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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행사 횡포에 우는 지역주택조합, 땅 확보 않고 추진도

중앙선데이 2019.03.30 00:02 629호 14면 지면보기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에서 아파트 개발을 진행 중인 수성범어지역주택조합은 최근 본연의 사업보다 소송 준비에 여념이 없다. 과거 ‘지역주택조합 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 시절 업무대행(시행대행)사와 분양대행 용역계약을 한 업체가 사업지 내 일부 토지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하며 법원에 부동산처분금지가처분 신청을 냈기 때문이다. 용역 업체는 당시 추진위원장 등이 작성한 확약서를 바탕으로 해당 토지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지만, 조합 측은 조합원 총회를 거치지 않은 만큼 효력이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무주택자 위한 제도 곳곳서 표류
관리·감독 규정 상대적으로 느슨
사업비·용역비 부풀리기 막아야

2005년 후 사업성공률 20% 그쳐
사업 지연에 소송전, 서민만 피해

최재환 조합장은 “법률 검토 결과 소유권 분쟁 자체는 큰 문제가 안 될 것 같다”며 “문제는 소송으로 사업이 지연되면 금융비용 상승 부담을 고스란히 조합원이 떠안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사업비 대출 이자 등으로 매달 15억원 정도를 물고 있다. 가처분 소송이 1년가량 이어진다면 예상치 못한 조합원 부담금이 180억원 늘어나는 셈이다. 관련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역주택조합 상당수가 이 같은 문제로 표류하고 있다”며 “사업이 늦어지면 결국 피해를 보는 건 내 집 마련에 나선 무주택 서민뿐”이라고 말했다.
 
 
조합원 간, 조합·대행사 간 잦은 마찰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무주택 서민의 내 집 마련을 위한 제도인 ‘지역주택조합 사업’이 곳곳에서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5년 이후 해마다 100여 곳, 6만여 가구의 지역주택조합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2017년에도 94곳(6만4015가구)이 사업을 본격화했다. 주변의 새 아파트보다 분양가가 10~30%가량 저렴한 데다 청약 경쟁을 피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서민 주택 확대를 위해 2013년 이후 관련 규제를 대거 푼 것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비슷한 사업인 재개발·재건축에 비해 관리·감독 규정이 상대적으로 느슨한 편이어서 조합원 간, 조합과 업무대행사 간 마찰이 잦다. 이에 따라 사업이 중단되거나 무산되는 곳이 많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15년까지 전국에서 추진된 지역주택조합 사업은 155곳, 7만5970가구에 이르지만 실제 완공해 입주한 곳은 34곳, 4058가구에 불과하다. 사업 성공률이 20% 정도에 불과한 셈이다.
 
업계에서는 지역주택조합 사업이 삐걱대는 요인으로 크게 두 가지를 꼽는다. 첫째는 업무대행사의 전횡이다. 주택 실수요자가 직접 아파트를 짓는 형태다 보니 개발 업무를 대신할 업무대행사가 필수적이다. 업무대행사는 아파트 개발 사업 경험이 있는 전문 시행사로, 사업 초기에는 사업지 확보와 조합원 모집을, 조합이 설립된 이후에는 본격적인 개발 업무를 맡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일부 업무대행사가 자신들을 관리·감독해야 할 추진위나 조합 집행부를 장악해 각종 비리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올해 1월 창원지방검찰청이 적발한 김해시 율하동의 이엘지역주택조합이 대표적 사례다. 창원지검에 따르면 이 조합의 업무대행사는 금액을 부풀려 조합원 모집용역계약을 하고, 불필요한 광고 용역계약을 해서 조합에 206억원 상당의 손해를 끼쳤다. 또 설계용역 계약도 부풀려 30억원의 손해를 가하기도 했다. 창원지검은 “이런 일이 가능한 건 업무대행사가 추진위·조합을 장악했기 때문”이라며 관련자 10여 명을 특가법상 업무상배임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땅 80% 동의만 얻으면 조합 설립 가능
 
다음으로 토지 확보다. 현행법상 사업지 내 토지 80%에 대한 사용동의(사용권원)만 얻으면 조합 설립이 가능하다. 땅을 전부 매입하지 않고도 조합을 만들 수 있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조합 설립 후 땅값이 뛰거나, 일부 토지주가 땅을 팔지 않겠다고 나서면 사업 자체가 흐지부지될 수 있다. 사업지 내 땅 95%를 매입하면 나머지 5%에 대해 매도청구소송이 가능하지만, 이 95%를 매입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어렵게 땅을 확보한다고 해도 땅값이 당초 예상보다 오르거나 매도청구소송으로 사업 기간이 길어지면 조합원 분양가가 뛰게 된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지역주택조합은 물론 어떤 주택 개발 사업이든 토지를 확보하지 못하면 사업 자체를 할 수 없다”며 “그런데도 지역주택조합 사업은 너무 쉽게 조합을 설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지난 15일 주택법 개정안을 의원입법 형태로 국회에 냈다. 개정안에 따르면 앞으로 사업지 내 토지 80%에 대한 사용동의는 물론 실제로 30% 이상 매입해야 조합을 설립할 수 있다. 조합에 대한 관리·감독도 강화했다. 조합은 계약금 등의 징수·보관·집행 등 모든 거래 행위에 대해 장부를 작성하고, 회계감사를 받아야 한다. 이를 어기면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개정안이 시행되면 무분별한 지역주택조합 사업이 줄어들어 사업 지연 문제나 조합 집행부의 부도덕성에 따른 서민 피해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개정안이 상반기 국회를 통과하면 공포 후 6개월 후인 올해 말쯤 시행될 전망이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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