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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리뷰] 일본에선 "대학 안 가?" 대신 "꿈이 뭐야?" 묻는다

중앙일보 2019.03.30 07:00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일본 쉐어하우스 리얼리티 쇼 '테라스하우스'. 테라스(照らす)는 일본어로 '빛을 비추다'라는 뜻이기도 하다. [사진 Netflix]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일본 쉐어하우스 리얼리티 쇼 '테라스하우스'. 테라스(照らす)는 일본어로 '빛을 비추다'라는 뜻이기도 하다. [사진 Netflix]

통신제 고등학교를 졸업 1년을 앞두고 모델 활동에 나서겠다는 여고생 리코, 소방관이 되겠다는 스무살 테츠야. 일본 리얼리티 쇼 <테라스하우스>에 출연하는 남녀 중엔 대학에 진학하지 않겠다는 멤버가 꽤 많은데요. 흥미로운 점은 다른 출연자들도 “대학은 안 가?” “그래도 나오는 게 좋지 않아?” 같은 질문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대신 “무엇이 되고 싶어? 꿈은 뭐야?”라고 묻죠.
 
한국 고교생 대학 진학률, 일본 1.8배
미용업에 열정을 가지고 있는 출연자 우치하라 타츠야. [사진 Netflix 캡쳐]

미용업에 열정을 가지고 있는 출연자 우치하라 타츠야. [사진 Netflix 캡쳐]

리얼리티 쇼니까 '연예인 되려는 사람들이 출연해서 그렇겠지?'라고들 생각하지만, 일본에선 대학 진학을 하지 않는 20대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OECD 통계(2015년 기준)를 봐도 한국은 고교생의 대학 진학률이 68%로 1위인데 비해, 일본은 37%로 OECD 평균(41%)보다 낮습니다. [1] 일본은 우리나라 못지않게 대학 입시가 치열하고, 학력 위주의 사회라더니 이게 어찌 된 일일까요? 
 
같은 학벌 사회는 맞지만
일본도 일류기업(대기업)은 학벌이 엄연히 존재하고, 고졸자가 대졸자보다 관리자로 승진하기도 어렵습니다. 다만 한국과 다른 점은 고졸자들에게도 다양한 취업 기회가 존재한다는 점인데요. 1990년대부터 고등학교에서 지역사회에 취업을 알선해주는 제도가 정착됐습니다. 일자리를 구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분위기라고 합니다. 문부성 발표에 따르면 고졸자의 내정률(취업률)이 90%를 넘깁니다. [2] 다만, 졸업 후 공백기를 두고 취업하면 현저하게 불리한데, 이건 대졸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졸(新卒)이 아닌 기졸(旣卒)이라고 해 따로 채용합니다. 
 
대학 졸업장 =자격증?
대졸자와 고졸자 간 대우나 월급 차이도 한국만큼 심하지는 않습니다. 일본 대기업의 대졸자 초봉이 한국보다 낮은 건 익히 알려져 있는데요. 일본의 최저임금은 시급 1000엔(만원 가량) 전후이다 보니 고졸자의 초봉이 또 그리 낮지가 않습니다. (다만 수입이 대폭 증가하는 50대가 되면 이 차이가 대졸자의 60% 정도로 꽤 벌어진다고 합니다.) [3] 이렇다 보니 일본의 고교생들은 “대학 졸업장은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괜찮지 않아?”라고 많이들 생각합니다. 대학이나 대학원 졸업장을 일컬어 그냥 ‘자격증’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데서 양국 간 인식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안 물어봄
이런 일이 드물다. [사진 Netflix 캡쳐]

이런 일이 드물다. [사진 Netflix 캡쳐]

<테라스하우스>에서처럼 일본 사회에선 스스로 "대학생입니다"라고 소개하지 않는 이상 "대학생? 어느 대학 다니냐?"고 묻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회사에서도 정말 옆자리 앉은 동료가 어느 대학 나왔는지 전혀 모르는 경우도 있다는데요. 단순히 학벌뿐만 아니라 결혼 여부, 자녀 유무 등을 굳이 캐묻지 않는 분위기라 엄연히 학벌이 존재하는데도 사회적 스트레스는 한국보다 적다는 게 일본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전언입니다. 
 
스스로는 "학벌 사회 타파해야" 
재밌는 점은 일본 문부과학성에선 지속해서 고졸자와 대졸자의 불합리한 차별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겁니다. 대졸자 선호 풍조는 단순히 학벌 차이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대학 등록금을 댈 수 있는 계급과 그렇지 못한 계급을 차별한다는 이유에서죠. 아무튼 사회적으로 대졸을 우대하는 분위기가 팽배한 점을 문제 삼고 꾸준히 보고서를 내고 있습니다. 2016년부터는 '대학교육 무상화' 정책을 검토해왔는데요. 일부에서는 "그 예산으로 고등교육의 질을 더욱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고졸 기술직, 꽤 괜찮은 대우   
일본인 지인 중 올해로 교량 건축 및 내구도 검사 업계에서 25년간 일한 사람이 있습니다. 대학은 나오지 않았지만, 1년에 두 번 나오는 보너스를 포함해 연 수입이 약 6800만원(680만엔) [4]입니다. 또 다른 34세 남성은 시계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시계 브랜드 회사의 기술공으로 근무하는데 연 수입이 4700만원이고요. 비교적 괜찮은 대우를 받을 수 있었던 건 기술직이기 때문인데요. 두 사람 다 "대학 졸업장을 받은 사람은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스스로 고졸이라는 이유만으로 부족하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했습니다. 일본의 고졸자들은 보통 사무직보다도 회사에서 다양한 기술을 배우며 ‘전문가’가 될 수 있는 취업처를 선호합니다. 한 분야에 오래 종사한 사람을 우대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강해 터무니없는 대우를 받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또 대대로 이어온 가업에 종사하는 비율도 높습니다.
 
남녀 차이는 존재
한국 고졸 남성은 취업 시 병역 의무 때문에 입사가 어렵다는 호소가 많은데요. 일본 고졸 남성의 경우 한국과 달리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기술을 배우다 낙오하거나 경력이 끊길 위험이 적습니다. 다만 여성의 경우, 체계가 잘 잡혀있는 대기업과는 달리 중소기업에선 중년 여성 상사가 거의 없어 롤모델이 부재합니다. 또 육아 휴직을 잘 쓰지 않는 분위기라 출산 후 중도 퇴사가 많습니다.    
 
조혜경 기자 wiselie@joongang.co.kr  
 
참고자료
[1] OECD, Education at a glance 
[2] 일본 문부과학성, 엑셀 자료에서 內定 섹션을 참고. 
[3] 주간동양경제 
[4] 연 수입 = 12개월 치 급료(월급)+1년에 두 번 나오는 보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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