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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호의 시선] 민주당 선배들 입에서조차 “이런 정부는 없었다” 우려 나온다

중앙일보 2019.03.28 00:31 종합 29면 지면보기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아이쿠, 누구신가? 여당의 골수 반문 아니신가? 또 문재인 정부에 칼 꽂네!”
 
“‘익명의 민주당 중진’이라며 대통령 까고, 청와대 물어뜯는 자, 전부 정성호 너잖아?”
 
더불어민주당 정성호 의원(3선·기재위원장·양주)이 지난주 본지와 인터뷰에서 “정부는 경제가 어렵다고 솔직히 말해야 한다” “우리는 선, 야당은 악이란 생각으론 정치가 안 된다”고 했다. 인터뷰가 나가자마자 온라인엔 정 의원을 비난하는 ‘문빠(문 대통령 골수 지지층)’들의 댓글 폭탄이 쏟아졌다.
 
현 정부 내내  청와대 독주에 침묵해온 민주당에서 정 의원은 근 2년 만에 처음 ‘할 말’을 한 경우다. 그나마 문 대통령 비판을 피하고, 경제와 여야관계에서 유연성을 갖자는 수준의 고언이었다. 그런데도 입에 담기 힘든 욕설들이 정 의원에게 쏟아졌다. 여당이 아직도 문 대통령을 둘러싼 청와대 라인과 열혈 지지층의 장벽에 갇혀있다는 방증이다.
 
‘문재인 청와대’의 독주 현상은 심각하다. 지난 22일 문 대통령의 대구 칠성 시장 방문 당시 경호원이 단기관총을 노출한 사건과 관련, 역대 청와대 대변인·비서실장 4명에게 “당시에도 그런 경우가 있었나”고 물어봤다. 모두 “절대 없었다”고 펄쩍 뛰었다. 같은 진보 정부였던 김대중 정부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박지원 의원조차 목소리를 높였다. “독재국가가 아니면 이런 경우 없다. 김대중 대통령은 시장을 찾을 때 총을 절대 노출하지 못하게 했다. 대통령은 국민이 뽑으니 경호도 국민 눈에 안 보이게 하라고 했다”
 
시선 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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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과거 정부에서도 그랬다”고 버텼다. 쿨하게 사과하면 될 일을 과거 정부나 야당 탓으로 미루며 무조건 반박하는 게 청와대 일상이 됐다. 자신들은 ‘무오류’란 독선에 빠진 징후가 뚜렷하다.
 
김대중 정부에서 민정·정책 수석과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낸 김성재 김대중아카데미원장은 “문 대통령에 모든 권력이 집중된 ‘1인 체제’가 무오류 강박증의 본질”이라고 했다. “민주정부는 국무회의에서 결정을 해야 하는데 현 정부는 국무회의 대신 청와대 비서진이 한다. 자연히 공직자들은 청와대만 쳐다보고, 청와대 비서진은 대통령만 쳐다본다. 장관은 과장 한명 임명할 권한조차 없다. 결국 대통령 1인 체제다. 이 1인에게 잘못이 생기면 안 된다. 그러니 ‘우리는 무조건 오류가 없다’며 독주하는 거다. NL(민족해방파)들이 그랬다. 의장 말이면 무조건 따른다. 청와대 비서진이 문 대통령 둘러싸고 그런 체제를 만든 거다. 이제는 누구 말도 안 듣고, 조금만 뭐라 해도 발끈한다. 어떤 정부도 이렇게 국정을 운영한 적이 없다.”
 
요즘 청와대엔 ‘윤건영’만 보인다는 지적이 많다. 국정상황실장이었던 그는 지난해 기획 업무까지 겸직해 국정기획상황실장이 됐다. 대통령에게 보고되는 정보의 95%가 그에게 들어간다. 인사도 최종 보고 안이 그의 손을 거친다고 한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도 윤건영의 파워를 알아보고 파트너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에 앞서 그를 만났을 정도였다. 윤건영은 ‘지퍼’란 별명답게 비서 역할에만 충실한 스타일로 알려졌다. 하지만 “1인에 너무 권력이 쏠려 언제든 사고가 날 수 있다. 조국 민정수석실의 인사 검증 기능이 무력화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우려가 나온다.
 
뿐인가. 민주당에는 ‘양비(양정철)’주의보가 내려졌다. 문 대통령의 오른팔로 해외를 유랑하던 양정철이 민주연구원장으로 5월에 당에 입성한다. 청와대와 이해찬 당 대표를 이으면서 내년 총선 공천 ‘물갈이’에 핵심 역할을 할 것이란 소문이 파다하다. 중소기업벤처부 장관에 지명된 박영선 의원의 구로을 지역구를 승계할 것이란 설도 돈다. 게다가 청와대 실세 비서관인 윤건영도 ‘양정철 사람’이다. 이 때문에 민주당 의원들은 청와대 눈치를 더더욱 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당내엔 “문 대통령이 다선 의원들을 쳐내려고 양비를 보냈다. 비문 4선 이상급 의원들이 핵심 타깃”같은 괴담이 횡행하고 있다.
 
이래선 안 된다. 청와대 기능은 내각에 분산되고, 공천은 투명성이 보장돼야 한다. 안 그러면 내년 총선에서 혹독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그렇게 독주하며 ‘막장 공천’을 한 끝에 궤멸한 걸 상기하라. 집권 2년도 안 돼 김대중 정부 선배들의 입에서 ‘대통령 1인 체제’ 같은 우려스런 표현이 공공연히 나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강찬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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