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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신용카드 송금’ 아이디어는 왜 7년을 묵혀야 했나

중앙일보 2019.04.03 00:05 경제 2면 지면보기
한애란 금융팀 기자

한애란 금융팀 기자

2012년 한 청년이 서울 여의도 금융위원회 사무실을 찾아왔다. 신용카드 담당 간부를 만난 그는 사업계획서를 펼치며 말했다. “은행의 청년창업 지원을 받으려고 했더니 은행에서 금융위부터 찾아가라고 합니다.”
 

외상송금 금지법에 막혀 좌절
그 사이 중국선 핀테크 꽃피워

그는 신용카드만 있으면 돈을 보낼 수 있는 사업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카카오톡 메신저를 통한 핀테크(금융+기술) 사업이었다.  
 
통장에 잔액이 없어도, 미리 충전해놓지 않아도 개인 간 송금이 가능하다는 설명이었다.
 
문제는 규제였다. 여신전문금융업법 2조는 신용카드 가맹점을 “물품의 판매 또는 용역의 제공 등을 하는 자”로 한정했다. 개인 간 송금은 물품 판매도, 용역 제공도 아니다. 이를 바꾸려면 법 조항에 개인 간 송금 서비스를 추가해야 하는데 쉽지 않은 문제였다.
 
당장 금융위 실무진부터 난색을 보였다. 신용카드를 이용한 외상 송금이 가능해지면 속칭 ‘카드깡’으로 불리는 불법 할인대출로 악용될 거란 우려였다. 카드깡을 걱정해 개인 신용카드로 상품권도 사지 못하게 막아놨는데, 송금 허용은 더욱 안 될 일이라는 논리였다.
 
2003년 신용카드 사태로 신용대란이 벌어진 지 채 10년이 지나지 않은 때였다. 결국 법 개정은 시도조차 못 한 금융위 간부는 그 청년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중국으로 가시오.”
 
해외에선 신용카드를 이용한 개인 간 송금 서비스가 여럿 나와 있다. 페이팔의 e-메일 송금, 벤모의 페이스북 친구 간 송금, 비자의 ‘비자 다이렉트’ 송금 서비스 등이다.
 
국내에선 이제서야 검토 대상에 올랐다. 지난 1일 금융위가 발표한 ‘금융규제 샌드박스(유예)’의 우선 심사대상 19건 중 ‘신용카드 기반 송금 서비스(신한카드)’가 포함됐다. 7년 전 결국 아이디어를 꽃피우지 못한 채 포기해야 했던 청년이 꿈꾸던 것과 같은 서비스다.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두 가지다. 우선 최장 4년간 규제를 면제해주는 규제 샌드박스 제도가 본격 시행됐다. 그리고 한국이 핀테크 영역에서 미국과 유럽은 물론 중국에도 크게 뒤진다는 위기의식이 커졌다.
 
물론 금융시장 안정과 소비자 보호는 중요한 가치다. 하지만 안 되는 것투성이인 규제의 그물망을 그대로 놔둘 순 없다.  
 
혁신은커녕 해외에선 이미 널리 하고 있는 것조차 따라잡기 어려운 게 한국 금융의 현실이다.
 
금융규제 샌드박스의 우선 심사대상에도 오르지 못하고 아직 대기 중인 아이디어도 86건에 달한다. 더 과감한 금융실험의 장이 될 수 있도록 규제 샌드박스를 키워야겠다. 중국에 갔을지도 모를 그 청년이 국내에서 다시 도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한애란 금융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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