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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커버 스토리 평양 리포트] 대북 경제제재의 향배와 북한의 선택

중앙일보 2019.03.28 10:00
미국 봉쇄로 北 원유공급과 외화벌이 치명타
北, 비핵화 대가로 경제위기 해소 우선 전략으로 선회
 
하노이 회담 결렬 직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은 제재 완화를 요구했지만 우리가 원했던 것을 주지 못했다“라고 강조했다. / 사진:연합뉴스

하노이 회담 결렬 직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은 제재 완화를 요구했지만 우리가 원했던 것을 주지 못했다“라고 강조했다. / 사진:연합뉴스


베트남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양측 간 진실게임이 전개되고 있다.
 
핵심은 두 가지다. 비핵화와 대북제재 해제의 범위 여부였다. 이 중에서 해제 범위를 둘러싸고 북·미 양측 간에 ‘네 탓 공방’이 치열하다. 결렬의 책임 소재를 가리는 사안이다. 양측이 회담이 틀어진 당일 심야에 반박과 재반박의 격렬한 대언론 심리전을 전개했던 주제도 북한이 요구한 대북제재 해제의 범위였다.
 
‘어느 쪽에 협상 결렬의 책임이 있느냐’는 기자 질문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은 대북제재 해제를 원했고, 우리는 북한 핵시설의 큰 부분에 대한 폐기를 원했다. 우리가 대북제재를 해줄 수 없다”라고 밝혔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우리는 실현 가능한 제안을 했다. 모든 제재를 없애달라고 하지 않았고, 부분적 제재를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협상 결렬 뒤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모든 제재의 해제를 요구했다 (Basically, they wanted the sanctions lifted in their entirety)”고 밝힌 것과 배치된다.
 
이에 리 외무상은 이렇게 밝혔다. “미국이 유엔 제재의 일부, 즉 민수경제와 특히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의 제재를 해제하면, 우리는 영변지구의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포함한 모든 핵물질 생산시설들을 미국 전문가들의 입회하에 두 나라 기술자들의 공동 작업으로 영구적으로 완전히 폐기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요구한 것은 전면적인 제재 해제가 아니라 일부 해제, 구체적으로는 유엔 제재 결의 총 11건 가운데서 2016~2017년까지 채택된 5건, 그중에서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들만 먼저 해제하라는 것이다.”
 
미국 국무부 고위당국자는 3월 1일 북한이 영변 핵시설의 폐기에 대한 상응 조치로 요구한 것은 무기에 대한 제재를 제외한 사실상 모든 제재에 대한 해제였다며 북한의 ‘일부 해제’ 요구 주장을 ‘말장난(I think they’re parsing words)’이라고 규정하는 등 정면 반박에 나섰다. 제재의 범위를 둘러싼 ‘전면’과 ‘부분’의 공방이 말장난인지 속사정을 파악해보자.
 
북한의 심야 기자회견은 역설적으로 유엔 대북제재가 북한 인민경제에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방증한다.
 
김 위원장 입장에서는 핵무기 증강보다도 우선 제재를 해제시켜야 생존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고받았을 것이다. 대북제재 완화 없이는 집권 10년을 기약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김 위원장이 스위스 유학 시절 마트에 가득한 물자를 보다가 평양 백화점의 빈약한 진열대를 보고 ‘왜 조국은 이렇게 가난한가’라고 한탄과 한숨을 지었다는 일화는 청소년 시절 김정은을 지켜본 일본인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의 [김정일의 요리사]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평양이 직면한 빈곤과 가난의 원인 중 하나는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라는 것을 김정은은 집권 8년 만에 파악한 것이다.
 
 
북한의 제재 일부 해제 주장은 말장난인가?
리용호 북한 외무상(오른쪽)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3월 1일 새벽 하노이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북·미 협상 결렬이 미국 탓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리용호 북한 외무상(오른쪽)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3월 1일 새벽 하노이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북·미 협상 결렬이 미국 탓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제재는 크게 유엔 안보리가 채택하는 제재와 미국 행정부가 미국법에 근거하여 발동하는 두 종류로 구분된다. 미국의 대북제재는 ‘의회 입법을 통한 법령 제정’과 관련 법령에 의해 위임 받은 권한에 따라 대통령이 필요한 조치를 내리는 ‘행정명령(executive order)’의 두 종류가 있다.
 
