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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학의 "출국금지 후 취소신청서 쓰래서 X표 쳤다"

중앙일보 2019.03.28 01:30 종합 25면 지면보기
[조강수 논설위원이 간다] 법조계 혼돈의 축약판 서울동부지검
요즘 법조계의 ‘핫 플레이스’는 단연 서울동부지검이다.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와 ‘이전 정부의 특권층 비리’라고 대통령이 직접 규정한 무혐의 종결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접대·성폭력 사건’)가 동시에 진행 중이다. 이 때문에 정부 기관인 검찰 조직과 임시 행정 기구인 검찰과거사위원회 진상조사단이 한 건물에 동거하는 ‘한 지붕 두 가족’ 생활이 1년째 이어지고 있다. 여기다 진격의 동부지검이 야심 차게 청구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에 대한 직권남용 혐의 사전구속영장을 동부지법 영장전담판사가 26일 기각했다. 그 결정문에는 정치적 견해가 담겨 있어 사법부에 대한 국민 불신에 기름을 부었다.  
 
한 검찰 간부는 “실체적 진실 발견과 정의 실현이라는 목적은 같은데 두 사건을 겨냥한 칼날은 서로 다른 진영을 노리고 있다”며 “이런 형국에 일선 법원의 신진 세력까지 목소리를 보태면서 동부의 상황이 사법 시스템 균열상의 축소판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태국으로 떠나려다 출국이 제지된 김학의 전 차관이 지난 23일 새벽 인천공항을 빠져나와 귀가하고 있다. [JTBC 캡처]

태국으로 떠나려다 출국이 제지된 김학의 전 차관이 지난 23일 새벽 인천공항을 빠져나와 귀가하고 있다. [JTBC 캡처]

지난 22일 오후 서울 송파구 문정동의 서울동부지검 청사는 뜻밖에 한산했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금요일 오후, 시간은 햇살과 노는 듯 느릿느릿 흘렀다. 불문곡직하고 블랙리스트 사건 수사를 지휘하는 한찬식 서울동부지검장을 면담하려고 전화를 걸었다. 그는 “바깥에 일이 있어서 좀 일찍 퇴청했다”고 말했다. 이번엔 김학의(63·사법연수원 14기) 전 차관의 부인 S씨에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어, 뜻밖에 받는다. 건강부터 물었다.
 
희귀병을 앓고 계시다고 들었는데.
“(남편 사건 터지고 이듬해인) 2014년부터 희귀성 난치병이 생겨서 스테로이드제를 계속 먹고 있다. 이런 일을 당해보니 가족과 형제들이 모두 참 힘들다.”
 
문재인 대통령의 철저 수사 지시 다음날 진상조사 기한이 2개월 연장됐다.
“신랑이 잘못한 거로 벌을 받으면 그럴 수 있다. 그런데 특수강간이라는 더러운 누명을 씌우는 게 말이 되나. 공무원에게. 황교안(자유한국당 대표)하고 새누리당(※한국당의 전신) 죽이려고 왜 우리를 미끼로 쓰나. (자기들은) 천만년 권력 잡고 살 수 있을 것 같나 보죠.”
 
지금 남편은 어디에 있나.
“서울에 없다. 전화 안되는 곳에 있다.”
 
그러나 웬걸? 이날 두 사건의 뇌관이 시차를 두고 연쇄 폭발했다. 저녁 뉴스엔 김은경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보도가 나왔다. 자정께는 김 전 차관의 인천공항을 통한 해외 출국 시도와 법무부와 진상조사단 파견 검사의 ‘긴급출국금지’ 조치를 통한 비행기 탑승 직전 출국 저지 소식이 뒤따랐다. 미국 마약수사국(DEA) 직원들이 마약밀매범을 체포할 때 등장하는 드라마 같은 장면이 인천공항에서 재연된 것이다. 이 출국 소동은 김학의 사건 재수사를 앞당기는 계기가 됐다. 과거사위는 사흘 만에 재수사 권고를 내렸다.
 
출국 소동 직후 S씨에게 연락했다. 그는 “나도 병 치료 때문에 힘들고 불안한 데다 어차피 조사기한이 2개월 연장돼 장기전이 될 테니 태국의 친구 집에 가서 2주 정도라도 숨 좀 돌리고 오라고 내가 남편 등을 떠밀었다”며 “나중에 도주했다는 소리 듣기 싫어 안 간다며 산사에 있던 사람(김학의)에게 잘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모자를 눌러 쓰고 목도리도 두르고 나갔는데 이름이 특이해 발견된 것 같다”며 “도주하려면 4월 초 돌아오는 왕복 티켓을 끊었겠느냐”고 반문했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김 전 차관 부인은 “공항에서 잘 가라고 인사하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출국을 제지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차를 돌려서 다시 갔다”고 하더니 갑자기 “신랑 바꿔드릴까요”라고 묻는다. 깜짝 놀라 우물쭈물하는데 예전의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대전고검장에서 법무부 차관으로 자리를 옮겼던 2013년 3월 이후 6년 만의 통화는 엉겁결에 이뤄졌다.
 
