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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원 비닐 대신 800원 장바구니 구매하라고?" 비닐 단속 현장

중앙일보 2019.04.02 11:36
전국 대형마트, 백화점, 쇼핑몰 등에서 일회용 비닐봉투 사용이 금지된 첫날인 1일 오전 서울 용산구의 한 대형마트에 흙 묻은 채소 등을 담을 때 예외적으로 제공이 가능한 '얇은 속 비닐봉투(비닐 롤백)' 사용 자제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전국 대형마트, 백화점, 쇼핑몰 등에서 일회용 비닐봉투 사용이 금지된 첫날인 1일 오전 서울 용산구의 한 대형마트에 흙 묻은 채소 등을 담을 때 예외적으로 제공이 가능한 '얇은 속 비닐봉투(비닐 롤백)' 사용 자제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비닐봉투 판매 안합니다. 장바구니 800원인데 구매하시겠어요?"
전국 대형마트와 백화점은 물론 슈퍼마켓까지 일회용 비닐봉투 사용이 전면 금지된 첫날인 1일, 서울 은평구의 한 슈퍼마켓에서 고기·라면·우유 등을 구매한 50대 남성에게 계산대 직원이 장바구니 구매를 권했다. 이에 남성은 "50원짜리 비닐봉투를 달라"고 언성을 높이다 결국 20ℓ 재활용쓰레기봉투를 구매해 물건을 담아갔다. 그러면서 "장볼 때 100원, 200원 아껴가며 물건 고르는 데 계산대에서 덜컥 800원짜리 장바구니 사라고 하면 기분 좋겠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과일·야채 판매 코너에서도 항의가 잇따랐다. 한 60대 여성이 이곳에 비치된 속비닐을 뜯어 주머니에 몰래 넣었다. 이를 본 직원이 "안된다"고 저지하자 "이게 얼마나 한다고 그러냐"면서 "다신 안오겠다"면서 화를 냈다. 매장 직원 손영순(58)씨는 "손님 입장도 이해되는데, 우리도 벌금을 내야해 막을 수밖에 없다"고 씁쓸해했다.
 
일회용 비닐봉지 판매가 전면 금지된 1일 서울시는 구청·시민단체와 합동으로 집중단속에 나섰다. 비닐봉지 사용이 적발되면 경고 없이 바로 5만~3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이같은 조치에 현장에서는 "준비 없는 졸속행정이자, 선후가 뒤바뀐 꼼수"라는 불만과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지자체가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을 전면 금지하기 전에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나 비닐봉지 대체재를 마련했어야 하는데, 여기에는 손놓은 채 단속에만 급급하다는 것이다.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 금지된 첫날인 1일, 은평구의 한 마트에서는 비닐봉지 대신 800원짜리 장바구니를 판매했다. 박형수 기자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 금지된 첫날인 1일, 은평구의 한 마트에서는 비닐봉지 대신 800원짜리 장바구니를 판매했다. 박형수 기자

홍춘호 한국마트협회 이사는 "현재 환경부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은 너무 엉성해 현장에서 적용할 수 없고, 지자체별로 단속 내용도 제각각"이라면서 "너무 혼란스럽다"고 토로했다.
 
바나나가 대표적이다. 정부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포장되지 않은 낱개 과일, 흙 묻은 채소 등은 속비닐 사용이 가능하다. 홍 이사는 "서울시는 바나나를 '낱개 과일'로 보고 속비닐 사용을 허용한 반면, 일부 구청에서는 '다발 형태'라면서 속비닐 사용을 단속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계도기간(1월1일~지난달 31일)에 현장 혼란을 막을 구체적인 매뉴얼을 만들어달라고 환경부·지자체에 수차례 요청했지만 묵살당했다"고 말했다.
 
속비닐 사용이 제한되자 스티로폼 트레이에 담아 비닐랩을 칭칭 감아 미리 포장한 상품 판매량이 늘었다고도 주장했다. 홍 이사는 "환경부가 생선·정육·채소 등을 트레이와 랩으로 포장하는 것은 규제하지 않았다"면서 "속비닐 사용은 제한했지만, 결과적으로 스티로폼과 랩 등 일회용품 사용 총량은 더 늘어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은평구 슈퍼마켓 직원은 "동네 마트는 배달 물량이 많은데, 이마저도 비닐봉지에 담을 수 없어 자구책으로 300원짜리 마대자루를 주문해 사용하고 있다"며 "대책 없이 정책을 강행해 골머리를 썩고 있다"고 말했다.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 금지된 첫날인 1일, 서울 은평구의 한 마트에서는 배달할 물건을 비닐봉지가 아닌 마대자루에 담았다. 박형수 기자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 금지된 첫날인 1일, 서울 은평구의 한 마트에서는 배달할 물건을 비닐봉지가 아닌 마대자루에 담았다. 박형수 기자

 
장준영 서울시쓰레기함께줄이기시민운동본부 위원장은 "과자나 음료수 등 대기업에서 생산한 완제품은 전부 비닐포장이 돼 있는데, 손님이 담아갈 비닐봉투 사용부터 단속하는 것은 서민의 희생만 강요한 조치"라고 비판했다. 장 위원장은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 비닐 사용을 제한한 정부 방침에는 동의한다"면서도 "실효성을 높이려면 먼저 기업의 과대포장을 규제하고 비닐봉지를 대체재를 마련·보급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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