먼저, 미국 대북제재의 역사와 효과를 살펴보자. 미국의 대북제재는 6·25 전쟁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북한은 1950년 6월 25일 남침 직후 미국으로부터 적성국으로 지정돼 재무부 및 상무부로부터 금융 및 무역거래가 중지됐다. 1987년 11월 KAL기 폭파사건으로 이듬해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돼 20년 동안 각종 제재를 받았다. 미국 부시 행정부는 2008년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11월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사망과 김정남 암살의 배후 등의 이유로 9년 만에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했다. 이후 미국 재무부·상무부 등 행정부서에서 연속적으로 대북제재 관련 행정조치를 발동해 경제봉쇄(an economic blockade) 수준의 압박을 가하고 있다. 역대 미국 행정부의 대북제재는 470여 건이다. 이 중 절반이 넘는 240건이 트럼프 행정부에서 이뤄졌다. 최고 수준의 대북제재가 북한을 협상장에 나오게 했다는 트럼프의 주장이 허구가 아님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모든 제재는 상호연계돼 촘촘한 저인망 그물을 쳐놓은 격이다.
  
다음은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재 해제를 요청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실태를 파악해보자. 안보리는 1993년 3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 후 지금까지 모두 11건의 대북제재를 결의했다. 이 중 6건이 2016~2017년 결의됐고 무기 거래와 관련된 특정 기관과 개인을 제재한 2017년 6월 제재를 뺀 나머지가 리용호가 심야 기자회견에서 밝힌 ‘5건의 유엔 제재’로 보인다.
  
주목할 건 2016년을 전후로 유엔 제재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달라진다는 점이다. 2016년 이전 제재는 대부분 미사일 부품 등 군수용품 및 사치품을 제한하는 부분적 비경제제재였다. 하지만 북핵·미사일 실험이 국제 이슈가 된 2016년 이후 제재는 북한의 ‘돈줄’을 죄는 경제제재였다.
 
 
유엔 제재, 북한 돈줄의 95%를 차단
북한에 원유 공급을 대폭 줄이는 내용 등을 포함한 대북제재결의 2397호가 2017년 12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 사진:연합뉴스

북한에 원유 공급을 대폭 줄이는 내용 등을 포함한 대북제재결의 2397호가 2017년 12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 사진:연합뉴스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은 2006년 7월 채택된 1695호가 원조다. 북한 핵과 미사일, 대량살상무기(WMD) 개발 금지와 관련 자금 동결, 기술이전 금지 등을 권고했다. 그해 10월 발표된 결의안 1718호에선 대북제재 이행 및 제재위원회 구성을 결정했다. 북한을 향해 군사적 도발을 자제하라고 촉구하는 권고 수준이었다.
 
결의안이 북한 경제의 목줄을 확실하게 조이는 계기는 2016년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이었다. 목표물이 북한의 궁정경제는 물론 민수경제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안보리는 2016년 3월 북한의 4차 핵실험과 로켓발사에 대응한 새 대북제재 결의 2270호를 15개 이사국 만장일치로 공식 채택했다. 북한이 1월 6일 4차 핵실험을 한 지 57일 만이다. 기존 결의들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제재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면, 2270호는 주요 광물 수출 및 선박·항공기에 대한 제재, 대외 금융 억제 등 북한 경제에 타격을 미치는 조치를 담았다. 대다수 조항이 ‘권고(call upon)’를 넘어 ‘의무화(decide 또는 shall)’됐다.
  
서맨사 파워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20여 년 만의 가장 강력한 제재”라고 평가했다. 그해 9월 5차 핵실험에 따른 대북제재 결의안 2321호는 북한의 주요 수출품인 석탄 수출을 원천 봉쇄했다. 석탄 수출의 상한제(cap)를 도입해 북한 외화 수입에 연간 7억 달러 이상의 타격을 주고 있고, 북한 전체 수출액의 20% 감소 효과가 있다. 만수대창작사에서 아프리카와 일부 동남아 국가에서 주문하는 동상 조형물(statue)의 판매 금지로 1억 달러의 외화 수입이 차단됐다. 재외공관이 개설할 수 있는 금융계좌도 1개로 제한했다. ‘민생 목적(livelihood)은 예외’란 규정도 없앴다.
  
