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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사 신화’ 박종환 “판교에 헝그리 정신이 없다”

중앙일보 2019.04.01 05:00 경제 3면 지면보기
‘연쇄창업자’ 박종환 대표가 본 판교 스타트업 생태계
박종환 김기사컴퍼니 공동대표는 국내에 대표적인 '연쇄창업자'다. 박민제 기자

박종환 김기사컴퍼니 공동대표는 국내에 대표적인 '연쇄창업자'다. 박민제 기자

 
창업이 직업인 사람들이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식 표현을 빌리자면 '연쇄 창업자(Serial Entrepreneur)'다. 스타트업을 키우고 판 뒤 번 돈으로 재창업에 나선 사람들을 말한다.

[한국의 실리콘밸리, 판교]
자기 돈 쓰려는 창업자 드물어
투자금·정부지원 떨어지면 당황

독기 가지고 해도 될까말까 한데
요즘 너무 편히 스타트업 하려해
창업 전 4, 5년은 남의밑 있어봐야

 
박종환(47) 김기사컴퍼니 공동대표는 이른바 ‘잭팟’을 경험한 연쇄창업자다. 그는 2010년 자본금 1억5000만원으로 공동창업한 '록앤올'을 2015년 카카오에 626억원에 팔았다. 이후 박 대표는 다음 스타트업으로 '김기사컴퍼니'를 창업했다. 공유 오피스 ‘워크앤올’을 운영하면서 스타트업의 육성·성장을 돕는 액셀러레이터 일을 하고 있다. 지난 25일 경기 성남시 판교역 앞 워크앤올 사무실에서 만난 박 대표는 판교 스타트업계에 대해 “헝그리 정신이 사라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남의 돈만 쓰려는 스타트업 
 
뭐가 문제인가.
“요즘 스타트업 대표들 만나보면 자기 돈 쓰려는 사람이 별로 없다. 투자금이나, 정부 지원금이 떨어지면 엄청 당황해한다. 물어보면 자본금 1000만원 중 자기 돈은 500만원이라 한다. 더 없냐고 하면 나도 먹고 살아야 하니 더 쓸 수가 없다고 답한다.”
 
남의 돈만으로 스타트업 운영이 가능한가.
“확실히 예전보다 돈이 많이 돌고 있다. 정부 지원금도 많고 민간 투자도 몰리고 있다. 그건 긍정적인 일이다. 하지만 사업은 내 돈이 들어가야 절실해진다. 물러날 데가 없어야 ‘존버’(끝까지 버틴다는 뜻의 은어)할 수 있다. 난 김기사 만들면서 20억원 가량 빚을 졌었다. 벼랑 끝에 선 기분으로 버텼다. 조심스러운 얘기지만 독기를 가지고 해도 될까 말까 하는 일을 요즘엔 너무 편하게 하려 한다.”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다단계 회사 쓰던 사무실서 창업 
위치기반 서비스 개발회사 '포인트 아이' 창업 맴버였던 박 대표는 회사가 2010년 우회상장을 하면서 나오게 됐다. 함께 나온 김원태ㆍ신명진 대표와 함께 록앤올을 창업했다. 그리고 이듬해 ‘국민내비’로 불렸던 김기사 내비게이션을 출시했다.
 
어디서 시작했나.
“당시 IT(정보기술)기업의 성지로 불렸던 강남 테헤란로에서 시작했다. 방 구하는거 부터 어려웠다. 임대료가 너무 비쌌고 건물주들이 방세 떼 먹을가봐 우리 같은 신생 벤처를 잘 받지 않으려 했다. 간신히 20평짜리 오피스텔을 구해 들어갔더니 이전에 다단계회사가 쓰던 곳이었다. 대박낸다는 플래카드 같은게 붙여져 있어 기분이 묘하더라. 우리 건물 옆에 네이버, 엔씨소프트, 넥슨, 티몬, 카카오 그런 회사들이 즐비했다. 테헤란로는 지금의 판교 같은 곳이었다.”
 
