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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 먹이는 의원, 아기 안은 의장… 세계 의회는 ‘베이비 붐’

중앙일보 2019.03.30 05:00
2017년 3월 호주 의회에서 라리사 워터스 호주 상원 의원이 모유수유를 하면서 발언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017년 3월 호주 의회에서 라리사 워터스 호주 상원 의원이 모유수유를 하면서 발언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세계 의회 역사상 최연소 출석자는 누굴까. 생후 10일에 미국 의회 문턱을 넘은 마일리 펄 볼스비다. 볼스비는 타미 덕워스 민주당 상원의원의 딸로 지난해 4월 상원이 1살 이하 영아의 의회 출입을 허용한 바로 다음 날 의회에 얼굴을 비쳤다. 
 

美상원도 지난해 4월 자녀동반 허용
이탈리아 의원, 딸과 3년간 유럽의회 참석
일본·덴마크 일부선 아기 입장 반대
“육아=여성일 못 박아선 안돼” 의견도

덕워스는 미 상원 역사상 임기 중 아이를 낳은 첫 의원이다. 그만큼 출산과 육아는 여성의원들에게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덕워스 의원은 관련 규정 개정을 요구하면서 “표결 참여나 아기 돌보는 것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고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기존 제도하에선 일과 가정 양립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이에 로이 블런트 상원 의사운영위원회 위원장은 “아이를 기르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며 의회가 부모의 일을 더 어렵게 해선 안 된다”며 영아의 의회 입장을 허용한 이유를 설명했다. 뉴욕타임스(NYT)는 “80대가 다수 있는 조직에서 이런 변화는 기념비적”이라고 평했다.
 
전세계적으로 정치인들이 자녀와 함께 의회에 출석하는 모습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2016년부터 영아의 의회출입을 허용한 호주에선 녹색당 소속 상원의원이 모유 수유를 하며 연설을 하기도 했다. 라리사 워터스 의원은 지난 2017년 학교 지원금에 관한 연설을 하면서 “너무 배고파했다”는 이유로 생후 3개월 된 딸 알리아 조이에게 수유를 했다. 그는 “직장에서 모유 수유하는 게 더 이상 뉴스가 돼선 안 된다”는 말도 남겼다. 또 크리스포터 파인 하원의원은 “누구든 아이를 돌본다는 이유로 의정활동에서 배제되어선 안 된다”며 일 가정 양립을 위한 자녀 동반출입 허용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트레버 맬러드 뉴질랜드 국회의장이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 [NZ Herald 캡쳐]

트레버 맬러드 뉴질랜드 국회의장이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 [NZ Herald 캡쳐]

2년 전 뉴질랜드에선 트레버 맬러드 국회의장이 아기를 안고 의사 진행하는 장면이 화제가 됐다. 맬러드 의장품에 안긴 아기는 동료의원인 윌로 진 프라임 의원의 딸 히니였다. 맬러드 의장은 “의원들에게 바람직한 예시를 보여주고 일하는 부모들을 지지하는 마음에서 아기를 안았다”고 설명했다. 뉴질랜드 저신다 아던 총리 역시 지난해 유엔총회에 생후 3개월 된 딸 니브와 함께 참석해 주목을 받았다. 당시 유엔은 니브에게 ‘뉴질랜드 퍼스트 베이비’라는 ID카드도 발급해 니브는 ‘퍼스트 베이비’라는 별명도 얻었다. 
 
3년간 딸과 함께 의회에 참석한 의원도 있다. 리치아 론줄리 이탈리아 소속 유럽의회 의원은 딸 빅토리아가 생후 6주였던 2010년부터 함께 의회에 출석했다. 덕분에 그의 유럽의회 의정활동 사진엔 빅토리아의 성장 과정이 고스란히 담겼다. 론줄리 의원은 “모든 여성이 육아와 일을 함께 할 수는 없다”며 “임신과 가사노동, 사회생활을 병행하는 여성들의 고충을 보여주기 위해 딸을 데리고 왔다”고 밝혔다.
리치아 론줄리 유럽의회의원의 딸 빅토리아의 성장과정을 엿볼 수 있는 2010년 9월 22일부터 2013년 11월 19일까지 촬영된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리치아 론줄리 유럽의회의원의 딸 빅토리아의 성장과정을 엿볼 수 있는 2010년 9월 22일부터 2013년 11월 19일까지 촬영된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이처럼 미국을 비롯한 국가들에서 정치인들이 자녀와 의회에 함께 들어올 수 있도록 한 이유는 육아 때문에 경력단절이 발생하는 걸 막고 일·가정 양립을 도모하기 위해서다. 가디언은 “말도 안 되는 논의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더 많은 여성을 국회로 끌어들이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모두가 어린아이의 의회 출입에 우호적인 건 아니다. 2017년 일본 구마모토(熊本) 시의회 오가타 유카(緒方夕佳) 의원은 아이를 맡길 곳이 없다는 이유로 7개월 된 아들과 함께 회의장에 들어섰지만 ‘당장 회의장에서 나가라’는 등 일부 의원들의 반발에 부딪혀 아기를 퇴장시킬 수밖에 없었다. 
 
덴마크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지난 19일 메테 아빌가드 보수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남편이 아이를 볼 수 없는 상황이어서 생후 5개월 된 자녀를 의회에 데리고 가자 피아 키에르스고르 의회의장이 의회에서 나가라고 지시했다”는 글을 올렸다. 덴마크는 공식적으론 영아의 의회출입을 허용하지 않지만 지금까지는 자연스럽게 허용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아이를 데리고 갔다는 게 아빌가드 의원의 설명이다. 이에 극우정당 출신인 키에르스고르 의장은 “의회엔 아이들이 아닌 의원이 있어야 한다”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다.
 
보수적인 의원들뿐 아니라 일부 페미니즘 단체에서도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지난 2016년 스페인의 카롤리나 베스칸사 포데모스 소속 의원이 의회에서 생후 5개월짜리 아들에게 모유 수유를 하자 페미니스트 단체 레드 페미니스타는 “베스칸사가 모성애를 전시 요소로 이용했다”고 비난했다. 또 진보여성연합(FPW)은 “이런 모습은 여성이 일할 때도 풀타임으로 아이를 돌봐야 한다는 비생산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며 “육아가 오로지 여성의 일이라는 인식을 못 박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지아 기자 kim.j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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