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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미세먼지도 결국 ‘각자도생’

중앙선데이 2019.03.30 00:20 629호 35면 지면보기
이소아 이노베이션랩 기자

이소아 이노베이션랩 기자

지인이 고열로 대학병원에 입원했는데 시간이 지나도록 병명을 모른다고 했다. 의사가 돌팔이 아니냐, 병원을 옮겨보자, 애가 타서 화가 났다. 다행히 열이 내리고 지인은 건강을 되찾았다. 알고 보니 병원은 여러 검사를 통해 ‘혈구탐식성 림프조직구증’이란 진단을 내린 뒤 적절한 치료를 해오고 있었다. 다만 워낙 위험하고 희귀한 병이라 환자와 가족들이 충격받지 않도록 병세가 잡힐 때까지 알리지 않았던 것이었다.
 
미세먼지 사태도 그러길 바랐다. 국민이 불안해할까 봐 공개하지 않았을 뿐 정부가 준비해 온 대책이 있는 줄 알았다. 한국은 선진국이고 이게 당장 1~2년 된 문제도 아니지 않나.
 
돌이켜보면 2016년 당시 청와대 고위 인사에게 미세먼지 대책이 시급하다고 읍소를 했었다. 시집갈 걱정이나 하라는 답이 왔었다. 2017년에도 모 국회의원에게 같은 건의를 했었다. “이 기자, 지금 우리가 그게 중요하게 생겼어?”(여야가 강 대 강 대치 중이었던 것 같다) 미세먼지 감소 공약을 내건 정부가 들어섰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삼일절 연휴 앞뒤로 우리는 초미세먼지 세계 1위를 찍어대는 끔찍한 기간을 보냈다. 매일 수백 개의 산발적인 아우성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왔다. 못 살겠으니 제발 어떻게든 해결해달라는 몸부림과 절규로 느껴졌다. 청와대와 정부는 그제서야 미세먼지를 ‘재난’이라며 입에 담기 시작했다.
 
한국의 미세먼지는 국내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중국 쪽이 변하지 않으면 늘 ‘매우나쁨’일 수밖에 없다. 지금쯤이면 수년에 걸쳐 모아둔 치밀한 과학적 증거와 분석치를 내밀며 국가 대 국가로, 국제사회와 공조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어야 한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정치권은 이 와중에도 현재와 과거 집권 세력들이 네 탓을 하고, 외교부 장관은 “한국 미세먼지가 중국으로도 간다”는 퍽이나 도움되는 얘길 하고 있다.
 
어린 시절, 한국전쟁을 겪은 외할머니가 “우리는 나라에 뭘 기대하면 안 돼. 각자 알아서 살아야 해”하는 소리가 참 듣기 싫었었다. 그런데 그 말이 맞았던가 싶다. 이제 한국인은 국토를 떠나지 않는 한 환자 또는 잠재적 환자가 됐다. 심각한 저출산의 원인 중 하나가 미세먼지라는 걸 정부는 알기나 할까. 정부를 믿어도 되는 걸까, 아니면 또 다시 각자도생을 해야 하는 걸까. 
 
이소아 이노베이션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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