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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의 시시각각] “나는 몰랐다” 새로운 문제의 씨앗

중앙일보 2019.04.01 00:05 종합 30면 지면보기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김의겸은 청와대에 숙제를 남기고 떠났다. 그의 사퇴에도 불구하고 ‘흑석동 부동산 투기 의혹’이 별로 해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본인의 말이 씨가 됐다. 그는 대변인으로서 마지막 공식 발언을 청와대 기자단의 카톡방에 쏟아 냈다.
 

김의겸이 청와대에 남긴 숙제들
진짜 몰랐다면 외압 있었다는 뜻
청와대·정부 안에 조력자 없었나

“떠나가는 마당이니 털어놓고 가겠습니다. ‘네 몰랐습니다.’ 아내가 저와 상의하지 않고 내린 결정이었습니다(29일).” 김 전 대변인은 ‘흑석 9구역 재개발’ 지역에 26억원짜리 상가 건물을 매입하면서 자신은 몰랐다고 했다. 그러나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종석 의원이 KB국민은행으로부터 제출받은 대출 자료에 따르면 김의겸과 그의 부인이 공동으로 담보를 제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의겸은 청와대 대변인으로서 근로 소득을, 퇴직한 부인은 교원 연금을 각각 담보잡혔다. 이 자료는 KB국민은행 성산동 지점이 2018년 7월 대출금 10억원을 내줄 때 두 사람을 모두 만나 대면 확인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해당 지점장이나 담당 은행원이 담보자 직접 확인 작업을 하지 않았다면 형사상 배임죄에 해당한다. 만일 은행 관계자가 배임죄로 고발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김의겸 당시 대변인을 면대면 접촉하지 않았다면 외압이 작용했다고 보는 게 합리적 추론이다. 이런 사정을 살피고 외압이 행사되지 않았다는 전제 하에 김의겸의 말로 다시 돌아가면 ‘몸은 부동산 대출 관계자를 만났지만 정신은 몰랐다’는 궤변에 이르게 된다.
 
사건이 처음 불거졌을 때 청와대 사람들의 제일 큰 걱정은 “만약 청와대 대변인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부동산 투자가 이뤄졌다는 논란이 확산될 경우”였다고 한다. 청와대의 신속한 김의겸 자르기는 위기관리 측면에서 손색이 없었다. 그렇지만 김의겸이 몰랐다는 부동산 매입 자금의 은행 대출 경위가 의문의 여지 없이 밝혀질 필요가 있다. 김의겸은 알았는가,몰랐는가? 은행 관계자와 만났는가,안 만났는가? 대출 외압이 없었는가,있었는가? 이 문제는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부동산 농단 의혹’ 논란의 향방을 가를 것이다.
 
청와대가 풀어야 할 더 큰 숙제가 있다. 이 정권의 대변인이 자기 월급의 대부분을 이자로 물면서까지 흑석동 재개발 상가를 매입할 때 누구의 도움을 받았겠는가하는 의구심이다. 만일 청와대 관련 부서나 국토교통부같은 정부 부처, 유관 지방자치단체에 포진한 공적 네트워크로부터 도움이 있었다면 이 정권은 큰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서민을 위해 부동산과 전쟁을 벌이는 정의의 정부가 자기들끼리는 부동산 정보와 금융 기법 등을 나누며 사익을 추구했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김의겸은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친척이 흑석동 매물을 소개했다. 별도의 정보를 다른 데서 취득하지 않았다(28일)”고 말했다. 사실이 그렇다면 이 정권이 문제될 일은 없다. 그러나 김의겸은 29일 ‘나는 몰랐다’고 말을 뒤집었다. 하룻만에 말을 바꾼 사람의 말을 다 믿긴 쉽지 않다. 그러니 김의겸 사건이 권력형 농단이 아니라는 증명은 청와대가 져야 할 부담이 되었다.
 
청와대가 종로구 옥인동에 살던 김의겸을 대변인이라는 이유로 옆 동네인 청운동 경호실 관사를 쓰게 한 것도 내부 규칙 위반이다. 전임 박수현 대변인은 거주지가 지방이기에 옷가방 두 개만 들고 들어가 혼자 관사 생활을 했다는 점으로 소명될 수 있겠다. 반면 김의겸은 아예 이사를 했다. 전세금에서 빠진 4억8000만원을 흑석동 투자의 종자돈으로 삼았다. 청와대가 김의겸의 부동산 투자금을 대준 셈인데 이런 특혜를 봐준 책임자가 누구인지도 밝혀져야 할 대목이다.
 
김의겸이 대변인 생활을 하면서 견지한 자세는 “보수 언론들이 만들어낸 논리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필자가 여기서 사용한 논리들은 보수 언론의 논리가 아니다. 좌우 진영 가릴 것 없이 모든 언론의 사명인 권력 감시자로서 구성된 논리다. 오해 없기를 바란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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