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대통령만 모르는 정책 실패
낮은 연비에 부작용만 낳아
왜 얼치기 학설에 집착하나
저주받은 주홍글씨 안 되려면
미련 접고 속히 내려놓아야
문 대통령의 자신감 회복은 베네수엘라는 망했지만 최근 스페인·그리스가 선거를 앞두고 최저임금을 각각 22%, 11% 올린 것에 자극받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한국과는 딴판이다. 두 나라는 지난 10년간 최저임금을 거의 동결했다. 이번에 올린 최저임금 역시 중위소득 대비 60%(국제기구들이 최저임금의 악영향을 가늠하는 임계치)를 밑돈다. 동국대 김낙년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은 이 수치가 이미 74.5%나 된다. 우리보다 낮은데도 스페인·그리스의 실험은 사방에서 얻어터지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높은 실업률 하에서 매우 위험한 정책”이라 비판했고, 월 스트리트 저널은 “정통경제학을 정반대로 거스르는 경제적 도박”이라고 경고했다.
소주성의 파탄은 요즘 속된 말로 ‘불문가지(不文可知)’다. ‘누구나 다 아는데 문 대통령만 모른다’는 뜻이다. 소주성은 연비가 나빠도 너무 나쁜 엔진이다. 52조원을 퍼붓고도 만들어낸 일자리가 5000개다. 성장은 커녕 양극화 심화·투자 위축·실업 증가 등 부작용과 미세먼지만 내뿜고 있다. 적어도 하나의 경제 학설이 족보에 오르려면 일류 학술지에 논문들이 게재되고 정설로 인정받은 뒤 교과서 한 귀퉁이에라도 실려야 한다. 무엇보다 그 학설이 제시한 대로 실험 결과가 들어맞아야 하는 게 중요하다. 소주성이 족보를 따지려면 지금쯤 소비와 투자가 늘고 온 사방에 일자리가 널려있어야 하지 않을까.
소주성 설계자인 홍장표 수석과 집행자인 장하성 정책실장은 “최저임금 탓에 일자리가 악화됐다는 건 소설” “곧 정책 효과가 나타난다”는 변명만 일삼다 물러났다. 문 대통령도 뜬금없이 “경제가 좋아진다”며 헛다리를 짚기 일쑤였다. 지난 2년간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요즘 여론조사에서 소주성 반대 비율은 70%를 웃돌고 있다. 돌팔이 약장수의 만병통치약처럼 속여온 불만, 실험실 쥐처럼 앉아서 생체실험에 희생되고 있다는 분노가 겹친 것이다. 이제는 실패와 책임을 인정 안 하는 진보정권을 향해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소주성 앞에는 더 험난한 가시밭길이 놓여 있다. 반도체 침체와 수출 급감 등 온갖 경제지표가 차갑게 얼어붙고 있다. 미국·중국·유럽 등 대외 환경도 어려워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만능의 보검처럼 휘두르는 ‘재정(세금) 투입’도 언제 부메랑으로 돌아올지 모른다. 대표적인 게 지난달 28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SOS를 치는 장면이다. 박 시장은 “부동산 거래 감소로 취득세 등 지방세 세입 여건이 굉장히 좋지 않다”며 “대대적인 국비 지원을 특별히 부탁한다”고 호소했다. 서울시의 지방세수가 한계에 도달했다면 다른 지자체는 말할 것도 없다. 올해는 법인세·부가세 등 국세도 1월 수입 진도율이 12.6%로 전년동기 대비 1.1%포인트 낮아 빨간불이 켜졌다. 세수 결손이라도 생기면 ‘세금 퍼주기’에 제동이 걸리고 툭하면 추경 편성과 적자 국채 발행의 악순환이 시작된다.
문 대통령은 작년부터 “이제 성과로 말하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빠지는 경제지표들을 냉정하게 인정하고 소주성 실패부터 솔직하게 고백해야 할 것이다. 옛말에 송장 치고 살인 난다고 한다. 죽은 송장을 때리다가 억울하게 살인죄의 누명을 뒤집어쓴다는 것이다. 한국 경제는 주력산업 경쟁력 후퇴와 글로벌 경기 둔화, 생산인구 감소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 인해 가라앉고 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소주성에 집착할수록 모든 실패의 책임을 떠안게 되고 그 피해는 궁극적인 희생자인 국민에게 돌아간다. 더는 미련을 접어야 한다. 어쩌면 소주성은 두고두고 한국 진보정권의 지적 바닥과 무능을 상징하는 주홍글씨로 남게 될지 모른다.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