2017년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4개의 결의안이 쏟아졌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와 그해 9월 6차 핵실험 등 군사 도발이 최고조에 이른 시기였다. 화성 14호 미사일 발사 이후 2017년 8월 발표된 결의안 2371호에선 북한 외화벌이의 최대 효자로 손꼽히던 해산물 수출과 해외 노동자의 신규 송출을 원천 금지했다. 러시아·중국과 중동 지역에서 일하던 10만 명의 북한 근로자가 받았던 연간 3억 달러의 수익 감소가 예상된다. 그해 9월 통과된 결의안 2375호에선 처음으로 유류품 제재가 포함됐다. 원유와 정유제품 공급을 각각 연 400만 배럴, 200만 배럴로 동결했다. 북한의 ‘생명선’으로 인식되는 원유 공급을 연간 400만 배럴로 제한하자 북한 에너지 공급에 비상이 걸렸다.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와 미국은 북한이 해상에서 선박 간 이전 방식으로 원유나 정제유를 이전받는 방식으로 제재를 회피해 왔다고 지적한 바 있다. 화성 15호 발사 이후 2017년 12월 크리스마스 직전에 채택된 대북제재 결의안 2397호는 정유제품 공급량 상한선을 50만 배럴로 줄이고, 유엔 회원국의 대북 원유 공급량을 보고하도록 했다. 먼저 나가있던 해외 파견 노동자를 24개월 안에 송환하도록 결정했다. 식용품과 목재류, 선박, 농산품 수출도 금지했다.
  
마침내 북한이 제재로 고통을 겪고 있다는 고백이 북한 문건에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노동당 39호실 산하 경흥지도국 당위원장 리철호는 2017년 12월 북한 노동당 대내 기관지인 [근로자] 12월호에 ‘적대 세력들의 제재 책동을 물거품으로 만들기 위한 조직 정치 사업’이라는 기고문에서 제재로 인해 노동당 39호실의 외화벌이가 지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하고 유류 공급 제한으로 주유소를 폐쇄했다고 언급했다.
  
유엔과 미국의 대북제재로 북한 수출액이 12분의 1로 급감해 폭망 수준이라고 트럼프 대통령은 평가했다. 대외경제 정책연구원은 지난 2월 발표한 [대북 경제제재 분석 보고서]에서 “가장 마지막 제재인 2397호가 완전히 작동할 경우, 제재 이전보다 북한 수출액이 90% 이상 감소하게 된다”라고 전망했다. 수출 관련 제재가 본격 작동하면 50억 달러 내외로 추정되는 북한의 외화 보유고는 고갈될 수밖에 없다. 외화 부족은 물자 수입을 어렵게 해 북한 국내 소비와 생산을 마비시키는 악순환에 처하게 된다.
  
제재는 외화벌이 창구를 철저히 봉쇄함으로써 실제 북한 돈줄의 95%를 차단하는 효과를 냈다. 북한의 석탄·철광석·수산물 수출 금지로만 연간 10억 달러의 자금 차단 효과가 있을 것으로 유엔 관계자들은 추산했다. 10억 달러는 30억 달러로 추정되는 북한 연간 수출액의 3분의 1 규모다. 제재가 지속되면 2∼3년 내 외화보유고 고갈로 외환위기에 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탄광에 물이 차고 있다’
2012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공사장에서 작업하는 북한 노동자들.

2012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공사장에서 작업하는 북한 노동자들.

 
북한 경제는 4중(重) 경제라고 분석된다. 가장 비중이 큰 군수분야를 움직이는 제2경제는 약 35% 비중이다. 다음은 김 위원장 집권의 경제적 기반인 궁정경제(court economy)로 25% 수준이다. 셋째는 내각에서 추진하는 인민경제로 20% 내외다. 마지막으로 인민들의 삶의 터전인 장마당 경제는 20% 내외다. 제재로 가장 압박을 받는 부분이 궁정경제와 군수경제다.
 
