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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날 받은 보따리, 휴게소에 슬쩍 버리고 간 젊은 부부

중앙일보 2019.04.03 07:00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82)
사돈어른들은 손수 농사지은 농산물을 딸 내외에게 보내곤 하신다. [사진 pixabay]

사돈어른들은 손수 농사지은 농산물을 딸 내외에게 보내곤 하신다. [사진 pixabay]

 
딸 아이 집 현관 앞에 잘 다듬어진 파가 한 자루 놓여있다. 내가 들러 가겠노라 했더니 먼저 외출한 딸이 갖고 가라고 내어놓은 것이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사돈어른들은 사계절 내내 온갖 신선한 농산물을 때때로 보내신다. 유행가 가사에서 ‘앉으나 서나 자나 깨나 당신 생각뿐’이라더니 부모의 마음속엔 자식들이 그렇다. 곧 4월인데 이미 내가 처리한 품목만 해도 많다.
 
손볼 것도 없는 대파 쪽파를 싣고 와 씻어 물기를 빼고 아침에 총총 썰어 팩에 넣어 포장한다. 딸네 집에 가서 냉장고에 넣으려고 봉지를 꺼내니 딸이 손사래를 쳤다. “엄마, 그거 지인들이랑 나눠 드시라고요. 파가 아직 많아~”
 
 
보이는 것마다 자식 생각에 바리바리 싸서 보내는 사랑 넘치는 시부모님께 슬쩍 거절을 표시한답시고 ‘어머니~ 애써 보내 주시는 거 잘 먹을게요. 근데 양을 조금 줄여 보내주세요. 냉장고에 보관할 곳이 좁아서요’라고 하니 대용량 냉장고로 바꿔 주셨다는 어른들이다. 속상해하기보다는 기분 좋게 받아서 가까이 사는 나에게 다시 떠안기기로 했단다.
 
나는 60대라 아직은 어정쩡한 세대라서 싱싱한 제철 식품을 보따리에 싸서는 댄스장에도 갖고 가고, 가까운 지인들에게도 나눠주고, 때론 택배비를 들여가며 보내기도 하니 모두 좋아한다. 어느 날엔 딸네 아파트 경비실 입구에 ‘공짜로 갖고 가세요’라고 좌판을 벌여 놓기도 했는데 젊은이들이 많이 사는 딸아이네 아파트는 ‘생물은 사양. 완성품만 받는다’는 맞벌이 주부의 재치 있는 말에 그 짓도 포기했다.
 
부모를 뵈러 갈 때 선물을 한 아름 준비해 가지만, 부모님은 더 큰 선물을 돌아가는 자식들에게 안겨주신다. 자나 깨나 하나라도 더 주고픈 부모의 마음이다. 얼마 전 지인이 명절 날에 휴게소에 부모가 싸준 떡과 농산물을 버리고 간 젊은 부부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진). [연합뉴스]

부모를 뵈러 갈 때 선물을 한 아름 준비해 가지만, 부모님은 더 큰 선물을 돌아가는 자식들에게 안겨주신다. 자나 깨나 하나라도 더 주고픈 부모의 마음이다. 얼마 전 지인이 명절 날에 휴게소에 부모가 싸준 떡과 농산물을 버리고 간 젊은 부부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진). [연합뉴스]

 
이웃에 사는 지인이 언젠가 명절날, 휴게소에서 잠시 쉬고 있을 때 휴게소 쓰레기장 옆에 눈치 보며 박스를 갖다놓고 떠난 젊은 부부가 있어서 그들이 가고 난 후 열어보니 아직 굳지도 않은 떡이랑 온갖 농산물이 들어있더란다. 그걸 갖고 와서 며칠 동안 눈물을 흘리며 먹었다고 한다. 그 이후로 당신은 자식들에게 절대 음식을 안 싸주고 안 보낸다고 하셨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음식도 우리와 다르게 먹는다. 외식도 자주 한다. 바로바로 먹어야 할 싱싱한 먹거리가 모두 냉동실에서 얼어 있고 냉장실엔 피자, 샐러드, 각종 향을 내는 소스 등 서양 음식으로 가득 차 있다. 부모님도 이젠 당신이 살아온 가난하고 못 먹던 그 시절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자식들과는 음식으로의 인연은 끊으라고 말해주고 싶다. 대신 된장, 간장, 김치 등 먹거리를 부탁하면 조금이라도 감사 헌금(?)을 받고 보내는 것이다. 자기들이 필요한 거면 돈을 주고라도 부탁을 한다. 꼭 받아 챙기는 건 필수다.
 
저번에 아들네를 가니 그 집도 택배가 자주 오는 것 같았다. 부모 사랑은 국경도 거리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쇼윈도에 비친 모든 물건이 자식이랑 겹쳐지니 온갖 거리에 마음을 담아 포장하여 비행기를 태워 보낸다. 아직 포장을 뜯지 않은 택배 박스를 보며, 보낸 어른의 성의를 무시한 것 같아 아들에게 한마디 했더니 아들이 하는 말이 의미가 있다.
 
봄을 맞이해 제철 나물을 비롯한 먹거리를 이웃들에게 나누기로 했다. [중앙포토]

봄을 맞이해 제철 나물을 비롯한 먹거리를 이웃들에게 나누기로 했다. [중앙포토]

 
“엄마는 아직 우리 집 주소도 모르지요? 택배 좀 보내달라고 해도 ‘거기서 사서 써~’하시고는 안 보낼 분이잖아. 흐흐…. 저쪽 어머님께는 ‘제발 힘들게 그러지 마세요’라고 해도 바뀌질 않는 것은 어른들의 살아온 습관이라 그런가 봐. 그래서 우리가 마음을 바꾸기로 했어. 어른의 취미 활동이려니 하고 받는 사람이 되어 주기만 하면 되는 거야. 취미활동까지 못 하게 하면 나이 들어 얼마나 허전하고 섭섭하시겠어. 안 그래?”
 
자식 사랑도 급수가 있다면 사돈어른들은 1급이다. 미안한 마음을 담아 이웃 사랑 급수라도 따야겠다. 손바닥만 한 집 마당 밭에도 봄나물 거리가 송송 고개를 쳐들고 올라온다. 봄, 여름, 가을까진 먹거리의 성수기라 나도 이웃사랑 택배기사로 당분간 투잡이다.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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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옥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필진

[송미옥의 살다보면] 요양보호사 일을 하다 평범한 할머니로 지낸다. 지식은 책이나 그것을 갖춘 이에게서 배우는 것이지만, 인생살이 지혜를 배우는 건 누구든 상관없다는 지론을 편다. 경험에서 터득한 인생을 함께 나누고자 가슴 가득한 사랑·한·기쁨·즐거움·슬픔의 감정을 풀어내는 이야기를 쓴다. 과거는 억만금을 줘도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는 말처럼 이웃과 함께 남은 인생을 멋지게 꾸며 살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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