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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승리·정준영 뒤에 숨은 경찰·방송의 도덕 불감증

중앙일보 2019.04.03 00:15 종합 28면 지면보기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가수 승리와 정준영을 둘러싼 의혹은 대중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방송에서 ‘위대한 승츠비’라고까지 캐릭터화됐던 승리는 서울 강남의 클럽 버닝썬 폭행 사건 의혹에서 시작해 이제는 마약·성매매·성접대에 도박과 탈세 의혹까지 받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오간 범죄 관련 언급까지 드러나면서 사건의 파문은 일파만파다.
 

경찰과의 유착 의혹 분명히 밝혀야
비리 스타 감싼 방송사도 반성해야

정준영은 성관계 동영상을 촬영해 단톡방에 유포한 혐의로 결국 구속됐다. 단톡방을 공유하면서 범법 행위에 가담하거나 묵인했다는 FT아일랜드의 최종훈, 씨앤블루 이종현, 하이라이트 용준형도 여론의 철퇴를 맞았다. 최종훈의 경우 과거 음주운전 사실을 경찰이 무마해줬다는 단톡방 내용으로 인해 경찰과의 유착 의혹까지 불거졌다.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나오는 범법 행위와 인성 부재의 언동에 대중은 분노하고 있다. 친근하게 여겨졌던 연예인들의 추악한 실체가 드러났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하지만 이 문제를 일부 연예인들의 개인적 일탈로만 여기고 질타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될까. 그건 어쩌면 달을 가리키는 손끝만을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과연 이번 사태의 본질은 무엇일까.
 
도덕적 해이의 문제에서 빠질 수 없는 게 경찰 유착 의혹이다. 승리와 정준영에 이목이 쏠리는 와중에 경찰 유착 의혹은 슬그머니 뒤편으로 물러나는 듯하다. 그러나 경찰과의 유착 의혹은 사실상 도덕적 해이를 촉발한 원인이기도 하다. 범죄적인 사건·사고를 저질러도 무마되는 사회에서 도덕이 온전할 리 있겠나. 승리가 카톡에 썼다는 문구(“××같은 한국 법 사랑해”)는 분노 차원을 넘어 깊이 숙고해봐야 한다.
 
또 하나의 축은 방송계의 도덕 불감증이다. 2016년 몰카 논란을 일으켰던 정준영을 재빨리 복귀시킨 이른바 공영방송 KBS의 ‘1박 2일’은 사실상 범법자를 ‘이미지 세탁’해준 꼴이 됐다. 정준영의 ‘황금 폰’ 관련 에피소드를 마치 무용담처럼 포장했던 MBC ‘라디오 스타’나, 승리에게 ‘위대한 승츠비’라는 캐릭터를 만들어준 MBC ‘나 혼자 산다’도 다를 게 없다. 방송사는 모르고 이들을 출연시켰다고 변명하지만, 어쨌든 방송이 결과적으로 범법자들이 더 활개 치고 다닐 수 있도록 방조한 셈이다.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인성 논란을 일으켰던 연예인들을 방송이 너무 쉽게 복귀시킨 것 아니냐고 비판하는 이유다.
 
이번 사태를 통해 근본적으로 들여다봐야 할 건 이른바 한류의 첨병으로 불리는 아이돌들이 과연 정상적인 시스템 속에서 배출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르면 초등학교 때부터 혹독한 연습생 시절을 거쳐 치열한 경쟁 시스템 속에 던져지는 이들은 정상적인 인성 교육을 받을 기회가 사실상 없다. 갑작스러운 성공 이후 아이돌 스타들이 종종 문제를 일으키는 건 어찌 보면 ‘과정의 비정상’ 때문일 수 있다.
 
대중문화 산업에서 경쟁력은 결국 사람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금처럼 비뚤어진 아이돌 스타 양성 시스템에서 ‘인성 리스크’가 야기될 잠재적 위험성이 크다는 얘기다. 인성 관리 프로그램과 아이돌 배출 시스템의 재점검이 절실한 이유다.
 
승리와 정준영을 둘러싼 이번 사태는 단지 연예계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대중의 눈길을 끄는 스타급 연예인이 가장 눈에 띄지만, 그 뒤에 놓여 있는 연예계 바깥과의 연결고리가 이번 사태의 진짜 뿌리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연예계 비리 의혹이 터지면 ‘이슈로 이슈를 덮으려 한다’는 의혹이 예외 없이 제기된다. 그런 오해를 불식하려면 승리·정준영 사태와 함께 장자연 사망 의혹 및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관련 의혹도 철저히 진상을 밝혀야 한다. 얼핏 달라 보여도 어쩌면 같은 뿌리에 연원을 둔 사건일 수 있으니 말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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