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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인사이트] ‘한 나라 두 대통령’ 사태…미·중·러 힘의 대립으로 비화

중앙일보 2019.04.02 00:03 종합 24면 지면보기
베네수엘라 운명은 어디로 가나
중남미의 석유 부국이던 베네수엘라가 전기 공급이 끊어질 정도의 경제난과 ‘한 나라 두 대통령’의 정치 위기를 맞고 있다. 원인은 우고 차베스의 포퓰리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진은 수도 카라카스의 한 건물에 그려진 차베스의 대형 초상. [AFP=연합뉴스]

중남미의 석유 부국이던 베네수엘라가 전기 공급이 끊어질 정도의 경제난과 ‘한 나라 두 대통령’의 정치 위기를 맞고 있다. 원인은 우고 차베스의 포퓰리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진은 수도 카라카스의 한 건물에 그려진 차베스의 대형 초상. [AFP=연합뉴스]

경제위기에서부터 시작된 베네수엘라 사태가 정치위기를 거쳐 미국·유럽 등 서방과 러시아·중국 간의 강대국 간 진영 대립으로 비화하고 있다.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이 2018년 대선을 조작된 불법선거로 규정하며 헌법에 따라 국회의장이 대통령 대행을 맡겠다고 나선 뒤 베네수엘라는 ‘한 나라 두 대통령’의 상황을 맞고 있다. 미국은 과이도를 임시대통령으로 인정하면서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했다. 반면 러시아와 중국은 마두로 대통령을 지지한다. 석유 매장량 세계 1위로 한때 중남미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였다가 이제는 전기와 물 공급이란 국가의 기본 기능조차 힘들어진 베네수엘라의 국가 운명은 어디로 가나. 베네수엘라 위기의 전말을 살펴본다.  
  

미국, 중남미 공산정권 저지에 사활
중·러, 석유 확보와 대미 견제 발판
국유화와 복지 … 차베스 혁명 실패
포퓰리즘과 위장 독재가 부른 위기

미국은 자신의 앞마당인 중남미에서 공산 정권의 출현을 막는 데 사활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과거 미국이 이 지역에서 군사독재를 용인한 큰 이유도 공산화를 저지하려 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베네수엘라는 쿠바와 한통속이다. 후안 차베스의 후임자인 마두로는 쿠바의 생명줄이다. 마두로는 청소년 시절 쿠바에서 공부한 공산주의자다.
 
반면 러시아와 중국이 볼 때 베네수엘라는 석유 자원의 안정적인 공급기지일 뿐만 아니라 미국을 견제하려는 지정학적 게임의 차원에서도 전략적 가치가 높다.
 
러시아는 2006년부터 베네수엘라와 석유와 군사무기를 주고받는 관계가 되었다. 러시아 입장에서 쿠바와 베네수엘라는 미국을 견제하는 전략적 위치에 있다. 러시아는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 북쪽의 안토니오 디아스 해군기지에 사이버망을 운영하고 있다. 수시로 합동군사훈련도 하고 전략폭격기를 보내기도 한다. 이는 우크라이나와 동유럽에 대한 미국의 간섭을 견제하는 압력수단으로 작용한다. 만일 마두로 정권이 무너지면 베네수엘라에 제공한 차관을 상환받을 길이 불확실해지고 미국과의 지정학 게임에서 큰 레버리지도 잃게 된다.
 
석유 확보가 필요한 중국은 일찌감치 베네수엘라에 크게 베팅했다. 중국은 2008년부터 베네수엘라에 700억 달러가 넘는 신용을 제공했다. 석유가 담보물이다. 중국은 자동차, 통신, 인프라, 가전사업 등을 통해 전방위로 차베스와 마두로 정부를 지원하고 최신 군사장비를 공급해 왔다. 중국은 카라카스 남부지역 마누엘 리오스 공군기지에서 위성추적장치를 운영 중이다. 중국이 베네수엘라와 맺은 돈독한 관계는 미국과의 전략 경쟁에서의 포석이란 의미가 있다.
 
중국의 문제는 베네수엘라에 제공한 신용이 너무 크다는 점이다. 최근 미국과의 무역분쟁에서 중국은 잠시 대립의 날을 접었다. 국내외 상황이 바뀌면 마두로에 대한 지지를 접고 미국과 타협할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중·러 양국은 유엔 안보리에서 마두로를 위협하는 결의에 반대하는 등 정치적으로 공조할 것이다. 하지만 국제정세는 수시로 변하는 법이다. 베네수엘라 여론이 마두로 정부를 완전히 외면하고, 군부가 과이도 국회의장을 지지하면 러시아와 중국도 마두로 지지를 철회할 가능성이 크다. 우정보다 돈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 사태는 어떻게 수습될 것인가. 대외적으로는 미국과 러시아·중국 간의 합의에, 대내적으로는 군부가 어떠한 입장을 갖느냐에 달렸다. 군부의 입장은 국민 지지도에 좌우된다고 볼 수 있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마두로가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려면 러시아와 중국이 마두로를 계속 지지하고 군부의 지지가 굳건해야 한다. 둘째는 야당이 정권을 인수하는 경우다. 마두로가 과이도 의장과 합의해서 선거를 다시 치르는 것이다. 세 번째 시나리오는 군사 쿠데타로 군부가 집권하는 경우이다. 가능성은 낮지만 군부가 선거를 관리하고 당선인에게 권력을 이양하는 시나리오를 생각해볼 수 있다.
 
