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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기의 시시각각] 백악관 대변인, 청와대 대변인

중앙일보 2019.04.03 00:10 종합 30면 지면보기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지난해 6월 백악관은 ‘백악관 직원 연간 보수’를 의회에 제출했다. 총 374명의 연봉이 자세히 표기돼 있다. 눈에 띄는 건 세라 샌더스 대변인. 17만9700달러(약 2억400만원)다.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등 21명과 더불어 공동 1위. 36살의 젊은 나이임에도 이런 ‘거액’을 받는 건 대변인이란 자리의 중요함을 상징한다. 무엇보다 세계에서 가장 공격적이고 자유로운 미국 언론을 다뤄야 한다.  게다가 백악관 대변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주목한다. 정신적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보통 내공 갖곤 안 된다. 극한직업이다. 백악관 대변인에게 방탄복을 취임 기념선물로 주곤 했다는 게 괜한 이야기가 아니다.
 

신분은 공직자, 기분은 민간인
‘그레이 존’ 편하게 오간 김의겸
백악관 대변인 고별사 읽어보길

주목할 점은 미국의 역대 대통령이 현직 기자를 백악관 대변인으로 발탁한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사실이다. 제럴드 포드 정부 시절인 1974년 NBC방송 기자 출신인 론 네센을 기용한 이후 45년 동안 딱 두 명 있었다. 토니 스노(2006~2007년), 제이 카니(2011~2014년)다. 대다수 대통령은 워싱턴의 쟁쟁한, 단련된 정치·정책 홍보 전문가에게 대변인을 맡겼다. 왜 그랬을까. 첫째, 정무 감각이나 정책 이해도 면에서 차이가 났다. 의회나 로비회사, 대선 캠프 등에서 갈고 닦은, 내공을 갖춘 인재 풀이 넘쳐나는 게 미국이다. 정치판 좀 기웃거렸다는 기자 경력만으로는 이들을 따라잡기 힘들다.
 
또 하나는 언론과 권력의 명확한 역할 분담이다. 역대 정권에서 보듯 미 언론에선 ‘대통령의 입’을 자처하고 나설 정도로 밀접한 관계를 맺는 기자는 드물다. 설령 있다 해도 앞에 나서지 않는다. 그게 언론의 정도(正道)이자 숙명이라 본다. 물론 다른 길을 기웃거리지 않게 할 충분한 경제적 뒷받침이 되는 게 우리와 큰 차이점이긴 하다.
 
한겨레신문 기자 출신 김의겸 대변인은 그 정도를 걷지 않아 뒤끝이 좋지 않은 사례였다. 언론인 때 하지 못했던 걸 청와대 고위 공직자 신분으로 하려다 사달이 났다. 무주택자에서 벗어나고 부동산 투자하려 했다면 돈 많이 주는 민간기업에 가거나, 어쨌든 공직에 가지 말았어야 했다. 기분은 민간인, 신분은 고위공직자였다. ‘그레이 존(gray zone·중간지대)’을 편할 대로 오갔다. 알려야 할 자리에서 가르치려 했고, 봉사해야 할 자리에서 누리려 했다. 책임져야 할 자리에서 책임을 돌리려 했다. 그의 고별사가 그걸 보여준다.
 
① 청와대 기자들에게: (여러분께 얼굴을 붉히고 쏘아붙인 건) 여러분 뒤에 있는 보도 책임자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보수언론들이 만들어내는 논리에는 정면 반박하고 싶었다.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에 한 번만 의문을 달아달라. (당신들) 선배들은 머리가 굳어 있어 생각을 바꾸기 어렵다. ② 국민에게: (부동산 투자는) 아내가 저와 상의하지 않고 내린 결정이었다. 내가 알았을 때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지경이었다.
 
나이 마흔에 백악관 대변인을 맡아 퇴임 시 ‘역대 최고의 대변인’이란 칭송을 들었던 조시 어니스트. 그가 2년 전 백악관 대변인을 마치면서 남긴 고별사를 우리 것과 비교해 보자.
 
① 백악관 기자들에게: 당신들이 (비판)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국민이 알아차린다. 여러분의 일에 대한 열정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구심점이며, 바로 그것이 오바마를 더 나은 대통령이자 더 나은 공직자로 만들었다. 그건 여러분이 결코 우리를 살살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다. ② 아내에게: 내 성공에 누구보다 크게 기여한 사람이 있는데, 그건 내 아내다. 실수를 하면 그녀는 주저 없이 내게 충고했다. 다음날 내가 제대로 해냈다면 그건 아내의 충고를 따랐기 때문이다. 여보, 당신의 인내, 의리, 조언, 그리고 사랑에 감사해. 모든 게 당신 덕분이야.
 
‘대통령의 입’, 대변인의 격은 곧 대통령의 격이다. 차기 대변인은 부디 명심하길 바란다.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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