나 서 있다. 굳이 사람을 부르고 싶지 않다는 듯 변변한 안내문 하나 없는 언덕길인데 양옆으로 수백 년 그 길을 지킨 듯한 소나무들이 늘어 서 있었다. 아름드리 우아한 소나무들이 하늘까지 큰 키로 자라있다.
 
시끄러울 것도 없는 길가로부터 멀어질수록 고요함이 더 깊어졌다. 품위 있는 소나무가 지키는 막막한 고요 속에서 팽팽하던 적막함을 깨고 나타난 것은 흐드러진 개나리와 벚꽃이었다. 
 
어이없는 봄의 환호가 넘치는 춘정으로 밀회 중이었다. 망망한 바다를 바라보는 절집 망해사로 가는 길, 이름처럼 바라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설렘으로 걸었다. 200m쯤 꿈꾸듯 취한 듯 걸었는데 길이 끝나기도 전, 불쑥 절집 마당이 나타났다. 나도 모르게 탄식이 터져 나왔다.
 
바다만 그리며 파도를 듣는 집
망해사 마당을 채우는 것은 불경 소리도 목탁 소리도 부처상이나 탑신도 아니다. 벚나무의 춘정이 가득하고 자유로운 망해사. [사진 박재희]

망해사 마당을 채우는 것은 불경 소리도 목탁 소리도 부처상이나 탑신도 아니다. 벚나무의 춘정이 가득하고 자유로운 망해사. [사진 박재희]

 
망해사는 애초부터 수상한 절집이었다. 일주문이나 사천왕사도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정원이다. 불당이 보이질 않는다. 사찰 한가운데 성정을 가눌 길 없다는 듯 분홍 벚나무가 흐드러져 온 마당을 다 덮고 있다. 절집에 배롱나무도 아닌 벚나무가 떡하니 중심을 차지하고 서서 20m 넘게 자란 팽나무들을 거느린다. 마치 어여쁜 여인 옆에서 두 남정네가 홀림을 당하고 뻘쭘하게 서 있는 모양새랄까. 망해사는 사찰이라기보다 비밀연애를 위한 정원처럼 고혹적이다.
 
목탁 소리가 아니라 파도 소리를 듣겠다는 이름을 붙인 청조헌에 걸터앉아 바다를, 이제 호수가 되어버린 바다를 바라보았다. 윤선도의 노래가 다시 떠오른다.
‘주인은 목탁을 잃고, 석가모니는 중생을 잃고, 나는 나를 잃고, 바다의 품으로 모두 돌아오네’


파도 소리를 듣는 집. 불경이나 법문이 아니라 파도 소리를 듣겠다는 이름의 파격이 자유롭고 더욱 시적이다. [사진 박재희]

파도 소리를 듣는 집. 불경이나 법문이 아니라 파도 소리를 듣겠다는 이름의 파격이 자유롭고 더욱 시적이다. [사진 박재희]

 
서해 낙조를 즐기기에 최고로 좋다는 낙서전은 아예 절집 마당을 외면하고 뚝 떨어져 있다. 그나마 불교식 이름을 붙인 극락전이 있긴 하다만 벚나무에 사찰의 중심을 내어주고 몸을 피해있다. 기분 좋은 파격의 이 수상한 절집에는 부처도 아니고 목탁 소리도 경전도 아닌 매혹이 가득 차 있다.
 
백제 의자왕 2년(서기 642년) 사찰이 세워졌던 자리에 1000년 후 진묵대사라는 스님이 낙서전을 짓고 망해사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바다 말고는 모두 잃게 되는 곳이라고 했던 망해사는 사람들에게 잃어버림으로써 무위의 해방과 기쁨을 찾게 해줬을 것이다. 새만금 방조 사업으로 이제 호수가 되어버린 그 바다를 이제는 마음으로만 볼 수 있다. 눈을 감으면 망망한 바다가 들려주는 거칠고 때로 잔잔한 파도 소리가 들린다.
 
지평선과 수평선이 만나는 유일한 곳, 외진 서쪽 바다 절벽에 기댄 절간에서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본다. 모두를 잃어버리고 바다만 들이는 시간, 내가 오롯이 나하고만 보내는 봄날이 간다.
 
박재희 기업인·여행 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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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희 박재희 기업인·여행 작가 필진

[박재희의 발로 쓰는 여행기] 한량으로 태어나 28년을 기업인으로 지냈다. 여행가, 여행작가로 인생2막을 살고 있다.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 여행하는 인간으로 삶의 의미를 찾아 길을 떠나는 여행자다. 길에서 직접 건져올린 이야기, 색다른 시각으로 비틀어 본 여행기를 공유하고자 한다. 여정을 따라 함께 걸으며 때로는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이야기, 생생한 도보 여행의 경험을 나누며 세상을 깊이 여행하는 길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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