중국은 마두로 정부가 경제적 난관을 헤쳐 나갈 것으로 한 때 기대했으나 지금은 그러한 기대를 접은 듯하다. 2012년 대선 때부터 야당과 접촉했고 차관 심사를 엄격하게 하는 쪽으로 태도를 바꿨다. 최근에는 과이도 의장 측과도 접촉했다고 한다. 리스크 분산을 위해 양다리를 걸쳐놓은 모양새다.
 
러시아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러시아는 국영석유회사인 로즈네프트(Rosneft)를 통하여 65억 달러의 신규 차관을 베네수엘라 국영석유공사에 공여했다. 미국의 경제제재가 로즈네프트에까지 미칠 경우, 러시아의 태도가 달라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중·러는 마두로 정부의 정치 장악력과 경제 회복력이 한계를 보이자 정치적 득실보다는 경제적 득실에 더 무게를 두는 움직이다. 미국보다 전략적 절실함이 덜하기 때문이다. 두 토끼를 잡을 수 없다면 하나라도 건지려는 속셈이다. 과이도 의장 측과 물밑 접촉을 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베네수엘라의 앞날은 야당이 정권을 인수하는 두 번째 시나리오대로 흘러갈 가장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다.
 
알려진 대로 베네수엘라 위기의 배경에는 4선 대통령을 지낸 우고 차베스(1954~2013)가 있다. 차베스는 사회주의자였다. 그가 내건 목표는 대내적으로는 거대 자본가로부터 국민을 해방하고, 대외적으로는 미국 등 자본 제국주의로부터 독립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정책을 ‘21세기 사회주의’라고 명명했다.
 
차베스는 민간 대기업에 대해 큰 불신을 갖고 있었다. 국가가 민간부문을 통제하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리라고 믿었다. 기업들은 수시로 국유화되었고, 경험 없는 측근들이 기업을 통제했다. 그 결과 부패구조가 만들어졌고 생산은 침체했다. 그는 자신의 정책에 반기를 드는 국영석유회사 직원들을 모두 해고하고 무능력한 지지자들로 자리를 채웠다. 국가신용 등급은 추락했다. 고유가 호황을 누릴 때 미래 먹거리 창출을 위한 고민도 부족했고, 유가 등락에 따른 리스크 완화시스템도 설계되어 있지 않았다.
 
차베스는 무상교육, 무상의료는 물론 서민층에 무상주택까지 제공하는 사회복지정책을 폈다. 2008년 말까지는 높은 국제유가의 덕으로 차베스주의 실험이 가능했다. 그러나 2008년 초 배럴당 150달러이던 국제유가가 같은 해 말 34달러로 급락하자 더는 복지정책을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차베스가 2013년 암으로 인생을 마감할 무렵 경제는 파탄의 길로 들어갔다. 마두로는 아무런 대책 없이 파탄 난 경제를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시민을 정치의 중심으로 내세운 차베스가 국민 참여가 가능한 민주제도를 만든 것은 사실이다. 지방분권과 검찰·선거위원회·감사원 등의 독립을 헌법으로 보장한 것도 참신한 시도였다. 하지만 실제 운영은 달랐다. 그는 이러한 기관 운영을 지지자들로만 채워 넣었고 마두로 정부에서 그 폐해는 극에 달했다. 차베스와 마두로는 정치적 문제가 불거지면 제도에 의한 해결보다는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여 문제를 푸는 방식의 포퓰리즘을 선택했다. 국민의 정치 참여를 담보로 한 ‘위장 독재’의 길을 택한 것이다. 권력기관의 독립이 휴짓조각이 되고 견제와 균형이 무너지면 제도적 민주주의가 제도적 독재로 변질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베네수엘라는 석유자원이 있고 인구(3200만명)도 많지 않기 때문에 정치적 안정만 되면 경제회복에는 시간 문제일 뿐 큰 어려움이 없다. 다만 차베스의 참여민주주의와 지방분권 그리고 균형발전이라는 아름다운 정치적 이상이 지속가능성 없는 사회정책과 위장된 독재로 퇴색되었다는 것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베네수엘라 사태는 인재(人災)라고 할 수 있다.
  
◆조희문
한국외국어대를 졸업하고 브라질 상파울루 대학교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브라질 상프란시스코대 법대 교수와 데마레스트 로펌에서 변호사로 오랜 기간 활동했다. 현재는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국제법과 중남미법을 담당하고 있다.

  
조희문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국제 사회의 현안을 전문가의 심층 분석으로 짚어보는 ‘월드 인사이트’를 매주 화요일 ‘차이나 인사이트’와 번갈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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