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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이 영웅이냐"…말레이시아서 일본군 위령비 역풍

중앙일보 2019.04.01 13:00
말레이시아 크다주 주도 알로르스타르의 크다강 인근에 세워진 일본군 위령비 펜스에 비석 철거를 요구하는 현지 화교의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말레이시아화교연합회(MCA) 페이스북 캡처]

말레이시아 크다주 주도 알로르스타르의 크다강 인근에 세워진 일본군 위령비 펜스에 비석 철거를 요구하는 현지 화교의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말레이시아화교연합회(MCA) 페이스북 캡처]

 “일본군은 침략자들이다. 전범이 ‘영웅’이냐?”
말레이시아 북부 크다주(州) 주도인 알로르스타르에 세워진 일본군 위령비가 현지 주민들의 강력한 반발을 사고 있다. 현지 정부가 위령비 앞에 세운 철제 안내판에 전사한 일본군 병사들을 ‘영웅’으로 기록했기 때문이다. 안내판은 논란 끝에 철거됐지만, 지역 주민들은 위령비 자체의 철거를 요구하고 있다고 아사히신문이 1일 보도했다.

일본이 비용 대고 현지 정부가 재건
'영웅' 표기 안내판 논란 불러 철거
희생자 많았던 화교들 거부감 커
위령비도 철거하라 반발 계속돼

 
당초 위령비는 전쟁이 한창이던 1941년 세워졌다. 연합군을 오토바이로 자폭 공격하려다가 폭발물이 일찍 터져 숨진 일본군 3명을 기리기 위해서였다. 전후 위령비는 파손된 채 방치됐다. 그러다가 최근 페낭의 일본총영사관이 주정부에 재건을 부탁했다. 비용은 일본 측이 전액 부담하기로 했다.  
 
말레이시아 크다주 주도 알로르스타르의 크다강 인근에 세워진 일본군 위령비 앞에 설치됐던 안내판을 크다주 관계자들이 철거하고 있다. 안내판은 일본군 전사자를 '영웅'으로 기록해 주민들의 반발을 샀다. [FMT뉴스 캡처]

말레이시아 크다주 주도 알로르스타르의 크다강 인근에 세워진 일본군 위령비 앞에 설치됐던 안내판을 크다주 관계자들이 철거하고 있다. 안내판은 일본군 전사자를 '영웅'으로 기록해 주민들의 반발을 샀다. [FMT뉴스 캡처]

위령비가 다시 세워지고 비석 앞에 현지어는 물론 영문과 중문으로 설명된 안내판이 세워졌다. 전사자들을 “알로르스타르를 정복한 일본 영웅들”로 적은 안내판이었다. 
지난달 21일 낙성식 이후 ‘영웅’ 안내판 설치 사실을 알게 된 현지 주민들은 경악했다. 특히 전쟁 당시 희생자가 많았던 화교의 분노가 컸다. 전시 일본군은 중국군을 돕는다는 이유로 싱가포르에서만 최소 2만4000여 명의 화교를 살해한 것으로 추산된다. 
현지 언론들도 “침략군이 어떻게 영웅이 될 수 있냐”며 연일 비판 보도를 냈다. 비난이 커지자 안내판 문구를 고안했던 역사협회 크다지부 측은 “위령비를 역사관광의 명소로 삼아 일본인 관광객을 유치하고 싶었다”고 해명했다. 결국 주정부 담당자는 사과하고, 안내판은 철거됐다.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가운데)가 삼남인 무크리즈 크다주 주지사와 함께 지난해 12월 29일 열린 집권당 전당대회에 참석했다. [AP=연합뉴스]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가운데)가 삼남인 무크리즈 크다주 주지사와 함께 지난해 12월 29일 열린 집권당 전당대회에 참석했다. [AP=연합뉴스]

그러나 화교를 비롯한 주민의 화는 삭지 않는 분위기다. 위령비 자체를 철거하라며 연일 주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림쉐복 말레이시아화교연합회(MCA) 청년회장은 현지 언론인 뉴스트레이츠타임즈와 인터뷰에서 “살인자인 일본군 병사를 기리는 것보다 무고한 희생자들을 추도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본 측은 안내판 문구를 몰랐다고 주장했다. 아사히에 따르면 현지 일본대사관은 “(크다)주정부와 함께 냉정하게 대응해 나가고 싶다”는 입장만 밝혔다.  
크다주는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의 삼남인 무크리즈가 주지사로 있는 곳이다. 현지에선 “일본과 연계가 강한 마하티르 총리 일가가 과도한 친일 행위를 하는 것 아니냐”는 비난도 나오고 있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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