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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숭이 임금님'의 교훈이 현실에선 왜 나타나지 않나

중앙일보 2019.04.01 15:00
[더,오래] 김성희의 천일서화(30)
오늘날 우리 사회는 걱정스러울 정도로 갈라져 있다. 자기와 의견이나 취향이 다른 이를 용납하지 못하고 '적'으로 간주해 공격적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잦다. [사진 pixabay]

오늘날 우리 사회는 걱정스러울 정도로 갈라져 있다. 자기와 의견이나 취향이 다른 이를 용납하지 못하고 '적'으로 간주해 공격적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잦다. [사진 pixabay]

 
오늘날 우리 사회는 걱정스러울 정도로 갈라져 있다. 정치판의 특정 이슈의 찬반에서 인기 연예인에 대한 호불호에 따라 ‘우리 편’과 ‘나쁜 나라’로 갈려 걱정스러울 정도로 다툰다. 이를 두고 무슨무슨 ‘빠’니 해서 경멸적으로 손가락질하기도 하고 ‘팬덤’이라 해서 긍정적으로 보기도 한다. 점잖게는 ‘진영논리’라고도 하든가.
 
문제는 이것이 정도를 넘어선 양상을 보인다는 점이다. 자기와 의견이나 취향이 다른 이를 용납하지 못하고 ‘적’으로 간주해 공격적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잦아서다. 거의 모든 사안에서, 거의 습관적이라 할 정도로 소수 의견에 기우는 입장에서 보면 이게 침묵하자니 불편하고 드러내놓고 맞서자니 위험스러워 보여 망설여지는 게 사실이다. 나 같은 이들이 적지 않다고 여겨 이들을 응원한달까 의지가 될 만한 책을 소개한다.
 
『왜 사회에는 이견이 필요한가』(카스 R. 선스타인 지음, 후마니타스)가 그것이다. 지은이는 하버드 대학교 로스쿨 교수로, 미국 정치사의 사례를 분석해 동조의 위험과 이견을 중요성을 설파한 책이다. 읽기에 만만치는 않지만 사회적 논의가 어째서 일방적인 방향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는지 원인을 분석하고, 건강한 사회가 되기 위해 왜 다른 의견이 필요한지를 학술적으로 입증해주기에 도전해볼 만하다.
 
『왜 사회에는 이견이 필요한가』, 카스 R. 선스타인 지음.

『왜 사회에는 이견이 필요한가』, 카스 R. 선스타인 지음.

 
지은이에 따르면 동조, 사회적 쏠림(social cascade), 집단적 편향성(group polarization) 때문에 이견이 설 자리가 좁아진다. 여기엔 몇 가지 원인이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의 부족 또는 왜곡과 평판의 압력이다.
 
예를 들면 자기가 좋아하는 개그맨의 정치적 발언을 그대로 믿는다거나 단지 사심이 없다는 이유로 전문성이 없는 종교인의 환경보호운동 논리를 지지하는 것은 정보의 부족 또는 왜곡에 따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지은이는 의사들의 처방, 판례 등을 예로 들며 동조와 사회적 쏠림은 장님이 장님을 인도하듯, 앞선 사람들의 결정도 결국 다른 사람들의 결정을 따랐을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집단편향성의 주요 요인은 평판의 압력이다. 극단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옳다는 확신을 강하게 갖는 경우가 많지만 확신이 약한 이들은 중도적인 의견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사람은 ‘좋은 게 좋으니까’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까 봐’ 다수라고 여겨지는 이들의 의견에 동조하게 되어 진보적인 이들이 모이면 더욱 진보적인 의견이, 보수적인 집단에선 더욱 보수적 의견이 득세하게 된다는 것이 지은이의 설명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어빙 야니스가 제시한 집단 사고를 소개하는 대목이다. 야니스에 따르면 집단 결속력이 강한 경우, 집단의 정책 결정에 전문가의 의견이나 외부 평가를 받을 수 없는 경우, 지도자들이 열린 토론과 비판적 평가를 장려하지 않을 경우, 구성원들의 사회적 배경과 정치적 신념이 서로 비슷한 경우 잘못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우리 사회 ‘빠’들이 귀담아들어야 할 대목 아닌가.
 
카네기국제문제윤리위원회에서 강연중인 카스 R. 선스타인. [사진 유튜브 영상 캡쳐]

카네기국제문제윤리위원회에서 강연중인 카스 R. 선스타인. [사진 유튜브 영상 캡쳐]

 
이와 함께 지은이는 동조하는 사람들은 사회에 도움이 되고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은 반사회적 또는 이기적인 사람이라 여겨지지만 실은 그 반대라고 일깨운다. 많은 경우 대중의 뜻을 따르는 것은 개인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만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시각이나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이익을 준다는 점에서 이견 제시자들이야말로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런 만큼 건강한 사회가 되기 위해선 구성원들이 무조건 동조하지 않고 좀 더 활발하게 이견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이는 당장은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오히려 사회 전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조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안데르센의 낙관론을 경계한다. 그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에서는 한 순진한 어린이의 발언으로 사람들이 사기꾼의 농간을 깨닫지만 현실에선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수의 횡포도 주로 공권력 행사를 통해 그 해악이 처음 목격되었으며, 지금도 다르지 않다…정치 권력자들의 횡포를 방지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널리 통용되는 의견이나 감정이 부리는 횡포, 그리고 사회가 통설과 다른 생각과 습관을 지닌 이견 제시자들에게 법률적 제재 이외의 방법으로 윽박지르면서 통설을 행동지침으로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경향에 대해서도 대비해야 한다.”

 
이 책에 인용된 존 스튜어트 밀의 말이다. 우리 사회에서 의미심장하게 읽히는 대목 아닌가.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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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필진

[김성희의 천일서화] 책생책사(冊生冊死). 책을 읽고 기자를 꿈꿨고, 출판팀장으로 기자 생활을 마무리했다. 닥치는 대로 읽었지만 핵심은 ‘재미’였다. 공연히 무게 잡는 책은 싫기도 하고 읽어낼 깜냥도 못 되었으니. 이 경험을 바탕으로 ‘재미있는 책’ 이야기 또는 재미있는 ‘책 이야기’를 쓰려 한다. 실타래가 풀려나가는 듯한 아라비안나이트식 책 이야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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