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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3년차 재보선은 여당의 무덤?···MB·朴 정권은 승리

중앙일보 2019.04.03 05:01
고성군선거관리위원회가 26일 오전 경남 고성군 일대에서 4·3 국회의원 보궐선거 투표 캠페인을 시행하고 있다.[연합뉴스]

고성군선거관리위원회가 26일 오전 경남 고성군 일대에서 4·3 국회의원 보궐선거 투표 캠페인을 시행하고 있다.[연합뉴스]

집권 3년차 재ㆍ보궐선거는 정치권에서 통상 ‘여당의 무덤’으로 통한다.  
 
여권이 추진한 주요 정책에 대한 성적이 매겨지기 시작하면서 이에 대한 심판론이 먹히기 좋은 환경이기 때문이다. 제왕적 대통령제로 불리는 한국 정치 시스템에서는 정책 실패의 책임은 주로 정부와 여당에 지워진다. 각종 재난사고 등 돌발 이슈도 여당에겐 불리하게 여론이 조성되기 십상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콩깍지가 벗겨지면서 더는 화장이 먹히지 않는다. 뾰족한 성과가 없으면 가차 없이 외면당한다”고 말했다.  
2000년 이전에는 여당에 불리한 상황은 늘 가까운 재ㆍ보궐선거와 직결됐다. 2000년부터는 1년에 두 번 하는 방식으로 바뀌면서 규모가 커졌고, 2015년 7월 선거법이 개정되면서 연 1회로 축소됐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재·보궐선거는 미니 총선이라는 별칭도 붙게 됐다.  
 
그런데 2000년 이후 정부에서 3년차 재ㆍ보궐 성적을 추려보면 ‘여당의 무덤’이라는 통설은 다소 거리가 있다. 오히려 여야보다는 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측이 약세를 보였다.  
 
노무현 정부의 참패…박근혜, '선거의 여왕' 등극 
노무현 대통령이 2005년 7월 29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야당과의 대연정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중앙포토]

노무현 대통령이 2005년 7월 29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야당과의 대연정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중앙포토]

역대 3년차 재ㆍ보궐 선거 중 전국 규모로 큰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05년 4월 30일 재ㆍ보궐 선거였다. 김대중 정부의 3년차에 열린 2000년 재ㆍ보궐선거는 지자체장과 지방의원만 선출해 주목도가 낮았다.

 
2005년 4월 재·보선은 총 6석을 놓고 선거가 치러졌는데 열린우리당은 3석 이상을 차지해야 2004년 총선에서 확보한 과반을 지킬 수 있었다. 열린우리당은 성남 중원, 김해갑, 충남 아산 등에서 승산이 있다고 보고 총력을 기울였으나 한나라당이 5석을 가져가며 참패했다. 그 외 1석은 무소속이 가져갔고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한 석도 건지지 못했다.  
과반을 놓친 여권의 국정 장악력이 급속도로 약해졌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그해 7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연합정부 구성안 즉 ‘대연정’을 공식 제안했다가 큰 파문이 일었다. 이를 놓고 찬반이 엇갈린 열린우리당은 이때부터 극심한 자중지란에 빠져들었다. 
2005년 4월20일 4.30 재보궐선거 지원유세에 나선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충남 공주시장앞에서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라고 있다. [중앙포토]

2005년 4월20일 4.30 재보궐선거 지원유세에 나선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충남 공주시장앞에서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라고 있다. [중앙포토]

반면 한나라당을 이끈 박근혜 대표는 이 선거의 압승을 통해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칭을 얻는 등 정치적 입지를 확고히 다졌다.  
 
그해 10월 26일 열린 하반기 재ㆍ보궐 선거도 마찬가지였다. 선거가 진행된 4석 모두 한나라당이 가져갔다. 이 선거에선 당시 비례대표 초선이던 유승민 의원이 의원직을 사퇴하고 지역구(대구 동을) 선거에 뛰어들어 화제를 모았다.  
 
8곳의 '미니 총선', 예상 밖 여당 승리
이재오 한나라당 후보가 2010년 7월 26일 은평구 역촌시장에서 자전거를 타고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이재오 한나라당 후보가 2010년 7월 26일 은평구 역촌시장에서 자전거를 타고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이명박 정부 3년차에 치러진 2010년 7월 28일 재ㆍ보궐 선거에서는 무려 8곳에서 열린 데다 서울ㆍ인천ㆍ광주ㆍ강원ㆍ충청 등 지역도 다양해 영락없는 ‘미니총선’이었다.

한 달 앞서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야당이 승리하면서 여당에 불리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하지만 뚜껑을 열자 여당인 한나라당이 5석을 확보했고, 야당인 민주당은 3석을 얻는 데 그쳤다. 되려 야권 지도부가 ‘책임론’에 휘말리면서 당시 선거를 이끈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3개월 뒤 치러진 전당대회에서 3위에 그쳤다. 
 
통진당 해산 여파로 판 커져…관악을에선 새누리당 첫 승리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 선고. 헌법재판소. 법정 나서며 기자회견하는 이정희 대표와 통진당 의원들.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 선고. 헌법재판소. 법정 나서며 기자회견하는 이정희 대표와 통진당 의원들.

박근혜 정부 3년차였던 2015년 4월 29일 재ㆍ보궐선거는 당초 1석만 새로 정하는 초미니 선거로 열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2014년 12월 통합진보당이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되면서 규모가 커졌다. 통진당 의원들이 당선됐던 서울 관악을, 성남 중원, 광주 서을 등 3석이 추가됐다.  
이 선거는 여당인 새누리당의 승리로 돌아갔다. 새누리당은 총 4곳 중 3곳에서 승리했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은 1석도 얻지 못했다.
특히 관악을은 새누리당 오신환 의원이 당선돼 주목을 받았다. 1987년 관악을 선거구가 만들어진 뒤 새누리당 계열 의원이 당선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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