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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준의 의학노트] 트럼프의 악수, 의사의 악수

중앙일보 2019.04.03 00:17 종합 27면 지면보기
임재준 서울대 의대 호흡기내과 교수

임재준 서울대 의대 호흡기내과 교수

사람들 사이의 가장 일상적인 신체 접촉은 뭐니뭐니해도 악수(握手)다. 악수는 기원 전 5세기 그리스의 묘비에 새겨진 그림에도 등장할 정도로 오래된 인류의 습관이다. 어떤 연유로 인류가 손을 내밀어 서로 맞잡고 흔드는 행동을 시작하게 됐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맨손을 내밀어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평화로운 관계를 제안하는 몸짓으로 시작되었을 것이라는 설이 가장 그럴 듯하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초 특유의 과격한 악수 때문에 여러 번 화제에 올랐다. 특히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나눈 25초의 강렬한 악수는 압권이었다. 그런데, 악수는 정말 그 사람의 성격을 드러내는 걸까?
 
미국 앨라배마 주립대학 심리학과의 윌리엄 채플린 교수가 발표한 악수의 방식과 성격의 관계에 대한 연구를 보자. 그는 우선 심리학과의 남학생 2명과 여학생 2명에게 상대방의 악수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훈련을 시켰다. 한 달이 지나자 이들은 악수의 강도, 시간, 손을 잡는 방식, 체온, 열정, 눈 맞춤, 감촉을 일관성 있게 평가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채플린 교수는 48명의 남학생과 64명의 여학생을 연구대상으로 참여시켰다. 이들의 임무는 4명의 평가자와 각각 악수를 하며 자기소개를 한 후, 자신의 성격에 관한 설문지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악수하는 트럼프(왼쪽)와 마크롱. 악수는 의학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뉴시스]

악수하는 트럼프(왼쪽)와 마크롱. 악수는 의학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뉴시스]

결과를 분석해보니 참여자들이 악수하는 방식과 성격의 상관관계는 분명했다. 손을 더 강하게 완전히 잡고, 더 열정적이고, 더 길고, 눈 맞춤까지 하는 방식의 악수를 하는 학생들이 더 외향적이었고, 새로운 경험에 열려 있었으며, 덜 예민하고, 덜 수줍어했다. 이렇듯 악수는 그 사람의 성격을 반영한다.
 
악수는 또한 사람들의 관계 형성의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드물지만, 서구에서는 처음 만나는 의사와 환자가 악수로 인사하는 경우가 흔하다. 맞잡은 손을 통해 의사는 환자에게 환영의 뜻, 따뜻한 마음, 전문성을 전달하고, 환자는 의사에게 당신을 신뢰한다는 뜻을 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의사와 환자가 손을 맞잡는 행동은 의학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어느 연구자가 남녀 의사 한 명씩을 골라 손을 깨끗이 씻게 한 후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의 외과 병동까지 올라가도록 했다. 그 곳에서 20명의 의사, 간호사들과 악수를 한 후 다시 1층으로 내려와 배지에 5초간 오른손을 꼭 누르게 하여 사흘 동안 세균을 배양했다. 다음에는 같은 의사들에게 다시 똑같은 과정을 반복하게 했는데, 이번에는 악수하는 대신 서로 주먹을 부딪치게 했다. 이후 주먹을 배지에 누르게 한 후 역시 사흘 동안 세균을 배양했다. 악수한 손바닥에서 자라난 세균의 숫자는 서로 부딪힌 주먹에서 자라난 숫자의 네 배였다. 의사의 손에 묻은 세균이 악수를 통해 환자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위험성 때문에 의사가 환자와 악수하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악수 대신 서로 손을 흔드는 것, 고개 숙여 인사하는 것, 두 손 모아 인사하는 것, 서로 눈을 마주치는 것 등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짧은 순간이라도 서로가 손을 맞잡고 체온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신뢰하고 공감하는 관계의 시작, 즉 치유의 시작이라고 믿는다. 그러니 악수를 금지하는 것보다는 손 씻기를 장려하는 것이 더 의학적이 아닐지.
 
임재준 서울대 의대 호흡기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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