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음 산책] 필연 같은 우연을 만났을 때

중앙일보 2019.04.03 00:14 종합 29면 지면보기
혜민 스님 마음치유학교 교장

혜민 스님 마음치유학교 교장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이런 일을 경험해본 적이 있을 거다. 갑자기 누군가를 생각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람으로부터 연락이 온다거나, 장갑이 필요하다고 느꼈는데 다음날 지인이 어떻게 알고 장갑을 선물해준다거나, 재미삼아 타로 카드를 뽑아보라고 해서 뽑아봤는데 지금 내 상황과 딱 맞는 카드를 골랐다던가. 단순한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필연같은 신기한 경험을 우리는 종종 하게 된다.
 

신기함·놀람 주는 ‘동시성’ 경험
신성한 존재가 주는 축복의 선물
‘나는 소중한 존재’란 자각 일깨워

얼마 전 영국을 방문했을 때 내게도 이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영어로 번역된 신간을 홍보하기 위해 영국 출판사는 인터뷰와 강연 일정을 여럿 준비해놓았다. 그중 하나가 뉴캐슬이라는 도시에서 강연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내가 영국에 가기 직전에 봤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배경이 바로 뉴캐슬이었다. 그 많은 영국 도시 중에 뉴캐슬에서 강연을 하게 된 인연이 신기했다. 이틀 후, 아침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초대되어 런던 방송국 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나, 다니엘 블레이크’ 주인공 배우 데이브 존스가 대기실로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위해 왔다고 하는 그를 보는 순간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어안이 벙벙해진 나는 그와 함께 대기실에서 영화 이야기, 책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렇게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필연 같은 우연을 심리학자 칼 융은 ‘동시성(synchronicity)’이라고 이름 붙였다. 서로 연관된 일들이 동시에 발생할 때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우리는 불가사의하게 느끼게 된다. 즉, 물리학 법칙으로 설명되는 객관적인 세상과 한 개인의 정신적이면서도 주관적인 세상 사이에 우리가 모르는 연결 다리가 놓여 서로 소통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다.
 
마음 산책 4/3

마음 산책 4/3

칼 융은 본인 저서에 재미있는 동시성 예를 들었는데, 그의 내담자 가운데 과학을 신봉하면서 논리적인 설명만을 믿는 젊은 여성이 있었다고 한다. 아무리 융이 논리적으로 설명 불가능한 영역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해도 그 내담자는 이성적으로 설명 가능한 영역만을 믿어 어떻게 해야 그 믿음 너머의 세상을 보여줄까 고민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내담자가 전날 밤 꿈에 황금색 풍뎅이 모양의 장신구 선물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융에게 할 때 마침 그 순간 밖에서 어떤 벌레가 창문을 톡톡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창문을 열자 놀랍게도 연푸른 황금색 풍뎅이가 방 안으로 날아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그 풍뎅이를 잡아 융은 내담자에게 “당신의 풍뎅이가 여기 있어요”라고 말하며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이 같은 동시성의 경험을 하게 되면 사람들은 신기함과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궁금해하게 마련이다. 나도 그 궁금함에 찾아보니,먼저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경험을 어떤 신성한 존재가 자신에게 보내는 축복의 선물이라고 해석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어떤 이에겐 하나님이나 부처님일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겐 자신의 수호 천사나 돌아가신 부모님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이 세상에 홀로 버려진 의미 없는 존재가 아니고 이 우주와 연결된 소중한 존재라는 자각을 하게 해주는 특별한 경험이다.
 
또 어떤 이들은 동시성의 경험을 우리가 아는 4차원의 세상 말고도 더 높은 차원의 존재를 알려주는 일이라 해석하기도 한다. 평소에는 굳게 닫혀 있는 높은 차원의 문이 가끔씩 열리는데 그때 동시성의 경험을 한다는 것이다. 또 어떤 이는 양자 물리학의 ‘관찰자 효과’와 연관지어 관찰자의 시선이 물리적 현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실제로 가능하기에 이런 동시성의 경험도 일어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무의식에 관심 있는 이들은 사람의 의식은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 같지만 그 아래에 있는 무의식은 온 우주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물리적 세상과 심리적 세상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어서 동시성의 경험은 그 사실을 증명한다고 한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생각을 정리하면서 ‘제가 동시성을 한 번 더 경험하게 해주세요’ 하고 마음속으로 요청했다. 그러니 정말 신기하게도 라디오에서 사이먼 앤드 가펑클의 노래 ‘Song for the Asking’이 나왔다. “내게 요청하면 아름답게 연주해서 너를 미소 짓게 하겠다”라는 가사와 함께 말이다.
 
혜민 스님 마음치유학교 교장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