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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정부, KAL기 폭파범 김현희 대선 전 서울 이송 시도

중앙일보 2019.03.31 16:14
압송되는 KAL기 폭파범 김현희.

압송되는 KAL기 폭파범 김현희.

 
1987년 11월29일 북한이 일으킨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사건의 범인 김현희를 당시 전두환 정부가 대통령 선거 정국에 활용하려 했던 정황이 드러났다. 31일 기밀 해제된 30년 전 외교문서엔 폭파범 김현희를 당시 대선 전날인 12월15일까지 한국으로 이송하기 위해 한국 외교부가 벌였던 교섭 과정이 구체적으로 기술돼있다.  
 이 폭파사건으로 한국인 승객 93명과 외국인 승객 2명, 승무원 20명 등 115명 전원이 사망했다. 한국인 승객 대부분은 중동 근무를 마치고 귀국길에 올랐던 근로자들이었다. 이 사건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로 다음해 예정된 1988 서울 여름올림픽을 방해하려던 공작으로 드러났다.  

 외교부는 31일 관련 내용이 포함된 외교문서 1620권(25만여쪽)의 원문을 일반에 공개했다. 외교부는 매년 30년이 경과한 외교문서를 일반에 공개해왔다. 올해는 KAL기 폭파사건 및 서울올림픽 관련 외교문서가 포함됐다.  
 
미 NBC 뉴스와 인터뷰하는 김현희(오른쪽). 왼쪽 사진은 1988년 검찰 조사 당시 모습 [사진 NBC 캡처, 중앙포토]

미 NBC 뉴스와 인터뷰하는 김현희(오른쪽). 왼쪽 사진은 1988년 검찰 조사 당시 모습 [사진 NBC 캡처, 중앙포토]

 공개된 외교문서에 따르면 당시 한국 외교부는 김현희 신병 인도를 놓고 일본과 신경전을 벌였다. 김현희가 신분을 위장하면서 일본 여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김현희가 붙잡혀 있던 바레인에 전두환 정부는 박수길 당시 외교부 차관보를 특사로 파견한다. 박 차관보는 바레인 측과의 면담 뒤 정부에 “늦어도 (1987년 12월) 15일까지 (김현희가 한국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12일까지는 인도 통보를 받아야 한다”고 보고했다. 대통령 선거일이었던 16일 하루 전까지 김현희를 국내로 이송시키겠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부분이다. 박 차관보는 막판에 이송 일정이 연기되자 바레인 측에 “커다란 충격이다. 너무나 많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압박하기도 했다. 

 
KAL 858기 폭파범 김현희가 서울형사지법 합의 10부 심리로 대법정에서 첫 공판을 받기위해 법정에 들어가고 있다.

KAL 858기 폭파범 김현희가 서울형사지법 합의 10부 심리로 대법정에서 첫 공판을 받기위해 법정에 들어가고 있다.

 
공개된 외교문서에는 1988 서울올림픽과 관련해 남북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벌였던 신경전의 내막도 담겨있다.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IOC 위원장은 서울올림픽의 남북 분산개최를 한국 측에 제안했다. 그는 실제론 북한이 수용할 가능성을 낮게 봤지만 그럼에도 사회주의 국가들의 대회 참가 명분을 만들어낼 심산이었다는 게 새롭게 드러났다. 이 내용은 사마란치 위원장의 1984년 9월 방한 당시 내용을 기록한 외교문서에 명시됐다.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회장(오른쪽)과 피터 위버로드 LA올림픽 조직위원장.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회장(오른쪽)과 피터 위버로드 LA올림픽 조직위원장.

 
사마란치 위원장은 당시 한국 고위인사에게 ”북한은 결코 (분산개최) 제안을 수락 못할 것“이라며 ”한국은 ‘안된다’고 하지 말고 ‘IOC가 공식 제안해올 때 적극 검토해볼 용의가 있다’ 정도로만 답하면 된다”고 말했다고 외교문서엔 기록돼 있다. 사마란치 위원장은 이어 “사회주의 국가들이 (1984년) 로스앤젤레스 여름올림픽 보이콧 이후 서울 올림픽엔 오고 싶어하고, 올 준비를 하고 있는데, 단 한 가지 장애물이 북한”이라며 “그래서 한 가지 핑계를 찾고 있는데, 만약 북한이 종목 개최를 수락하지 않으면 (북한 탓으로 돌리고) 서울에 갈 구실이 된다”고 설명했다. 결과는 사마란치 위원장 예측대로였다. 북한은 IOC의 중재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서울올림픽은 사회주의 국가들도 포함한 160개국이 참여하면서 올림픽 사상 최대 규모로 진행됐다. 
 
 그러나 이번에 공개된 다른 외교문서에선 당시 정부가 장애인올림픽인 패럴림픽을 호주에 넘기려고 했던 정황도 드러났다. 1983년 초 호주가 한국 정부 측에 패럴림픽 개최 의사를 타진했고, 초기에 한국 정부는 시설 부족 등을 공식적 이유로 해서 호주에 개최권을 넘기려 했다고 외교문서에 적시돼있다. 그러나 정부 내부에서 장애인 인권 보호 등 국제 이미지를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해당 건은 재검토에 들어갔고, 약 1년 후에야 패럴림픽도 치르기로 최종 결정이 됐다.
 
조상호 대한체육회장과 박영수 서울시장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IOC위원장이 30일 88년 하계올림픽을 서울에서 개최한다는 약정서에 서명하고 있다.

조상호 대한체육회장과 박영수 서울시장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IOC위원장이 30일 88년 하계올림픽을 서울에서 개최한다는 약정서에 서명하고 있다.

 
또한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에 따르면 한국 정부가 당시 일본 왕세자였던 아키히토(明仁) 현 일왕의 방한을 당시 이원종 주일대사와 비공식적으로 논의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당시 한ㆍ일 양국은 노태우 대통령의 방일을 협의하던 중이었다.  
 
 전수진ㆍ이유정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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