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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숙성 안해도 깊은 향" 대만 위스키가 보여줬다

중앙일보 2019.04.02 13:00
[더,오래] 김대영의 위스키 읽어주는 남자(18)
위스키가 숙성되고 있는 작은 크기의 오크통. 이 작은 오크통에도 천사의 몫은 있다. [사진 김대영]

위스키가 숙성되고 있는 작은 크기의 오크통. 이 작은 오크통에도 천사의 몫은 있다. [사진 김대영]

 
위스키 생산자 입장에서 가장 아까운 것은 숙성 기간 중 사라지는 위스키일 것이다. 위스키는 오크통 숙성 중에 양이 줄어든다. 스코틀랜드에선 보통 1년에 2% 정도. 이를 천사가 가져가는 몫이라 아름답게 포장해서 ‘앤젤스 셰어(Angels Share)’라고 하는데, 위스키 생산자 입장에선 ‘데블스 셰어(Devils Share)’라 부르고 싶을지도 모른다.
 
더운 지역에선 위스키 만들기 어렵다고?
고온 다습한 아열대 기후에서는 천사의 몫이 훨씬 많아진다. 연간 약 10% 정도. 한 증류소를 대표하는 위스키는 보통 10년 정도 숙성을 하는데, 아열대 기후에서 10년간 숙성하면 약 65%의 위스키가 사라지는 셈이다. 그래서 위스키 업계는 더운 지역에서는 위스키를 만들기 어렵다고 봤다. 하지만 대만의 신생 증류소가 이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카발란(Kavalan) 증류소는 2005년 대만 이란(Yilan) 지역에 세워졌다. 2002년 대만의 WTO 가입으로 정부의 주류산업 독점이 해제된 덕이다. 약 50여년 전부터 위스키 증류소를 꿈꾸던 대만 킹카 그룹(KING CAR GROUP) 회장은 영국에서 유학생활을 한 이안 창(Ian Chang) 씨 등의 인재를 영입했다.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대만 카발란 위스키 증류소 전경, 이안 창, 카발란 증류소 숙성창고의 오크통. 카발란 마스터 블렌더 이안 창은 지난 2월 서울에서 카발란 마스터 클래스를 진행했다. 카발란 증류소의 위스키 증발량은 추운 지역에 비해 훨씬 많지만, 그만큼 빨리 숙성된다. [사진 카발란 코리아, 김대영]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대만 카발란 위스키 증류소 전경, 이안 창, 카발란 증류소 숙성창고의 오크통. 카발란 마스터 블렌더 이안 창은 지난 2월 서울에서 카발란 마스터 클래스를 진행했다. 카발란 증류소의 위스키 증발량은 추운 지역에 비해 훨씬 많지만, 그만큼 빨리 숙성된다. [사진 카발란 코리아, 김대영]

 
그리고 증류소 설립 3년만인 2008년에 첫 제품 ‘카발란 클래식 싱글몰트’를 출시했다. 이후 아열대 기후에선 위스키 제조가 어렵다는 업계의 상식을 깨고, 2013년경부터 각종 세계 주류품평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두각을 나타냈다. 그리고 전 세계 70여 개 나라로 수출되며 세계적 위스키로 성장했다. 카발란의 성공비결은 '숙성의 재정의'이다. 지난 2월, 서울에서 열린 카발란 증류소 마스터 블렌더 이안 창 씨 클래스에 참석했다. 그는 카발란의 성공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위스키 숙성을 ‘재정의’한다는 자신감이 있습니다. 누구도 성공을 예측하지 않았던 대만에 위스키 증류소를 세워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오래 숙성해야 깊은 맛 낸다는 생각 바꿔
일본 본토 최남단 섬, 야쿠시마에서 숙성한 일본 위스키. [사진 이승재]

일본 본토 최남단 섬, 야쿠시마에서 숙성한 일본 위스키. [사진 이승재]

 
카발란 증류소는 아열대 기후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봤다. 높은 온도에서는 위스키가 더 빨리 숙성된다는 점을 이용해, 한여름엔 숙성고의 창문을 모두 닫아 높은 온도를 유지했다. 스코틀랜드라면 10년 걸렸을 위스키 숙성이 4~6년이면 가능했다. 천사에게 더 많이 헌납하는 대신, 더 빨리 위스키가 숙성된 셈이다.
 
이안 창 씨는 ‘오래 숙성시킨 위스키가 더 풍부하고 깊은 맛을 낸다’는 생각이 대만에선 다르다고 했다. 아열대 지역에선 위스키를 오래 숙성시키면 오히려 화를 부른다고. 숙성고에서 가장 오래 숙성된 12년짜리 위스키를 마셔봤더니, 오크통의 쓴맛이 너무 강하고 드라이해서 도저히 상품화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위스키 숙성에 정해진 답은 없고, 기후에 따라 나름의 숙성 방법이 존재할 뿐이란 거다.
 
카발란의 성공은 전 세계에 ‘남쪽 위스키’ 바람을 불게 했다. 영국의 식민지 지배 영향으로 일찍이 위스키를 생산하던 인도의 증류소도 덩달아 주목을 받았다. 또, 최근 일본 본토 최남단 가고시마 지역에 츠누키, 카노스케 등 신생 증류소가 두 개나 생겼다. 츠누키 증류소를 세운 회사는 그보다 더 남쪽인 일본 본토 최남단 섬, 야쿠시마에서 위스키를 숙성해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위스키 회사들의 남부 개척은 한동안 계속될 것 같다.
 
김대영 중앙일보 일본비즈팀 과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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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영 김대영 중앙일보 일본비즈팀 과장 필진

[김대영의 위스키 읽어주는 남자] 위스키 덕후이자 싱글몰트 위스키 블로거다. 위스키를 공부하기 위해 일본에서 살기도 했다. 위스키와 위스키 라벨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를 소재로 위스키에 대한 지식과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삶의 지혜 등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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