마이너스 통장, 용역 알바로 월급 줘
어려움이 많았을거 같다.
“자금이 부족해 힘들었다. 대표들이야 월급 못 받아도 어쩔 수 없지만, 우릴 믿고 따라온 엔지니어들 월급은 어떻게든 줘야할 거 아닌가. 사무실 임대료가 싼 편이라 해도 관리비 포함해 매달 300만원이 나갔다. 마이너스 통장까지 만들어 버텼지만 6개월만에 돈이 다 떨어졌다. 기술보증기금 등에서 대출 받고 그래도 부족한 건 다른 IT회사 용역일로 ‘알바’를 뛰었다.”
2011년 선 보인 김기사 내비게이션 화면. [사진 김기사 컴퍼니]

2011년 선 보인 김기사 내비게이션 화면. [사진 김기사 컴퍼니]

 
김기사 출시 당일 동일본 대지진 
2011년 3월 록앤올은 김기사 내비게이션을 출시했다. 공교롭게도 출시 당일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다. 앱스토어에 올라간 김기사의 첫날 다운로드 건수는 가족과 지인을 포함해 수십명 수준에 그쳤다.
 
걱정이 많았겠다.
“소주 많이 마셨다. 한달이 지나도 다운로드가 700여명 밖에 되지 않았다. 내가 잘 한다고 성공하는 건 아니구나, 환경도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 많이 했다. 한 두달 버티다 보니 점점 입소문이 났다. 피처폰 내비게이션을 스마트폰에 이식했던 다른 회사와는 달리 스마트폰에 최적화 돼 있어 반응이 좋았다. 가볍고 빨랐다. 소셜 기능까지 덧붙이자 점점 이용자가 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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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출은 어땠나.
“계속 어려웠다. 한달 무료 사용 후 유료 전환율이 5%가 안됐다. 결국 무료로 풀었다. 먹고 살 길이 막막했다. 그러던 중 구글이 2013년 웨이즈라는 이스라엘 내비게이션 스타트업을 13억 달러에 인수했다. 모빌리티 빅데이터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면서 우리도 투자를 받을 수 있었다. 데이터가 돈이 되는 시대가 온 덕분이다.”
 
샐러리맨 월급으론 평생 불가능한 소득 
카카오는 2015년 626억원에 록앤올을 인수했다. 당시 가입자는 1000만 명이 넘었고 월 평균 이용자는 200만 명에 달했다. 인수합병 후속 작업을 위해 2년간 카카오에 몸 담았던 박 대표는 지난해 다시 회사를 차렸다.
 
돈 많이 벌었을 거 같다.
“고향 내려가면 친구들은 내가 그 돈을 다 받은 줄 안다. 아니다. 절반은 투자자들에게 돌아갔고, 공동창업자와 직원들까지 다 쪼개서 나누니 생각보단 많진 않다. 그래도 샐러리맨 월급으론 평생 벌어도 불가능한 돈이긴 하다. 그런 맛에 벤처하는거 아닌가.”
 
안정 찾을 시기에 다시 창업한 이유는.
“처음엔 따박 따박 월급 나오는게 너무 좋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좀 갑갑했다. 20년간 하고 싶은 일만 하다 남이 시키는 일만 하려니 어려웠다. 대초원을 마음껏 뛰어놀던 얼룩말이 동물원에 들어간 느낌이랄까. 그래서 창업했다.”
 
"판교는 스타트업에 너무 비싼 도시" 
한국엔 연쇄 창업자가 많지 않다.  
“한번 망하면 재기하기가 어려워서다. 신용 불량자가 되면 재기를 할래도 할 수가 없다. 요즘엔 재기펀드도 많이 생겼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여전히 어렵다.”
요즘엔 대학생 창업자도 많다.
“20살에 결혼하는게 좋,냐 30살에 하는게 좋냐의 문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대학 졸업 후 바로 창업은 위험이 크다고 본다. 최고경영자(CEO)로서의 역량은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다. 단 4~5년이라도 누군가 밑에서 경험해보고 창업해도 늦지 않다. 한번 실패하면 다시 돌아오기 힘들어서다."
  
경기 성남시 판교에 위치한 공유오피스 워크앤올 로비. 박민제 기자

경기 성남시 판교에 위치한 공유오피스 워크앤올 로비. 박민제 기자

판교의 창업환경은 어떤가.
“사무실 임대료가 너무 비싸다. 스타트업 할 때 임대료가 가장 큰 부담인데 판교는 스타트업이 들어오기엔 너무 비싸다.스타트업 천국이라기 보단 대기업 중심 도시다. 역삼각형 생태계라 할까.내가 공유오피스를 시작 한 것도 그래서다.”  
판교=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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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제 박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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