각종 무역회사에서 벌어들이는 상납금, 해외 노동자 송금, 무기·마약·위폐 등의 수익, 2016년 2월 중단된 연 1억 달러 규모의 개성공단 수익, 2008년 7월 중단된 금강산 관광의 연간 수익 5000만 달러 등이 궁정경제의 재원이었다. 최소 10억 달러 규모의 궁정경제는 김정은 일가의 사치품 수입, 각종 기념일에 선물 살포 및 체제선전용 건설공사를 지탱하는 자금줄이다.
  
북한이 언급한 2016~2017년에 채택된 대북제재 결의는 새롭게 채택될 때마다 ‘역대 최강’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강도를 더해왔다. 북한 경제가 일련의 제재 결의로 상당한 내상을 입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는 북한의 핵실험이나 중장거리 위주의 탄도미사일 시험 때마다 채택돼 왔으며, 제재 대상을 넓히고 강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이뤄져 왔다. 그물망이 촘촘해짐으로써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에서 비핵화 대가로서 안보(security) 우려보다 경제 위기를 해소하는 제재해제를 우선적으로 요구하는 전략을 구사하기에 이르렀다.
  
유엔 대북제재는 괌에서 이륙하는 주한미군의 전략자산보다도 훨씬 평양 지도부를 아프게 압박했다. 2016년 이전 제재는 핵과 미사일 개발에 필요한 부품 조달을 차단하는 ‘직접제재’였다. 하지만 4차 핵실험 이후 2270호를 기점으로 돈줄을 잡아 경제를 옥죄는 방식의 ‘간접제재’에 집중됐다. 효과는 자금줄을 원천 차단하는 간접제재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하노이 회담은 간접제재의 성과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줬다. 사실 이전 북·미 회담에서 북한은 종전 선언 및 평화체제 등으로 주한미군 철수 등의 안보상 우려 해소가 우선이었다. 하지만 제재로 민생은 물론 평양의 궁정 경제조차 기반부터 흔들리고 있다.
  
북한 경제의 펀더멘탈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은 국내외 연구보고서 및 탈북자 증언에서 속속 확인되고 있다. 북한 경제의 주요 생산품인 석탄의 경우 ‘탄광에 물이 차고 있다’는 표현이 나올 만큼 산출량이 감소했다. 대북제재로 석탄 수출 길이 막히자 내부 전력 발전용으로 돌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북한 내 가격이 수출 시세의 10분의 1에 불과해 노동자들의 탄광 일거리가 없어지고 있다. 북한이 ‘산업의 쌀’로 선전하는 철강 생산도 중국산 코크스 수입이 중단되면서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 대북제재 대상인 의류와 수산물 수출이 막히면서 운송업 및 관련 도소매업체 역시 타격을 받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KDI)은 지난 2월 발간한 [북한경제리뷰]에서 “강화되는 대북제재로 인해 대중국 교역이 거의 붕괴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위축됐다”고 평가했다. 2014년 63억6000만 달러에 달했던 북·중 무역총액은 지난해 24억4000만 달러로 급감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역시 지난 2월 발행한 ‘비핵화에 따른 대북 경제제재 해제: 분석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대북제재가 무역과 외화 및 시장 가중치 부문에 각각 35%, 35%, 30%의 비중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제재 효과가 본격적으로 작동한 2017년 북한 경제성장률은 2016년 대비 3.5% 감소했다. 금년 6월 발표되는 지난해 경제성장률 역시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면적 제재로 북한 경제가 비틀거리고 있다는 진단이다.
 
 
‘세컨더리 보이콧’에 침몰한 이란경제
2019년 1월 이란 테헤란에서 모터쇼가 열렸지만 제재의 여파로 행사장은 텅 비었다. / 사진:연합뉴스

2019년 1월 이란 테헤란에서 모터쇼가 열렸지만 제재의 여파로 행사장은 텅 비었다. / 사진:연합뉴스

 
미국 경제제재의 전형적인 사례는 대(對)이란 제재다. 13년간 진행된 국제사회의 대이란 제재는 세계 석유 매장량 4위, 가스 매장량 2위인 이란 경제를 파국으로 몰고 갔다. 지하에 매장된 막대한 양의 에너지도 수출하지 못하니 무용지물에 불과했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지난 2월 11일 테헤란 아자디광장에서 열린 혁명 40주년 기념식에서 “미국은 공공의 적이다. 이란 국민들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서로 도우며 극복해낼 것”이라고 역설했다. 오바마 행정부가 2015년 영국·중국·프랑스·독일 및 러시아 등과 함께 체결한 이란 핵협상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파기됐다. 제재가 복원되면서 테헤란 경제에 다시 찬바람이 불고 있다.
 
