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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 헤쳐나갈 롤러코스터, 추리소설 세계로 출발~

중앙일보 2019.03.28 10:00
[더,오래] 이광현의 영어추리소설 문학관(1)

영어 추리소설을 즐겨 읽는 아름다운 인생학교 강사. 우리 모두는 '페르소나'를 쓴 이중적 인격의 소유자이다. 현대 사회가 설정한 패러다임에서는 누구나 가식적 가면을 하나씩 지닌 채로 본연의 나를 감추고 살아간다. 등장인물의 인간관계라는 드라마 속에서 빈틈없는 논리 전개와 극적인 반전을 구사하여 페르소나를 벗겨내고 '인간의 민낯'을 들춰내는 대표적 추리 소설 작품을 통해 인간 본래의 모습이 복원되는 사회를 꿈꾸어 본다. <편집자>

 
나에게도 30여년간 꾸준히 해온 일이 있다. 바로 '영어 소설 읽기'이다. [사진 이광현]

나에게도 30여년간 꾸준히 해온 일이 있다. 바로 '영어 소설 읽기'이다. [사진 이광현]

 
‘1만 시간의 법칙’이란 게 있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우리나라 속담의 서양식 버전이다. 어떤 일에 1만 시간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면 그 분야에 달인의 수준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1만 시간’을 구체적으로 가늠해 보자면 하루에 1시간씩 대략 30년, 3시간씩이면 10년 정도의 세월이다.
 
어느덧 내 나이가 50대 후반으로 접어들었다. 지난해 말 30여년간의 직장 생활을 마무리하고, ‘은퇴 생활’이라는 새로운 인생 2막을 맞이하게 되었다. 어느 날 아침 문득 ‘나는 과연 1만 시간의 법칙을 적용할 만한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왔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뜻 이렇다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그러다 불현듯 떠오르는 한 가지, ‘영어 소설 읽기’. 그래 나에게도 30여년간 꾸준히 해온 일이 있긴 있었네!
 
1985년 즈음이었다. 군에서 갓 제대를 하고, 대학 3학년에 복학했을 때였다. 친하게 지내던 동창 몇몇이 얘기를 나누던 중 ‘영어 소설 스터디를 같이해 보면 어떨까?’ 하는 의견이 나왔다. 모두 좋은 생각이라며 찬성했고 우리는 이를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일정한 분량의 영어 소설을 읽고 매주 한 번씩 모여 읽은 내용에 대해서 의견을 교환하는 영어 소설 동아리 모임이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을 처음 접하게 된 계기가 이 영어 소설 동아리를 통해서였다. 영어 사전을 열심히 찾아가면서 읽어나가는 재미가 꽤 쏠쏠했다. ‘한국 작가가 쓴 책은 한국어로, 영어권 작가가 쓴 책은 영어로 읽어야 제맛이 나는 거야’라고 하던 20대 철없던 시절의 현학적 태도가 지금 생각하면 낯 뜨겁고 우습기도 하지만 그땐 왠지 남들 앞에 으스대고 싶은 과시욕에 ‘부끄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영어 소설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건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역마살의 카르마가 있어서인지 해외 출장 업무가 많았다. 바쁠 때는 한 달에 1~2번씩 해외 출장을 다녔다.
 
장거리 이동의 무료함을 영어소설 읽기로 달래는 일은, 나에게 출장에 따른 업무의 긴장감을 풀어주는 단비 같은 존재이자 훌륭한 소일거리였다. 기내에서도, 호텔에서도, 업무가 일단락되는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영어 소설을 읽었다. 차츰 좋아하는 작가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아가사 크리스티를 시작으로 존 그리샴, 시드니 쉘든, 스티븐 킹, 니콜라스 스팍스, 더글러스 케네디…. 주로 추리, 스릴러, 로맨스를 다루는 소설을 차곡차곡 사 모아가며 읽었다. 지금까지 대략 500여권의 영어 소설을 읽은 것 같다.
 
영어 소설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건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해외 출장 업무가 많아 장기간 이동의 무료함을 영어 소설 읽기로 달랬다. [사진 이광현]

영어 소설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건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해외 출장 업무가 많아 장기간 이동의 무료함을 영어 소설 읽기로 달랬다. [사진 이광현]

 
20대 때의 다소 유치한 아집에서 비롯된 현학적 태도가 지금 생각해 보면 그리 부질없었던 것만은 아니었던 셈이다. 30여년간 이어온 취미인 영어 소설 읽기는 나 나름의 1만 시간의 법칙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달인의 수준에 도달했냐는 별개의 문제이긴 하지만.
 
“요즘엔 웬만한 영어 소설은 훌륭한 번역본이 나와 있는데, 굳이 왜 원서를 읽으세요? 딱히 영어 공부하는 것도 아니면서.” 가끔 이런 질문을 받곤 한다. “음, 글쎄요. 가령 예를 들어볼까요. 갯벌 냄새가 흠씬 배어있는 벌교 꼬막의 '짭조름한 맛'은 영어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Salty flavor, taste’? 한국의 토착적인 맛을 느끼기에는 뭔가 미각이 허전하지 않나요?”
 
그런 것이다. 한 언어 고유의 토박이 표현이 담고 있는 본질적 뉘앙스를 다른 언어로 전달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건 번역가의 실력과는 무관한 일이다. 인간의 오만함을 징벌하기 위해 바벨탑을 무너뜨린 신의 영역에 속하는 일이다. 영어도 마찬가지로 제 나름의 토박이 표현이 있는 것이다. 영미인이 느끼는 버터의 맛 ‘buttery’를 한국어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두 개의 언어를 안다는 것은, 두 개의 영혼을 소유하는 것과 같다.' 두 개의 언어를 이어주는 징검다리를 오가며, 두 곳의 영혼 세계를 자유로이 여행하는 즐거움, ‘영어 원서 읽기’를 통해서 누릴 수 있는 혜택이다. 비록 또 다른 영혼 세계가 다소 익숙지 않고 낯설지라도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신비로움이 있다.
 
특히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는 영어 추리 소설을 으뜸으로 치고 싶다. 영어 고유의 뉘앙스를 새겨가며 줄거리 속에서 이어지는 추리의 미로를 헤쳐 나가는 여정은 스릴 만점의 롤러코스터 타기다.
 
상황 전개의 업, 다운이 끝없이 펼쳐지는 가운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을 압박해가다 어느 순간 상황의 반전이 일어나고 추리 속 미로의 종착역에 도착한다. 긴장감이 풀어지는 순간 통쾌함도 잠시, 허무감이 몰려온다. 왜? 내가 지목했던 인물이 아닌 제3의 인물이 정의의 심판대에 서기 때문이다.
 
‘미스터리의 여왕’이라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은 이러한 스토리 전개에서는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다음 편부터 몇 회에 걸쳐 아가사 크리스티의 대표작을 중심으로 ‘추리 소설’ 여행을 떠나보고자 한다.
 
이광현 아름다운인생학교 강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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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현 이광현 아름다운 인생학교 강사 필진

[이광현의 영어추리소설 문학관] 영어 추리소설을 즐겨읽는 아름다운 인생학교 강사. 우리 모두는 '페르소나'를 쓴 이중적 인격의 소유자이다. 현대 사회가 설정한 패러다임에서는 누구나 가식적 가면을 하나씩 지닌 채로 본연의 나를 감추고 살아간다. 등장인물의 인간관계라는 드라마속에서 빈틈없는 논리 전개와 극적인 반전을 구사하여 페르소나를 벗겨내고 '인간의 민낯'을 들춰내는 대표적 추리 소설 작품을 통해 인간 본래의 모습이 복원되는 사회를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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