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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성인지 감수성' 판결 권순일, 안희정 재판 왜 안맡나

중앙일보 2019.04.03 05:00
비서 성폭행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안희정(54) 전 충남지사의 상고심 재판부가 변경됐다. ‘성인지(性認知) 감수성’ 판결로 유명한 권순일(60) 대법관이 당초 주심이었지만, 연고 관계가 확인돼 김상환(53) 대법관이 대신 맡게 됐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위력을 이용해 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무죄, 2심에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뉴스1]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위력을 이용해 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무죄, 2심에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뉴스1]

 
충남 연고 때문…"性 판결 부담 있었을 것" 해석도
2일 대법원은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등의 혐의로 기소된 안 전 지사의 상고심 재판부를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에서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로 전날 변경했다고 밝혔다. 권 대법관은 안 전 지사와 연고 관계를 이유로 지난달 29일 재배당을 요구했고,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권 대법관은 안 전 지사와 같은 충남 논산 출신이다. 대전고를 1977년 졸업해 남대전고를 1년(80년) 다녔던 안 전 지사와 학교가 겹치진 않는다. 다만 안 전 지사가 충남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정치인인 만큼 불필요한 논란이 일어날 가능성을 불식시키기 위해 재배당을 요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권 전 대법관은 2006년~2007년 대전지법·대전고법에서 근무하며 충남선거관리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당시 충남지사는 안 전 지사가 아닌 이완구 전 지사여서 겹치진 않지만 논란의 소지가 될 수도 있다. 권 전 대법관과 안 전 지사를 잘 아는 법조계 인사는 "두 사람이 이런 저런 공식적 자리에서 만나 인사도 나누는 등 아는 사이다"고 전했다. 
 
권 전 대법관은 지난 2015년에도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상고심 주심을 맡게 되자 회피 신청을 했다. 과거 법원행정처 기조실장과 차장을 맡아 대국회 업무를 할 때 국회 법사위원과 원내대표 등을 지낸 박 의원과 여러 차례 업무협의를 한 지인이라는 이유였다. 이후 주심은 김용덕 당시 대법관으로 교체됐다.

 
한 부장판사는 “권 대법관이 성인지 감수성을 최초로 도입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과도한 관심을 받은 것도 회피 신청에 영향을 미친 것 같다”며 “공정성 논란을 미리 차단하고자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 대법관은 지난해 4월 제자를 성희롱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한 대학교수가 받은 징계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그러면서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언급했다.
 
김상환 대법관 "성폭력 피해자 상황 이해해야"
새로 주심을 맡은 김상환 대법관도 성폭력 사건에서 엄격한 판결을 내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법관은 최근 8세 손녀딸을 수년간 상습 성추행한 70대 노인의 상고심에서 징역 7년을 확정했다. 성폭력 피해자 처지를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적도 있다. 그는 지난해 대법관 후보자로 지명된 이후 국회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법원이 성폭력 사건을 심리할 때 피해자가 처한 사정을 경청하고 2차 피해 가능성을 막아야 한다”고 적었다.
 
당시 ‘여성인권’이 한국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라는 의견도 함께 밝혔다. 그는 “남성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성차별 구조가 강화됐다는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여성을 대상화하거나 피해자화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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