이란은 미국의 이란 핵합의(포괄적공동행동계획, JCPOA) 탈퇴 및 제재 복원에 맞서 경제 활로를 모색하는데 분주하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는 이란 제재 복원 이후에도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핵개발을 위한 우라늄 농축과 핵재처리를 시도한 이란에 대한 유엔 안보리 제재는 2006년 결의안 1696호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2012년 결의안 2049호까지 7차례 채택됐다.
  
미국 의회는 2010년 이란과 거래하는 모든 나라를 경제보복으로 처벌할 것을 명령하는 내용의 ‘포괄적 이란제재법’을 통과시켰다. 미국의 대북제재에서 주목할 점은 제3자 제재(secondary boycott)다. 제재 대상자와 거래하는 제3국의 개인, 법인, 금융기관 역시 해당 제3자의 미국 내 자산 또는 권리를 동결하거나 박탈하는 등의 방식으로 제재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제3국이 섣불리 교역에 참여할 수 없다.
  
대이란 제재의 핵심은 이란경제의 생명줄인 원유 수출 차단이었다. 이란은 중국·인도·일본 및 한국 등 4개국에 대한 원유 수출이 어렵게 됐다. 그나마 오바마 행정부의 원유 수입 완화 조치로 수출이 이뤄졌으나 트럼프 행정부 들어 소량의 수출도 어려워졌다.
  
총 12년간의 경제제재 끝에 2015년 이란 정부는 비핵화 합의에 서명했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핵협상이 미흡하다는 유대인 사위 쿠슈너의 요청을 수용해 이란 제재를 복원했다. 미 재무부는 지난해 11월 이란 해커들의 범죄 수익을 가상통화에서 리알화로 교환하도록 도와준 이란인 2명의 전자지갑 계정을 제재 대상에 올렸다. 브라이언 훅 국무부 이란정책특별대표는 최근 일본 NHK 인터뷰에서 이란산 원유 수입과 관련해 한국·일본 등 8개국에 한시적으로 적용했던 제재 예외 조치를 연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향후 북한은 전면적인 제재에 맞설 것인지 혹은 미국의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라는 빅딜을 수용할 것인지 선택해야 할 것이다. 북한이 동창리 미사일 기지를 복구하는 등 군사적 도발로 제재에 맞서면서 경제적으로 ‘그럭저럭 버티기(muddle through)’ 시나리오 전략을 구사하려면 중국의 묵시적인 협력이 필수적이다. 북·중 밀무역은 대북제재의 구멍(loophole)이다.
 
 
북·중 밀무역, 대북제재의 구멍
북한의 고철을 실은 트럭이 신의주에서 단둥으로 연결된 조중우의교를 지나고 있다.

북한의 고철을 실은 트럭이 신의주에서 단둥으로 연결된 조중우의교를 지나고 있다.

 
북·중 국경도시 단둥은 30여 개의 밀무역 창구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단둥 세관을 통과한 ‘평북’ 번호판에 짐을 가득 실은 8t 트럭들이 조중우의교를 지나 신의주로 들어간다. 화물은 비닐로 덮여있어 무슨 제품이 실려있는지 외부에서 알기 어렵지만 정제유 등 수입 제한 품목들이 선적해 있다는 것은 단둥 시내 대북 소식통들에게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중국 대형 덤프트럭이 북한에 가서 철광석과 희토류 등을 싣고 나온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유엔 안보리 2371호 위반이다.
 
수산물 역시 수출 금지 품목이나 해상에서 배끼리 접촉해서 넘기는 ‘배치기 방식’으로 교역이 이뤄졌다. 단둥에서 만난 필자의 지인은 유엔 결의안 위반이라는 지적에 중국 속담을 인용했다. ‘상유정책(上有政策) 하유대책(下有對策)’이다. 중국과 같이 큰 나라에서 위에서 정한 대로 살다간 죽기 십상이라는 해설이다. 북·중 변경무역에 종사하는 양측 당사자만 1만여 명에 달하고 있으며 앉아서 굶어죽기보다 제재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항변한다.
  
