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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빌려준 친구는 혼내지 말라" 투신 중학생이 남긴 이야기

중앙일보 2019.03.31 05:00
지난 25일 경북 포항의 한 중학교에서 도덕시간 자습을 하던 김모(15)군이 "선정적인 만화를 봤다"며 꾸지람을 듣고 투신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김군은 이날 1교시 국어시간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이 누구냐는 질문에 도덕선생님이라고 썼다. [사진 김군 유족]

지난 25일 경북 포항의 한 중학교에서 도덕시간 자습을 하던 김모(15)군이 "선정적인 만화를 봤다"며 꾸지람을 듣고 투신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김군은 이날 1교시 국어시간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이 누구냐는 질문에 도덕선생님이라고 썼다. [사진 김군 유족]

도덕 교사에게 “자습시간 성인물을 봤다”며 친구들 앞에서 혼났다가 “성인물이 아닌 소설책”이라고 항변한 뒤 학교 5층에서 투신한 김모(15)군 사건.  
 

포항 한 중학교서 투신한 김모(15)군 사건
댓글엔 "교사 잘못" vs "나약한 아이" 분분
유족 "아이 잘못 인정해, 탓하지 말아 달라"

이 사건을 다룬 지난 28일 중앙일보 기사(극단선택 중학생 친구들 쇼크···"체육 시간 혼자 놔둬 죄책감")에는 하루 동안 30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아이의 나약함이 문제”, “교사의 배려심이 부족해 빚은 참사” 등 의견이 분분했다.  
 
김군의 유족은 댓글을 본 뒤 “가족을 향한 어떤 비난이라도 받아들이겠지만, 잘못을 인정하고 친구를 혼내지 말라는 유서까지 남겨 놓은 아이를 탓하진 말아줬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김군은 지난 25일 오전 11시 30분쯤 포항 북구의 한 중학교 5층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포항북부경찰서에 따르면 김군은 이날 2교시 도덕 시간에 교사에게 “선정적인 만화책을 봤다”는 꾸지람을 들었다. 도덕 교사가 감기로 수업을 못 해 자습을 하던 중이었다. 김군은 “성인물이 아니라 여성의 그림이 담긴 서브컬처(비주류문화) 소설책”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도덕 교사는 “수영복을 입은 여자 사진은 뭐냐”고 했고, 주변 학생들이 웃었다. 
 
도덕 교사는 김군에게 벌로 20분 정도 얼차려를 줬다. 그리고 곧바로 이어진 체육 시간이 끝날 때쯤 김군은 운동장에 나가지 않고 혼자 남아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당시 중학교 폐쇄회로TV(CCTV)에는 김군이 4층 교실과 5층 복도를 오가며 투신을 고민한 흔적이 나온다. 김군의 도덕 교과서엔 “무시받았다. 살기 싫다. 내용은 확인도 안 하고”라는 유서 형태의 글이 적혀 있었다.  
 
김군의 어머니는 지난 28일 김군의 도덕교과서를 보다가 볼펜이 끊겨 잘 써지지 않았던 부분을 발견했다. 김군은 “내가 잘못한 건 맞지만, 친구들은 혼내지 마시고”라고 썼다. 김군의 아버지가 학교에 물으니 학교 측은 “김군이 책을 친구에게 빌려 읽은 것 같다. 도덕교사가 김군을 혼낸 뒤 수업 마칠 때쯤 책을 가져온 친구와 나중에 교무실에 오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김군의 아버지는 “아들이 책 주인을 혼내지 말라고 쓴 것 같다”며 “내성적인 성격이지만 배려할 줄 알았던 아이였는데 수치심을 이겨내지 못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한 교직원은 댓글을 통해 “단순히 나약함으로 보기는 어려운 문제”라고 의견을 냈다. 그는 “세대를 공감하지 못한 교사의 실수일 뿐”이라며 “요즘 아이들은 온갖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성향을 형성하는 과정이 빨라 성격이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지난 25일 오전 11시300분쯤 경북 포항의 한 중학교에서 김모(15)군이 투신을 하기 전에 고민하며 왔다갔다 하는 모습이 폐쇄회로TV(CCTV)에 찍혔다. [사진 김군 아버지]

지난 25일 오전 11시300분쯤 경북 포항의 한 중학교에서 김모(15)군이 투신을 하기 전에 고민하며 왔다갔다 하는 모습이 폐쇄회로TV(CCTV)에 찍혔다. [사진 김군 아버지]

반면 “교사 잘못이 아니다”라는 주장도 있다. 교사가 학생에게 자살하라고 고의로 한 훈육은 아니라는 것이다. 대구의 한 초등학교 김모(33) 교사는 “물론 단계적으로 훈육해야 하는 게 맞지만 모든 학생에게 그렇게 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요즘 아이들은 성향이 제각각이어서 혹시 나쁜 생각을 할까 봐 훈육이 부담스럽다”고 했다.  
 
다만 네티즌들은 학교는 아이를 방조한 책임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날 김군은 2교시 도덕시간 후 3교시 체육시간에 참석하지 않고 4층 교실와 5층 복도를 홀로 배회했다. 45분간 교실에 들른 이는 없었다. 체육교사는 김군이 수업에 빠졌는지도 몰랐다.  
 
신명철 법무법인 금성 변호사는 “교사는 초·중등교육법 제20조에 따라 쉬는 시간까지도 학생을 보호·감독할 의무가 있다”며 “교사와 학교에 김군을 방치한 책임이 있기에 부모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포항=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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