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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의 퍼스펙티브] 볼턴 아닌 트럼프가 협상 주도해야 김정은이 믿는다

중앙일보 2019.03.28 00:07 종합 26면 지면보기
북·미 협상 성공하려면
존 볼턴 미국 국가안보보좌관

존 볼턴 미국 국가안보보좌관

존 볼턴이라는 렌즈를 통하면 하노이회담 이후 북·미 관계와 남북 관계의 전개 방향이 더 명확히 보인다. 악(evil)과의 타협을 거부하는 네오콘 세계관이 철저한 트럼프의 국가안보보좌관이 하노이에서 북·미 비핵화 협상 주도권을 ‘납치(hijack)’하는 순간 남·북·미 정상급 연쇄 담판으로 비핵화에서 한반도 평화에 이르는 선순환 구조에 균열이 생겼다.
 

볼턴, 하노이회담 주도권 납치
한반도 평화 선순환 구조 균열
하노이 참사 유탄 맞은 청와대
남북 관계 속도 조절 불가피

볼턴은 조지 W 부시 정부의 군축·비확산담당 국무차관과 유엔대사 시절 북한과 불구대천의 악연을 맺었다. 그 유령이 오바마 정부 8년을 건너뛰어 새로 구축되는 한반도 평화체제를 위협하고 있다.
 
볼턴은 회고록 『굴복은 옵션이 아니다』(Surrender Is Not an Option)에서 “북한은 자발적으로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제하고 이렇게 썼다.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은 조만간 오기를 바라는 한반도 통일뿐이다. … 이탈리아 국민이 무솔리니를, 루마니아 국민이 차우셰스쿠를 처단한 것 같이, 언젠가는 북한 인민들도 김정일을 처단할 기회가 올 것이다. 김정일은 … 지저분하고 경멸스러운(dirty and contemptible) 죽음을 맞을 것이다.” 끔찍한 악담이다. 그가 지금 회고록을 쓰면 김정일의 자리에 김정은이 들어갈 것이다.
 
국무차관 볼턴의 1차 목표는 1994년 제네바 합의 죽이기였다. 국무부 동아태국 대화파들이 저항했다. 국무장관 콜린 파월도 제임스 켈리 차관보의 동아태국 입장을 지지했지만, 2001년 9·11 테러와 2002년 부시의 “악의 축(axis of evil)” 발언이 볼턴에게 천군만마의 힘이 되었다. 2002년 9월 10일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는 제네바 합의 백지화를 선언했다. 북한에 대한 중유 제공이 중단되고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도 기능을 멈췄다.
 
북한은 볼턴을 “악의 사자(envoy of evil)”라고 공격했다. 그해 10월 3일 제임스 켈리 동아태 차관보가 평양을 방문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였다. 켈리는 북한이 비밀리에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하는 증거를 제시하는 성명을 김계관 6자회담 수석대표 앞에서 낭독했다. 볼턴의 시나리오대로다. 제네바 합의는 확인 사살되고 2차 핵위기가 터졌다.
 
하노이 북·미회담

하노이 북·미회담

볼턴은 북한 핵물질과 미사일 확산의 현실적인 위험성을 부시의 머리에 주입했다. 그 결과 2003년 5월 대량살상무기(WMD) 확산방지구상(PSI)을 발표됐다. 예멘으로 가던 스페인 선박에서 시멘트 포대 아래 깊이 감춘 스커드 미사일이 압류됐다. 볼턴이 결정적 성과를 올린 것은 2003년 9월이다. 리비아로 항해 중인 독일 선적 BBC차이나(영국 방송이나 중국과 무관한 이름)를 수에즈운하에서 나포하여 원심분리기가 들어있는 5개의 컨테이너를 압수했다. 리비아 지도자 카다피가 핵무기 프로그램 포기를 결심한 계기가 된 사건이다.
 
볼턴이 유엔대사이던 2006년 7월 4일 북한은 동해안 깃대령에서 미사일 7발을 발사했다. 그중 하나는 비행 궤도를 수평으로 펼치면 하와이에 닿는 대포동-2호였다. 볼턴은 패닉 상태에 빠진 일본 대표와 함께 중국과 러시아 대표를 설득하여 강력한 안보리 대북 제재를 준비했다. 6자회담의 성공을 확신하는 국무성 동아태국이 저항했지만, 대북 제재 결의 1695호의 채택을 막지 못했다.
 
북한이 2006년 10월 9일 최초의 핵실험을 단행한 것이 국제사회의 북한 핵 위협에 대한 경각심을 한 차원 끌어올렸다. 폭발력은 0.5㏏(킬로톤)로 추산되었지만, 그 상징성은 컸다.
 