인천공항 사건으로 깜짝 놀랐다.
“참으로 면목이 없다. 나는 조국에 뼈를 묻을 거다. 이 나이에 어디 가서 뭐 먹고 사나. 미리 출국금지돼 있는지 확인했는데 안 돼 있어서 공항에 나갔다. 밤 12시 20분 이륙하는 태국행 비행기표를 산 뒤 오후 11시께 출국심사대를 통과, 출국장에서 기다렸다. 출발 10분 전 비행기에 타려고 하는데 공항 직원들이 문 앞에 와서 ‘검사가 처분을 내려 못 나간다’고 하더라. 어느 검사냐고 물었더니 답은 안 하고 출입국관리 규정을 갖고 와서 보여줬다. 출입국관리법 4조에 ‘출국 심사할 때에 거부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출국심사대를 통과한 후의 긴급출금은 듣도 보도 못했다. 이미 출국 심사를 마쳤다고 했더니 ‘이의 신청을 하라’고 했다. 비행기 떠나가는데 무슨 이의신청이냐고 따지자 ‘협조해 달라. 지금 떠나면 진짜 도피다’라고 하더라. 비행기도 딜레이(출발 지연)시켜 놨다고 하면서. 혹시 몰라서 비행기 다 가고 아무도 없는 111번 게이트의 사진을 찍어뒀다.”(※법무부는 “진상조사단 파견검사가 소식을 듣고 동부지검 사무실로 들어가 긴급출금요청서를 작성, 장관의 승인을 받아 적법하게 출금했다”고 설명.)
김학의 전 차관이 지난 22일 자정께 타고 가려 했던 태국 방콕행 비행기 출국장. 비행기가 출발한 직후에 현장을 찍어 문이 닫혀 있다.                          [김학의 일행 제공]

김학의 전 차관이 지난 22일 자정께 타고 가려 했던 태국 방콕행 비행기 출국장. 비행기가 출발한 직후에 현장을 찍어 문이 닫혀 있다. [김학의 일행 제공]

 
그 뒤엔 어떻게 됐나.
“몇 시간 있다가 출국장·출국심사대 등으로 빠꾸(백)하는데 나갈 때보다 더 복잡한 절차를 거쳤다. 입국할 때는 간이신고하면 되는데 가방 다 뒤지고 면세점에서 물건 산 것 없냐고 물었다. 그러더니 출국하려다 급한 일이 생겨 자발적으로 쓰는 출국취소 신청원을 주고는 작성하라고 했다. 강제로 출국 금지된 사람에게 무슨 신청서냐고 따졌다. 그래서 신청원 서류 자체에 펜으로 ‘X’(거부의사) 표시를 한 뒤 (일행에게) 사진을 찍어두라고 했다.”
 
요즘 심경이 어떤가.
“집사람도 나도 힘들다는 표현 갖고는 모자라고, 살아 있는 송장이다. 사건은 2006~2008년 것이라고한다. 나도 빨리 수사로 전환되는 게 좋다. 진상조사단에서 수사와 무관한 인신공격성 설들이 너무 나온다.”
 
대통령이 사회 특권층 비리로 규정했다.
“권력형 비리의 표본은 나하곤 거리가 먼 것 같다. 내 인생이 송두리째…. 내 인생에 좋은 건 하나도 없다.”
 
만나서 직접 인터뷰를 하는 건 어떤가.
“수사에 집중해야 할 때라 곤란하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에 연루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지난 26일 법원의 영장기각으로 석방되고 있다. [뉴스1]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에 연루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지난 26일 법원의 영장기각으로 석방되고 있다. [뉴스1]

김학의 사건은 문 대통령이 지난 18일 ‘정의’ ‘특권층 비리’를 언급하며 철저 수사를 지시한 세 가지 사건 중 가장 폭발력이 크다. 장자연·버닝썬 사건과 달리 경찰과 검찰 수사 라인에 대한 청와대, 법무부·검찰 고위층의 수사 방해 의혹이 주요 수사 항목으로 추가됐기 때문이다. 사건 당시의 황교안 법무부 장관과 곽상도 민정수석(현 한국당 의원)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는데, 실제로 25일 발표된 과거사위의 재수사 권고 내용엔 곽 의원 등 2명이 수사 대상에 추가됐다.
 
수사 대상이 된 당일 밤 곽 의원을 만나 심경을 물었더니 “아무리 내가 문다혜(대통령 딸)씨 가족 문제를 추적, 제기해 왔다지만 이건 너무 심한 것 아니냐”면서 “얼마 전 검찰 간부를 만났는데 ‘대통령 건 좀 살살하면 안 되겠느냐’고 부탁하더라”고 전했다. 그는 재수사 권고장에 적시된 경찰 질책, 수사라인 인사조치 의혹 등에 대해 반박했다.
 
이전의 특수강간은 빠지고 뇌물 혐의로만 재수사 권고된 김 전 차관 수사는 어찌 될까. “과거 수사 때 딱 성폭행 혐의만 보고 돈거래를 입증하기 위한 계좌추적, 압수수색을 안 했는데 그게 잘못이다. 내가 알기에 동영상 CD의 대화 내용을 보면 성폭행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런데 굳이 성폭행만 수사했다면 미리 프레임을 잡고 의도적으로 오조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앞으로 성접대와 돈 거래 쪽에 포커스를 맞출 가능성이 크다.”(당시 수사 관계자)
 
동부지검의 환경부 블랙리스트 수사는 김은경 전 장관 영장 기각으로 일단 제동이 걸렸다. 하지만 검찰은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인다. 동부지검이 왜 저러나 궁금해 대검 간부에게 물었더니 이런 답이 왔다. “어느 검찰청에 보내도 비슷할 걸. 이제 검사들은 어떤 사건을 맡더라도 5년 뒤엔 반드시 리뷰(재수사) 당할 것을 알고 있고 거기에 대비해야 하거든.”
 
조강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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