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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소리꾼들 에너지 넘쳐나요

중앙일보 2019.03.29 00:05 종합 29면 지면보기
국립창극단 ‘패왕별희’에서 의상 디자인을 맡은 예진텐.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국립창극단 ‘패왕별희’에서 의상 디자인을 맡은 예진텐.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공연에서 의상은 연출자의 표현을 확장하는 수단이 됩니다. 극의 리듬에 맞춰야 하고, 배우들의 동작에 방해가 돼선 안 되지요.”
 

창극 ‘패왕별희’ 의상 맡은 예진텐
‘와호장룡’으로 아카데미상 받아
소리에 방해 안되게 옷 무게 줄여
중국 전통옷에 한복 요소도 가미

영화 ‘와호장룡’으로 2001년 아카데미 미술상을 받은 예진텐(52·Tim Yip)은 “의상에 따라 관객이 받아들이는 극의 메시지가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음달 5~14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 극장에서 공연하는 국립창극단의 신작 ‘패왕별희’에 의상 디자이너로 참여한다. 최종 피팅 작업 차 방한한 그를 28일 만났다. 지난해 10월 이 창극에 합류한 이후 네 번째 방한이다.
 
창극 ‘패왕별희’는 중국의 대표적인 경극 레퍼토리 ‘패왕별희’가 원작이다. 춘추전국시대 초한 전쟁을 배경으로 초패왕 항우와 그의 연인 우희의 사랑 이야기를 펼친다. 대만의 경극 배우이자 연출가인 우싱궈가 연출을 맡았고, 우싱궈의 부인인 린슈웨이가 극본과 안무를 담당했다. 예진텐은 “창극 ‘패왕별희’는 연인의 관계에 초점을 맞췄던 영화 ‘패왕별희’보다 원전에 훨씬 충실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그가 스케치한 창극의 우희 의상이다. [사진 팀 입 스튜디오]

그가 스케치한 창극의 우희 의상이다. [사진 팀 입 스튜디오]

우싱궈에 대한 그의 신뢰는 깊었다. 그는 “경극을 다른 콘텐트로 만드는 데 가장 적합한 연출자”라며 “오랫동안 경극 배우로 활동해 경극에 대한 이해가 깊다. 경극의 이야기를 시적·드라마적인 현대예술로 풀어내는 데 탁월하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영화 ‘라스트 템테이션’(1993)에서 처음으로 함께 작업했다. 장검을 휘두르는 우싱궈의 연기를 일찍이 연극 영상으로 접하고 감동을 받았던 예진텐이 주연 배우를 찾는 ‘라스트 템테이션’ 나탁요 감독에게 우싱궈를 추천한 것이다. 이후 예진텐은 우싱궈가 창단한 극단인 대만 당대전기극장과 ‘메디아’ ‘리어왕’ ‘템페스트’ 등을 함께 만들었다. 그는 “우싱궈의 전통과 나의 아방가르드한 요소가 결합해 획기적인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홍콩 폴리테크닉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한 예진텐은 1986년 영화 ‘영웅본색’을 시작으로 영화·드라마·연극·오페라·무용 등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의상 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다. 우싱궈뿐 아니라 로버트 윌슨, 아크람 칸, 린 화이민 등 세계적인 연출가·안무가 등과 협업작품도 여럿이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폐회식에선 차기 개최지인 베이징을 알리는 공연의 의상과 미술 감독을 맡기도 했다.
 
창극 ‘패왕별희’에서 그가 보여주는 의상은 전통 경극의 상징성에 충실하다. 항우의 의상 뒤에 달린 깃발 개수로 군사 수를 나타내는 경극의 규칙을 따르는 식이다.  
 
남성배우 김준수가 연기하는 우희의 의상에는 여러 의미를 담았다. “여장 남성 경극 배우 매란방이 연상되도록 생전의 매란방이 즐겨입었던 치파오의 분위기를 냈고, 한복에서 영감을 받아 상의를 짧게 했다”는 것이다. 또 “창극 배우들이 소리를 잘 낼 수 있도록 의상의 소재를 중간에 수정해 무게를 줄였고 가슴·배 부분에 공간의 여유를 뒀다”고 설명했다.
 
이번 작품에 참여하며 창극을 처음 접한 그는 “창극의 가장 큰 특징은 ‘에너지’인 것 같다”고 짚었다. “특히 여성이 슬퍼 우는 장면에서 흐느껴 울지 않고 파워풀하게 소리를 내지르며 에너지를 뿜어내는 것이 인상적”이라며 “경극과 창극, 아시아의 두 예술이 합쳐져서 뭔가 새로운 것이 나올 것 같다”고 기대했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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