국제사회는 북한의 핵무장이 이란의 핵무기 개발에 미칠 영향을 걱정했다. 북한 핵과 이란 핵은 파키스탄 핵 과학자 압둘 카디르 칸을 고리로 연계되어 있었다. 유럽연합(EU) 국가들에 북한 핵·미사일은 직접적인 위협이 아니지만, 북한과 협력하는 이란의 핵·미사일에 이스라엘의 안보가 위협받는 것은 좌시할 일이 아니었다. 유엔 안보리는 대북 제재 1718호를 채택했다. 이 공로로 볼턴은 2006년도 노벨평화상 후보로까지 지명되었다.
 
이런 볼턴이 하노이 정상회담에 노란 봉투를 들고 나타났을 때 분위기는 불길했다. 그의 배후에서는 의회의 트럼프 청문회, 비핵화 협상 회의론자들, 북한 붕괴론자들, 방위산업체의 연구 프로젝트에 의존하는 싱크탱크들,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의 재선을 막아야 하는 민주당의 느슨한 연대가 형성되었다. 확대 회의에 볼턴이 배석할 때까지 김정은과 트럼프는 그런 흐름을 읽지 못했다.
 
볼턴과 북한의 악연

볼턴과 북한의 악연

폼페이오와 비건은 영변 핵시설 동결과 대북 제재의 일부 완화를 맞바꾸는 스몰 딜을 하노이회담의 목표로 설정했던 것 같다. 생화학무기(WMD)가 핵무기의 개념에서 빠지고 노후한 영변 핵시설 동결의 상응 조치로 민생 분야 5개 제재를 해제하는 것은 볼턴의 눈에는 노딜만 못했다. 5개 제재가 빠지면 11개의 대북 제재 전체는 형해화(形骸化)된다.
 
트럼프가 볼턴을 만찬에서 제외했다는 보도도 있다.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볼턴이 트럼프에게 스몰 딜을 가지고 귀국하면 정치적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겁을 줬을 가능성이 부정되지 않는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미국 대통령과 그의 국가안보보좌관이 적전(敵前)갈등을 일으켰다는 의미다.
 
트럼프가 손을 들었다. 귀국 후 2~3일 동안 볼턴은 개선 장군처럼 미디어의 총아가 되었다. 그는 나쁜 딜을 안 했기 때문에 회담은 성공한 것이라는 비약적인 논리를 폈다. 반면 트럼프는 풀이 죽고 휴식을 모르던 그의 트윗은 이례적인 침묵에 빠졌다. 트럼프를 멘붕 상태에서 깨운 것은 2016년 대선 때 트럼프 캠프가 러시아와 공모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뮬러 특검의 24일 발표다. 트럼프는 대북 추가 제재 철회를 지시한다는 트윗으로 북·미 대화 재개의 작은 신호부터 보냈다. 북한은 철수했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복귀로 화답했다. 트럼프가 볼턴에게 뺏긴 대북 협상의 주도권을 되찾을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한다.
 
북한이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는 사람같이 한국에 화풀이를 하는 것은 염치없다. 북한 외무성 부상 최선희는 한국이 북·미간 중재가 아니라 행위자라고 말한다. 논리가 뒤죽박죽이다. 사실과도 맞지 않는다. 김정은의 국제적 위상을 높은 수준으로 격상한 트럼프와의 회담은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가 있어서 가능했다. 하노이회담의 유일한 수확은 북한과 미국은 상대의 입장을 구체적으로 확인했다는 점이다.
 
한국은 다시 북·미 흥정을 붙여야 한다. 첫째, 비핵화란 핵탄두, 물질, 생화학무기, 단·중·장거리 미사일의 전면 폐기라는 비핵화의 ‘정의’에 합의한다. 둘째, 출발점에서 종착점이 보이는 비핵화 로드맵과 시간표를 일괄 타결한다. 셋째, 일괄 타결된 비핵화와 상응 조치의 교환을 3개가 넘지 않는 단계로 나누어 이행한다. 넷째, 미국과 국제사회 핵·미사일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구체적인 사찰과 검증 방법에 합의한다.
 
청와대는 하노이 참사의 가장 큰 유탄을 맞았다. 문 대통령은 하노이 회담의 성공을 전제로 짠 신한반도 체제 실현의 시간표를 다시 짜야 한다. 한국이 남북 관계를 비핵화 협상 진전보다 너무 멀리 앞서간다는 미국의 불만을 고려한 속도 조절이 불가피하다.
 
평양과 워싱턴의 전술적 발언에 휘둘리지 않는 전략적 마인드가 필요하다. 트럼프가 귀국 길 전용기에서 문 대통령에게 중재를 요청한 것이 위기와 기회의 양면성을 보여준다. 시간이 많지 않다. 내년은 미국 대통령 선거의 해다.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하면 한반도 사정은 2017년으로 회귀할 수도 있다. 평창 이래의 공든 탑이 무너진다.
 
김영희 중앙일보 명예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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