특히 조선시대 이래로 단둥과 신의주는 압록강을 가운데 두고 공존하는 단일경제권이라는 설명이다. 지금은 단둥이 중국 10대 항구도시로 발전하고 있지만 지난 1950∼1960년 대는 신의주의 경제 지원과 교역에 의존하며 생존했다. 특히 대약진운동(1958~1960) 기간, 협동농장 시스템인 인민공사 체제와 문화대혁명(1966~1976) 등 중국의 격변시대에 단둥 사람들은 신의주의 물자교역과 지원에 절대적으로 의존했다고 단둥 조선족은 주장한다.
  
세컨더리 보이콧 조항 때문에 중국 당국이 각종 제재를 대놓고 위반하긴 어렵다. 3차례에 걸친 북·중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미·중 무역전쟁 상황에서 시진핑 주석이 트럼프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결정을 하진 않을 것이다.
 
 
김정은의 버티기 vs 미국의 최대압박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결의안 2371호에 반발한 북한 주민들이 2017년 8월 평양에서 열린 군중집회에 집결했다. / 사진:연합뉴스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결의안 2371호에 반발한 북한 주민들이 2017년 8월 평양에서 열린 군중집회에 집결했다. / 사진:연합뉴스

하노이 회담을 계기로 미국은 북한 정권의 아킬레스건을 확실히 간파했다. 10년 동안 고문변호사였던 마이크 코헨의 청문회로 곤욕을 치른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정치를 돌파하기 위해 배드 딜(bad deal)을 하기란 쉽지 않다.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나온 이유는 제재 해제 때문이라는 판단을 굳혔을 것이다. 미국이 북한의 완전한 진짜 비핵화를 수행하려면 제재 이외에는 수단이 없다는 인식은 이제 워싱턴의 조야를 막론하고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내년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을 위한 캠페인의 일환으로 북한 문제를 활용하려는 시도를 북한 외무성이 역이용하려는 평양의 전략 역시 수정돼야 한다. 미국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류(main stream)도 있지만 다른 버전의 주류도 있다는 사실을 북한이 제대로 인식했다면 하노이 회담의 값진 성과가 될 것이다. 앞으로 미국 지도자의 의사 결정 구조를 오판해 김정은에게 잘못된 보고서를 제출하는 참모진들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국내 일부에서 미국이 제재 완화 이후 북한이 비핵화를 하지 않을 땐 즉각 제재를 재개하는 ‘스냅백(snapback)’ 조치로 다시 협상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정상 간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빅딜을 시도했는데도 결렬이 된 마당에 설득력이 부족한 제안이다.
  
특히 전체 북한 핵의 3분의 1에 불과한 영변 핵시설만 가지고 대북제재를 완화하려는 북한의 협상 전략은 강선 등 영변 이외 지역에 대한 폐기 계획을 포함해 재편돼야 한다. 김정은은 왕복 130시간의 기차 여행 후 평양으로 귀환한 뒤 노동당 초급선전일꾼대회에서 자력갱생의 경제 메시지를 발표했다. 노동신문에서 뜻밖의 노딜(no deal) 하노이 협상 결과를 밝힌 만큼 중장기전으로 버티기 전략을 주문한 것이다.
  
향후 1차 싱가포르 회담 이후 8개월 만에 2차회담이 개최됐지만 이제 상대의 카드를 모두 확인한 만큼 1년 안에 빅딜 협상을 예견하는 것은 어렵다. 볼턴 백악관 안보 보좌관은 하노이에서 귀국한 직후인 3월 3일부터 ‘최대압박(maximum pressure)’을 연일 강조했다. 미국이 금년 안에 정책을 변경할 가능성이 적다는 신호다. 과거 베트남과 이란의 제재 집행에서 봤듯이 미국은 장기적인 제재를 끌고 가는데 이골이 나있다.
  
올해 36세인 김정은은 문재인, 시진핑 및 트럼프 등 정상과의 회담 과정에서 동북아 국제정치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절감했을 것이다. 참모진들의 보고서대로 회담이 진행되지 않는 것을 깨달은 만큼 전면적 제재를 감내할지 아니면 전면적 비핵화를 결심할 것인지, 면밀한 고뇌가 필요한 시점이다.
 
 
-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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