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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으로 읽는 책

중앙일보 2019.03.28 00:35 종합 27면 지면보기
글자풍경

글자풍경

“상상의 이미지 하나가 내게 다가왔다. 한국어 ‘사랑’이라는 단어였다. ‘사람’과 닮은 ‘사랑’이 나타나, 그 동적인 ㅇ받침이 정적인 ㅁ 받침을 돌돌 밀고 가는 이미지였다. 그때 깨달았다. ‘아, 사람을 돌돌 움직여 살게 하는 동력은 사랑이구나!’”
 
“한국어 음성 상징에서 긍정적인 측면의 심상만 보자면, 사랑의 ㅅ은 생(生)을 연상시키고 ㄹ은 활력(活)을 일으킨다. ㅅ은 에너지이고, ㄹ은 운동을 떠오르게 한다. 양성모음 ㅏ는 내적으로 수렴하는 음성모음 ㅓ와 달리 외부를 향해 확장되고 열려 있다. 마치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에너지처럼. 사람은 멈춰 있고 사랑은 굴러간다. 사랑이 사람 사이에 흘러들어 서로를 연결한다. 사랑이라는 한국어 단어 속에서는 소리와 뜻과 모양조차 이렇게 서로 사랑을 한다. 그러니 한국어에서는 어떤 수식어도 덧대지 않아도, 그저 사랑 한 단어면 충만하다. ”
 
“ㅅ 초성이 들어 있는 한국어 의성·의태어들을 소리 내어 보면 입 안에 싱그러운 바람이 스친다. 소로소로 샤락샤락 싱송생송…스스스 바람이 일며 시옷들이 ㅅㅅㅅ 솟아오르는 듯하다. 샘처럼 솟구치고 송송 솟아나며 생생하고 싱그러워 살아있고 살아가는 느낌이다.”
  
 
그래픽 디자이너 유지원의 『글자풍경』중에서. 예술, 과학, 철학을 아우르며 세계의 다양한 글자들과 그 형태를 탐색한 책이다. 영화감독 박찬욱이 “유지원은 과학자의 머리와 디자이너의 손과 시인의 마음을 가진 인문주의자”라고 추천사를 썼다.
 
양성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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